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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Dec 08. 2023

워킹 온 어 클라우드

애플 에어팟 광고가 불러일으킨 놀라운 상상력

길거리에서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지 무지 시끄러웠다. 출근 시간이라 차가 많고 소음이 굉장했다. 100m 앞에서는 사고가 났는지 두 명의 사람이 차 밖으로 나와 서로의 잘못을 따지고 있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조금 더 걸어간다. 어떤 대기업 앞에서는 한 남성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에어팟을 착용한다. 길거리에서 경적을 울리던 수많은 차들도, 잘못을 따지던 차주들도, 공사 현장의 인부들도, 시위를 하고 있던 남성도 저 높은 하늘 위로 날려버린다. 내 주변에 큰 원으로 둘러싸인 결계를 만든다. 그제서야 지상의 소음은 잦아든다. 그 어떤 떠들썩한 방해물도 내 곁에 두지 않는다. 이제야 마음이 좀 평화로워지는 듯하다. 외부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소리만이 공기를 가득 채우니까.


앞의 이야기는 애플 에어팟의 2023년 광고 장면을 오마주해서 쓴 글이다. 나 역시 혼자 있을 때는 실내에 있든, 밖에 있든 거의 항상 무언가를 듣고 있다. 그런 내게 있어 절대로 침범할 수 없는 안전지대는 음악이다. 에어팟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과 내 플레이리스트 속 곡들이 만들어준 나만의 피난처. 모르는 사람들의 대화에 빨려 들어가기보다는 완전히 단절되고 싶을 때가 많다. 음악을 들으면 떠오르는 사유와 감정으로 인해 그 결계 안에서는 시간이 조금 다르게 간다. 나를 감싸고 있는 그 오색찬란한 버블 안에서 나는 또 다른 세계로 접속한다. 그 곳에서 나는 커다란 상상력과 함께 내가 갖고 싶은 그 날의 기분을 불러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기분을 발랄하게 업 시키고 싶을 땐 템포가 빠른 트로피컬 하우스 음악을 듣는다. 그 장르의 아티스트 중에서는 Sigala를 가장 좋아한다. 청량하게 통통 튀는 신시사이저 음을 들으니 하와이의 해변에 와있는 것 같다. 바람은 청정하고 하늘은 파랗게 청량하다. 비치볼을 주고받으며 뜨거운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사람들도 곁에 보인다. 하늘 높이 떠있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꿈결 같은 에메랄드 바다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저 멀리서 아른거리는 야자수가 온 몸으로 인사를 건네며 환대하는 것 같다.


다시, 에어팟 광고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진다. 신나는 음악을 배경으로 보도블럭은 스펀지 같은 물성으로 변해 나의 트램플린이 되어준다. 나는 공중에서 제비를 넘고,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들 위를 징검다리처럼 밟고 뛰어서 건넌다. 그 다음엔 하늘 꼭대기로 통통 튀어 오른다. 바운스하여 30층 빌딩 옥상까지 올라간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옥상에 앉아있던 비둘기와 시선을 교환한다. 너도 왔니? 나도 올라왔어. 오늘 바람이 참 좋네. 잠깐 쉬었다 갈게. 청량한 음악으로 인해 출근 길 나의 감정은 무기력함에서 활발함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오늘 하루도 난 또 다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멜랑콜리한 기분에 침잠하고 싶은 날엔 전구색과 주백색 불빛의 무드등만 몇 개 켜놓고 유튜브로 자주 듣는 음악 채널의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는다. 뉴욕의 스카이라인 야경이 통 유리창을 통해 펼쳐지는 고층의 라운지 바 사진이 배경으로 깔린다. 곧 상상 속에서 루프탑 바에 혼자 앉아 진 베이스 칵테일을 주문하는 차도녀가 된다. 흐르는 음악은 리듬감 있는 선율이 어디로 튈지 모르게 경쾌하면서도 차분하다. 사람으로 의인화해본다면, 통통 튀는 감각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에 입맛에 맞춰 대중적인 창작물을 만들어낼 줄 아는 영리한 아티스트를 떠오르게 한다. 재즈는 무언가에 집중해 작업을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몰입을 잃지 않도록 리드미컬하게,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는 예측 불가능한 멜로디가 음악적인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준다.


가끔은 혼술을 하며 독서를 할 수 있는 바에 가는 걸 좋아한다. 전체적으로 고요하면서도 조도가 낮아 내면에 침잠할 수 있게 하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든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상 속에서 비일상을 경험하게 하는 환상적인 느낌이다. 집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내고 싶어 최근 여러가지 모양의 무드등을 구매했다. 우선, 불을 다 끄고 거실의 전체적인 빛과 은은한 분위기를 잡아줄 이케아의 플로어스탠드를 켠다. 그리고 거실장과 장식장 위에 올려놓은 소형 무드등들을 추가로 켠다. 일광전구의 스노우맨은 동글동글한 모양이 마치 눈사람을 연상시키고, 버섯 모양의 렉슨 미니램프는 보기만 해도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전구들이 만들어낸 따뜻한 불빛의 세상에서 재즈에 잠겨 독서를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빠르게 흘러 있다. 그러고 나면 술을 한 잔도 하지 않았는데도 감성에 취한 듯한 기분이 든다.


위로가 필요한 날에는 마음을 다친 사람들을 안아주고 어루만져주는 가사의 노래들을 듣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이다. 이 노래엔 힘들었던 방황 끝에 아픔을 흘려보내고 자신의 모습과 마침내 화해한 고백과 성장의 서사가 담겨있다. 그리고 이제는 불행에 지지 않고 돌아오는 길을 찾아내겠다는 다짐 역시.


바다를 가르고 나아가는 용감한 여성의 이미지가 눈 앞에서 그려진다. 아무리 큰 파도가 와도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대한 개츠비의 한 문장에서처럼,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니까.’*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을 가진 듯한 그녀의 목소리로부터 다시 용기를 얻는다. 음악이 만들어준 서정적인 소행성 안에서, 힘들었던 그 날 일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하다. 내 감정 역시 슬픔에서 강인함으로 이어진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인용한 광고 : The new AirPods Pro | Quiet the noise, 2023 / Airpods | Bounce, 2019

(이 글은 위의 에어팟 광고 장면들을 오마주하여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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