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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Hill Feb 07. 2024

< The Long Journey >

다시 길 위에서... 미국 동부 보딩스쿨을 가다 #4

#Scene 4


이번 미국 방문 일정은 변수가 많아서.. 호텔을 미리 예약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이동하면서 잡으려고 했는데, 이게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다.

운전을 하다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에 스마트폰으로 부킹닷컴 등등의 앱을 열고 찾아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운전을 하는 동안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안전 운전을 위해 가능한 삼가야 하지만...)


보스턴에서 뉴욕주까지 대략 4시간 정도 걸린다. 다음 날 <Trinity Pawling School> 투어가 잡혀있어서 학교 근처 호텔을 검색했다.  학교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Microtel Inn & Suites>가 눈에 들어왔다. 코네티컷주의 댄버리라는 마을에 위치한 작은 호텔 체인이었다.

'댄버리'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미국 버몬트주에 위치한 명문 보딩스쿨이 배경, 며칠 뒤 이 학교에 가 볼 예정-에 등장한 인물의 이름이 떠올라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객실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널찍하고 깔끔했다.  9시가 넘은 시간에 우린 햇반과 볶음김치로 늦은 저녁을 해결했다. 해외 출장 때나 여행을 할 때 호텔에서 일찍 일어나 동네 주변을 산책하고 여유 있게 조식을 챙겨 먹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처럼 어느 한 곳에 며칠을 머물지 않고, 거의 매일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선 짐을 풀고 싸느라 아침에 허둥대기 일쑤다.

호텔을 정할 때 이왕이면 조식 포함 Rate를 고른다. 조식은 가능한 챙겨 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 호텔은 조식 서비스를 안 하는 게 나았다.

그래도 뭔가를 뱃속에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섬주섬 챙겨 먹었다. (이게 결국 화를 불렀다.)


 <Trinity Pawling School>로 가려고 운전대를 잡았는데 머리가 찌근찌근해 오기 시작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약속한 장소의 건물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몇 번의 전화 통화 끝에 건물을 찾았고, 직원의 안내를 받고 로비에 들어섰다. (미국 보딩 스쿨은 어드미션 오피스에 들어서면 큰 거실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싱글하우스 집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어느 유학원의 소개로 알게 된 이 학교는 뉴욕 맨해튼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남학생 보딩스쿨(G8-G12)이다.

아이가 축구를 좋아해.. 스포츠 활동 중에서도 축구가 활성화된 곳을 중심으로 찾아본 학교 중의 하나다.

아이를 유학, 그것도 보딩스쿨에 보내고 싶은 저마다의 사유와 사정이 있다.

직접 듣거나 전해 들은 각자의 이유 중 절대다수의 사례는 미국의 소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을 보내고 싶어서이다.

좀 더 구체적으론 이른바 탑보딩을 가면 명문대에 붙을 확률이 높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린 그것보다도 학업적인 면을 떠나 아이가 좋아하는 축구나 운동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환경을 갈망했다.  대한민국에선 운동을 하려면 공부와는 담을 쌓아야 한다. 아니 담을 쌓게 만든다.

방과 후에 다니던 축구 클럽 연습 시간에 맞추기 위해 가끔 30분~1시간 먼저 조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언제부터 인지, 공부는 안 하고 운동만 하는 아이로 여겨졌다.

오로지 한 방향으로 달려가길 강요당하는 현실의 벽은 너무 두터웠다. 무리하면서도 나라 밖으로 발길을 돌린 이유다.


학교 방문 전에 축구부 코치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이 코치는 아이의 축구하는 동영상을 보내달라고 했다.  축구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한번 보겠다는 거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경기(사실 놀이에 가까운..) 하는 모습을 찍어 보냈다.  코치는 "당신 아들이 그 그룹에선 잘하는 거 같지만.. 전체적으로 아이들의 축구 수준이 낮다"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아이가 이 학교에 온다면 Varsity(학교 대표팀)에 들어오긴 힘들고 그 아래, 이른바 minor 팀으로 가서 경험을 좀 더 쌓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 경기들 (이 학교는 동부 명문 보딩스쿨 리그에 소속) 영상을 보라고 했다. 영상으로 접한 학생들의 실력은 과연 놀라웠다.


학교에 오기 전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은 입학 담당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미국인들의 다소 과한 제스처와 격한 반응에 적절한 리액션이 아직은 어색하다.)


곧바로 투어 가이드를 맡은 학생 2명을 따라나섰다. 지끈거리던 머리가 더 아프기 시작하더니 구토감까지 밀려왔다. 투어를 얼른 끝내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어떻게 학교를 둘러봤는지 정신없이 메인 오피스로 돌아왔는데.. 입학 담당자가 부모 인터뷰도 해야 한다며 나를 사무실로 끌고 들어갔다. 속은 울렁거리고 머리는 깨질 거 같아서 당장 화장실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인터뷰를 마치고 작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학교를 서둘러 빠져나왔다. 그 와중에도 학교에서 선물로 준 아이 후드티 사이즈가 작은 것 같아 큰 걸로 바꿔달라고 했다. 아이는 학교명과 로고가 새겨진 후드티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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