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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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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아 Nov 03. 2023

4일 만에 면허따며 느낀 것. 4가지


지난 화요일 오전 7시. 나는 처음으로 운전면허 학원을 가는 셔틀 버스 안에서 약간은 긴장한 상태로 그곳의 공기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이른 아침 기운에 조금씩 나른해질 때쯤, 기사님의 한 마디로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오늘 오후에 필기시험 보는 거 아시죠? 안전교육 듣고 이 차로 다시 오시면 됩니다."


네? 그런 얘기 못들었는데요? 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그들은 이미 흔들리는 차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표정으로 휴대폰 면허 어플을 보고 있다. 그들의 묵묵한 표정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지난 주 학원 등록을 문의할 때 비슷한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미리 어플 깔아서 공부하라고... 아아... 나는 왜 이럴까 정말!


일단은 일이 닥쳤으니 나도 어플을 깔고 닥치는 대로 머리에 넣기 시작했다. 오전에 안전교육 시간이 끝나자마자 재빠르게 오후가 되었고, 나는 예정대로 필기시험을 봤다. (다행히 필기시험 시간을 조금 미룰 수 있어서 2시간 정도의 공부시간을 확보했다.)


과연 난 떨어졌을까? 아니, 붙었다. 이제부터 내가 할 얘기는 4일 만에 초스피드로 운전면허를 딴 얘기이다.






학창시절에 나는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1, 2등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거의 중간, 운좋으면 좀 더 위쯤을 머물렀다. 그 이유는 즉슨, 공부가 재미가 없었다. 그냥 하라고 하니까 하는 거지, 거기에서의 어떤 의미 같은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부모님께 사랑받는 예쁜 딸이고 싶어 책상에는 오래 앉아 있었고, 그러면 꼭 엄마는 과일을 예쁘게 깎아서 내 방으로 갖다주셨다. 물론 방문이 열릴 때마다 나는 공부를 하는 것 대신에 손톱을 뜯거나 거울을 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에게는 언제나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다. 전교 1등을 하는 하나뿐인 남동생과 비교되는, 그저 그런 딸이라는, 존재에 대한 죄책감.


학생 개개인의 재능을 발굴해주지 않는 그 당시의 한국의 교육제도 아래, 나 역시 나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자랐다. 성인이 되서야 날고 기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들도 사실 똑같이 고통받았구나, 알게됐지 그 전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인 줄만 알았다. 아무튼 그래서 이래저래 '나는 멍청해'라는 생각 하에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냈고, '1등을 하지 못하면 실패자'라는 그런 프레임에 스스로를 씌워 살아왔다. 그래서 오랜 시간 나는 실패자였다.


그리고 그런 프레임이 나를 보호하는 옷이 되었을 때는 무언가를 도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옷을 입고 있으면 조금만 실패해도 그게 정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간을 거치고, 또 나름대로의 여러가지 도전들도 하면서, 다행히 나는 그 옷과 나를 분리하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다시 운전면허 얘기로 돌아와서, 그래서 나에게는 필기시험이 굉장히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또 그 시험이 당장 오후이기 때문에 더욱 더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 나는 돈을 냈다. 돈이라는 것은 단순히 금액적인 부분이 아니라, 에너지적으로 굉장한 역할을 지니고 있다. 돈을 내고나면 나는 일단 그 바운더리 안에 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이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돈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어진다. 그러한 점에서 돈이란 바운더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내가 그 바운더리 안에 있으면,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쓸 새가 없다. 시험 때까지 몇 시간 남지 않았지만 그 시간 안에 완전히 초집중을 하는 것이다. 그 초집중 상태에서는 여유롭게 며칠동안 한 것보다도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렇게 나는 당일 시험을 본다는 것을 알아버린 그 시험을, 그날 합격을 하게 되었다.


바운더리 이야기로 조금 더 가보자. 기능시험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는 일단 4시간이라는 교육시간이 있었다. 인간이 최대치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4시간 정도라고 어디선가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일 2~3시간 정도를 완전히 글에 집중하는 시간으로 할애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다른 일을 한다.


