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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Hill Feb 05. 2024

The Long Journey

다시 길 위에서… 미국 동부 보딩스쿨을 가다 #2

#Scene 2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 아이 학교까지 1시간 30분.  

잔뜩 흐린 하늘은 이내 비를 뿌렸다. 빗줄기는 강해지다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마치 내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것처럼...

 

고속도로 한켠에 Saco/Old orchard beach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고향에 온 듯 평온함이 느껴졌다. 아이의 홈스테이 집 근처에 잠시 차를 세우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계절이 두번 바뀔 즈음의 만남, 무슨 말을 먼저 건넬까, 힘껏 안아줄까? 온갖 생각이 스쳐갔다...

문을 두드리고 홈스테이 대디와 인사를 나누고, 아들과 조금은 어색한 상봉을 했다.  아이의 덤덤한 표정에선 좀처럼 그간의 시간들이 읽히긴 힘들었다.

 

서둘러 짐 정리를 했다. 지난 1월 이곳에 쏟아부었던 짐을 다시 하나 둘 담았다. 그때보다 가방들이 무거워졌다. 거실 바닥과 방에서 고스란히 전해지는 냉기에 순간 눈앞이 흐려졌다.


방 앞에서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짐(Suitcase) 여러 개를 차 트렁크에 밀어 넣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홈스테이 대디에게 당신 집에서 하룻밤 보내고 싶은데 괜찮으냐고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럴 상황이 안돼서 어렵겠다며 호텔을 잡으라"는 답이 왔다.

사실 "of course" 나 "sure thing" 같은 환대의 반응을 예상했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또 인연을 맺은 미국인 패밀리와 기약 없는 작별을 하고, 20분쯤 떨어진 <Holiday Inn Express>에 체크인했다. 중저가 대표 브랜드인 이 호텔은 별 기대 없이 잡았는데 나름 괜찮았다. 그래도 오랜 세월 버틴 저력이 느껴졌다.

잠시 쉴 틈도 없이 아이 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아이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모두 형들)에게 저녁을 사주고 싶었다. 어느새 저녁 8시가 지난 시간이라 주변에 갈만한 식당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학교 근처 햄버거와 샌드위치 종류를 파는 캐주얼 다이닝에 갔다. 아이들은 좀 더 근사한 곳에서 맛난 음식을 기대했을 텐데 너무 평범한 메뉴가 못내 아쉬웠다.  


게다가 9시쯤 되자, 식당 직원들이 의자와 테이블을 정리하면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나가라는 신호였다.

1시간도 채 안 됐는데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얘길 나누면서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선입견과 편견도 조금씩 떠나갔다.


몇 개월 새 정이 든 아이들은 아들과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워하는 듯했다.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도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편이 아련해졌다.

한참을 웃고 떠들고 장난치던 아이들과 우린 작별 인사를 했다.  

사실 아이 유학 갈 학교를 고르면서 여러 조건들을 살피는데, 그중에서도 한국인이 많지 않은 곳으로 알아봤다. 한국 사람들과 접촉하는 시간이 적어야 영어와 그네들의 문화에 조금 더 빨리 스며들 수 있을 거라는 원초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다.  요즘에야 미국 어지간한 곳에선 한국인들이 두텁게 자리 잡고 있어서, 중부 쪽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로 가지 않고서야 그런 기대(?)는 이제 저버리는 게 좋다.


최선은 아니지만 여러 여건을 고려할 때 그나마 괜찮다고 여겼던 이 학교를 선택하면서도.. 주저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바로 한국 학생이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런 우려를 마음에 한구석에 담고, 아이를 보냈었다. 지금 와서 보니.. 걱정이 위안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4개월, 아이가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은 낯섦과 외로움을 이겨낼 유일한 해방구가 아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는 사이, 아이는 이내 잠이 들었다. 얼마만의 아늑한 잠자리일까.. 일찍 깨우지 말고 실컷 자게 둬야겠다.


기나긴 여정의 자그마한 순간, 그날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아기때부터 함께한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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