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있게 사는 삶이란
우연인지 필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삶의 긴 여정 중 시절인연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결론은
"삶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곡 하나,
god의 노래 '촛불하나',
그 곡의 2절 시작 가사.
[내게 있는 건 성냥하나와 촛불 하나
이 작은 촛불 하나 가지고 무얼 하나
촛불하나 켠다고 어둠이 달아나나
저 멀리 보이는 화려한 불빛
어둠속에서 발버둥치는 나의 이몸짓
불빛향해서 저 빛을 향해서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는
나의 날개짓
하지만 그렇지 않아
작은 촛불하나 켜보면 달라지는게 너무나도 많아,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엔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 개가 되고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어둠을 사라져가고]
난 이 2절 가사가 너무 좋다.
나는 god 오랜 팬이지만,
수많은 곡들 중
이 2절 가사가 젤루 좋다.
어렸을 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수련회에서 옆으로 불을 전달하며 촛불의식 할 때가 생각나면서
아~ 그때 참 슬펐지만 사랑이 마음으로 가득 찼었는데~ 라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저 가사를 20년이 흐른 지금 들으면, '나'라는 사람이 보인다.
결국 성냥을 켜서 촛불을 밝히고 들고 있는 건 '나' 이다.
그리고 그 불로 또 다른 초를 찾는 것도 '나'다.
결국, 내가 변하고 시도하지 않으면,
두 번째 초도, 세 번째 초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삶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눈을 보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딱! 저 가사의 느낌이다.
'나를 변화시키는 작은 촛불 하나.'
삶으로 말하는 사람, 단 한 명일 지라도,
내 세계는 이전과 절대적으로 달라진다.
내가 가진 작은 초에 불이 붙여지고,
그 초는 다른 초를 찾게 하고,
내 주위가 환해지는 느낌.
그게 나에게 어마무시한 변화를 가져온다.
그렇게 그들과 같이 하고 싶은 삶을 가지려
내가 변한다.
내가 말하는 삶으로 말하는 사람이란,
말로 이거할거다, 저거할거다,
이거 계획중 저거 계획 중이 아닌,
그저 묵묵히 milestone을 정하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곤 뜻하지 않게 질문을하고
대화를 했을 때,
삶을 마주하는 진지함이
행동과 태도가, 사용하는 단어와 생각의 깊이가
오롯이 다 묻어나오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고농축 세제'가 떠오른다. (나도 왜인진 모른다. 근데 항상그랬다.)
하루를, 일주일을, 한달을 저렇게 농축있게 살 수 있지?
저 분야를, 저 관심사를, 하고싶은 저 일을 어떻게 저렇게 농축액처럼
진하게 만들지?
존경을 넘어선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나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내 시간을
고농축 세제처럼 그렇게 진하게 살아보자.
한번사는 인생. 이렇게 살아도 죽고
저렇게 살아도 죽는데,
어차피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며,
추락하는 비행기 안이라고 생각하면
못할게 뭔가. 하고 한번 살아보자했다.
처음 시작은 흉내내기였다.
그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더 오래 함께, 곁에 있고 싶어서,
내 나름대로의 인정받으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스트레스였다.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세워야하나, 채찍질을 해야하나?
아..굳이?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르고 보니
이 농축있는 하루하루가
결국 내가 나를 돌보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나를 어여삐여기고, 나를 사랑하는 거라는 걸 알았다.
나에 대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것.
내가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사랑받으려면 사랑받는 행동을 해라
라는 그 말이 가시처럼 깊게 박혀서
늘 내적동기 보단 외적동기가 더 나에게 크게 작용했다.
결국 나는 나에게 사랑을 주고 있지 않았구나 싶었다.
남의 사랑만 주워담아 나를 채우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급급했고,
이게 좋다 저게 좋다 따라다니기 급급했고
보여주기식 시간을 보내기 바빴다.
나의 기록이 아닌, 뽐내려는 기록에 가까웠으며,
나의 성장이 아닌, 인증을 위한 것에 가까웠다.
그러니 항상 텅 빈 것 같은 느낌, 공허함이 들었나보다.
그렇게 나의 변화가 내적동기로 바뀌니,
시간이 아까워졌다. 1분1초가 아쉬웠다.
뜻하지 않게 이별을 고하기도 했다.
처음엔 맞지 않는다, 단점 등등이 원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더 갖고 싶었던거다.
그 마음의 충만함을 알아버린거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닌,
그냥 내 스스로가 나를 더 사랑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에게 더더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선택을 한거다. 헤어짐이라는.
또 선택을 했다. 금주라는 것도. 더 건강한 식습관도,
규칙적인 운동도, 새로운 시야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도.
나는 내 시간을 어떻게 쓸지 '선택'할 수 있다.
두번째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고농축 세제에서 초고농축 세제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조금만 넣어도 많은 양의 빨래를 할 수 있는 ..
내가 꼭 그렇게 쓰임받길 바란다.
고작 나 하나지만,
많은 곳에 영향을 미치길..
그런 사람이 되기위해 오늘도
고농축의 시간을 보내보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