4시간 동안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굉장히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지만, 또 4시간 정도니까 할 수가 있다. 이 말은 즉, 그 이상이면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의 한계점, 나의 바운더리를 딱 세우고 거기에서는 철저하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되지 않고!


그 바운더리 안에서 또 중요한 것이 있다. 이미 그것을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다. 물론 그 배움의 과정은 쉽지만은 않다. 이미 잘하고 있는 사람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자신이 이것을 통달한 지 오래된 사람은 더더욱! 그래서 배우는 사람은, 마치 할복과 같은(?)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들을 묵묵히 받아들일 필요도 어느정도 있다.


기능을 연습하며 학창시절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해가 안되는데 무조건 외우라고 했을 때였다. 그래도 성인이 된 나는, 그때처럼 아무말 못하는 것이 아닌, 잠시 멈추어서 강사님께 "아니, 이거 이해가 안가는데요?"라고 말하는 용기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러면 강사님은 내 수준에 맞추어 다시 얘기해주시려고 노력했다. 강사님께도 감사했고, 나에게도 감사했다.





이전까지 삶에는 공식같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학을 진절머리나게 싫어했는데, 그 공식같은 것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냥 외우라고 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삶에도 없다고 믿어버렸는 지 모르겠다. 분명히 몸으로는 느끼고 있었으면서!


그런데 삶에는 어떤 공식같은 것이 있다. 물론 그 공식만을 머리로 외우면 안되겠지만, 그 공식에 마음을 열다보면 어느순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것도 나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공통의 공식 안에서 나만의 공식을 찾고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나의 삶을 찾아가는 것과도 비슷하다. 왜 운전 얘기하다가 삶의 얘기까지 가는 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기능시험도 100점으로 통과했다.


이제 도로주행시험이 남았다. 앞서 바운더리의 중요성과,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배우는 것, 그리고 나의 공식을 찾는 것을 예시로 들었다. 마지막은 이 두 가지와는 약간 결이 다르다. 하지만 이 또한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로주행을 연습할 때는 젊은 강사분이 가르쳐주셨는데, 나처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분이어서 편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연습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연을 날릴 때 얼레처럼 잡아주는 것이 있어, 그 안에서의 자유로운 사람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끌린다. 마구잡이로 날아가는 것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지만 단단하게 뿌리가 잡혀있는 그런 자유로움을! 그 안에서 나는 나의 감을 찾아갈 수가 있다.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즐겁게 연습을 했고, 나는 운전을 하면서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도로주행까지 한 번에 합격을 했다. 아, 내가 소원하던 자차타고 바다가기가 멀지 않았구나!


불과 4일 만에 상상만 했던 운전면허증이 내 손 안에 주어졌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30살이 넘어서야 딴 면허이지만, 그래서 나에게는 더 의미가 있었다. 대학생활이 끝나고 땄다면 친구들 다 따는 거라, 나도 별 생각이 없었을 텐데, 이번에는 정말 내가 필요로 해서 결정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내 마음 속에는 <운전하는 사람 = 어른> 이라는 말도 안되는 공식이 있었고, 이로써 나는 내가 인정한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프랙탈 구조 :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닮은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




삶이란 복잡해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연물을 오래 관찰하고 있으면 그 작은 자연물에서 삶의 많은 것들이 보이듯이 우리가 하는 작은 경험 경험은 절대로 작지가 않다. 그래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이 있고, 중용에는 '오직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하는 자가 자기 세상을 변화시킨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한 부분에서 삶을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것들을 아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그들은 삶을 충분히 살고 이해하면서 어떤 공식같은 것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제 어떤 선물들이 주어졌다. <바운더리, 잘 아는 사람에게 배우기, 전체의 공식 안에서 나의 공식을 찾아가기, 그리고 즐겁게 살기> 마치 삶이 어른이 된 나에게 힌트가 담긴 보석을 건네준 것만 같다. 앞으로 잘해나아가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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