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 위에서... 미국 동부 보딩스쿨을 가다 #9
#Scene 9 The Hill School
군더더기 없이 파란 하늘이다. 이곳에서 '미세먼지'란 단어는 생소하기만 하다.
자연이 갖는 그 본령을 온전히 누리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곳에 올 이유는 충분하다.
여행지로 향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게 숙소다. <부0닷컴><아0다> 같은 숙박 앱이나 호텔 공홈을 들락거린다. 그러다 결국 선택지는 주로 이름난 중대형 호텔 체인이다. 리스크가 덜하고 웬만큼 기본은 한다는 경험 탓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디에나 볼 수 있는 호텔보다는 그 지역의 개성이 물씬 드러나는 공간에 끌렸고 그곳에서만 향유할 수 있는 느낌이 좋았다.
학교가 위치한 곳은 <Philadelphia> 미국 독립의 발상지이자 <Pennsylvania> 주 최대 도시로 영화 제목으로도 익숙한 지역이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근교의 한적한 마을을 어슬렁 거리다 유니크한 외관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지붕 위에 솟은 첨탑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가가서 보니 작은 호텔이었다. (우리 식으론 모텔 lnn에 가까운)
아담한 입구에서 처음 마주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보니
영국 런던 근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작은 주택이 떠올랐다. 룸과 키친, 다이닝 등 공간마다 묘한 매력을 발산했고, 유럽의 어느 유서 깊은 가문의 별장에 초대받은 것처럼 편하고 푸근했다. 로드아일랜드에서 만났던 그 lnn과 많이 닮았다.
오래돼 낡았다기보다 세월의 깊이가 담겨있었고, 애정 어린 주인장의 세심한 손길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오너와 쉽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이런 작은 호텔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재미다. 주인은 며칠 전 이 건물을 매입했고 리모델링을 준비 중이었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은데.. 조금 손을 보고 싶다고 했다.
체크인하고 짐을 풀고 수다를 떨다 보니.. 출출했다. 동네도 돌아볼 겸 추천받은 맛집으로 향했다.
펍 스타일의 식당은 7시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 굳게 닫혀있었다. 순간 허탈했다. 별다른 안내가 없어 정기 휴무일이거나 사정이 생겨 일찍 닫았겠거니 여기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주변엔 변변한 식당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동네 한 바퀴 돌고, 호텔로 돌아와 컵라면과 햇반으로 늦은 저녁을 해결했다.
룸이 3-4개 정도인데.. 우리가 묵은 날엔 다른 손님이 없는 듯했다. 넓은 다이닝에서 조식을 느긋하게 즐겼다. 흔히 맛볼 수 있는 메뉴 구성이지만 주인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적지 않은 곳을 돌아다녔는데...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한 아침 식사였다.
기분 좋게 투어 예약이 돼 있는 학교로 향했다. 20분쯤 지나 드넓은 축구 필드가 눈에 들어오고, 곧이어 학교 정문 게이트에서 방문 예약 확인을 받았다.
어드미션 오피스 건물로 들어서자,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담당자의 격한 환대를 접했다.
캠퍼스 투어 안내를 맡은 학생을 따라나섰다.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건물들, 농구장, 수영장 등 압도적인 스포츠 시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도서관 등이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론, 이곳 역시 괜찮다고 평가받는 다른 보딩스쿨들처럼 자본과 얽혀있었다. 미국 대학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까, 탑스쿨로 분류되는 학교들은 재정이나 규모면에서 어지간한 대학을 능가한다...
보딩스쿨들에 대한 평가 항목 중엔 졸업생의 위상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뛰어난 성적 하나가 입학을 보장하지 않고, 든든한 집안 배경이 알게 모르게 당락에 개입한다.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고, 이중에 몇 명을 아이비리그로 보내느냐, 졸업생들의 기부 규모 수준에 따라 이른바 학교 때깔이 달라지고 등급이 매겨진다.
'황금종이'가 판치고, 차별이 난무하고, 서열이 고착화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소수, 마이너에 대한 배려 그리고 다양한 기회가 열려있는 걸 보면 '이민자 나라'의 본성이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 사회도 반이성과 정치적 혐오가 분출하면서 본연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어 걱정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