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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eter 정민 Dec 16. 2023

사랑해, 크리스마스

John Lewis 광고가 전한 크리스마스 정신

한 소녀가 긴 천체망원경을 통해 밤하늘을 보고 있다. 곧 그녀의 시야에 둥글고 하얀 달이 잡힌다. 망원경의 배율을 높여 더 자세히 살펴본다. 울퉁불퉁한 달의 표면이 보이는가 싶더니, 저 멀리 빨간 지붕 아래에서 한 노인이 걸어나온다.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소녀는 입을 커다랗게 벌린 채로 놀란다. 그리고 팔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노인에게는 지구에 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 날 소녀는 또 다시 망원경을 들어 노인의 모습을 찾는다. 벤치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있는 노인은 참을 수 없이 쓸쓸해 보인다. 그래서 소녀는 지붕 위로 뛰어올라가 장난감 활에 편지를 묶어 달을 향해 쏜다. 하지만 그 편지가 달에 도달할 리 없다. 이번에는 종이비행기도 날려본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아래를 향해 떨어진다.


장면이 바뀌어 크리스마스 날이다. 형형색색의 오너먼트가 달린 커다란 트리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그 주변에서 루돌프 머리띠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낸 아이들이 함께 놀고 있다. 이와 대비되게, 다시 달에 사는 노인의 모습이 보인다. 평범한 궤도에서 벗어나 있는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는 외로움에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런데 멀리서 무언가가 달을 향해 다가오자, 노인은 고개를 들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지켜본다. 빨강, 파랑, 노랑, 하양색의 풍선이 잔뜩 달린 열기구 같은 물체가 통통 튀어 오고, 그 아래에는 선물 상자가 묶여 있다. 노인은 환하게 웃으며 선물 상자를 받아 든다. 포장을 풀어보니 아까 소녀가 썼던 것과 같은 천체망원경이 나온다. 이를 눈에 대고 보니 닿을 수 없이 아득하기만 했던 지구의 모습이 나타난다. 초점을 조절하니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된 마을의 모습이 보이고, 그 중 한 집에서, 선물을 건넨 바로 그 소녀가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천체망원경의 렌즈를 통해 지켜보는 눈과 눈이 마주친다. 노인의 눈은 눈물을 한 방울 흘린다. 그를 바라보는 소녀는 따스한 눈웃음으로 답한다. 그리고 화면에 한 문장의 자막이 뜬다.


Show someone they’re loved this Christmas.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누군가에게, 그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려주세요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브랜드가 있다. 세상에서 크리스마스에 가장 진심인 존 루이스(John Lewis), 영국의 백화점이다. 앞의 이야기는 존 루이스의 2015년 크리스마스 광고 영상 ‘ManOnTheMoon’에서 따왔다. 존 루이스는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사랑과 베풂을 주제로 한 시즌 광고를 선보였는데, 그 따뜻한 영상들이 선사한 먹먹한 감동에 나도 웃고 울며 자랐다. 그 시리즈에서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소녀와 그녀를 발견한 인간 소년이 서로의 문화를 배우며 마음을 나누기도 했고, (2021) 불 뿜는 아기 용이 사람들을 놀라게 해 미움을 받자, 한 소녀가 그를 세심하게 보살피기도 했다. (2019) 밤마다 코를 심하게 고는 천덕꾸러기 같은 괴물 친구에게 한 남자아이는 따뜻한 마음을 담아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2017) 이처럼 언어와 모습이 다른 존재가 서로를 이해하려 하는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마음껏 사랑하는 날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증오와 탐욕으로 얼룩져 있다고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세상은 온통 사랑 천지이다.* 러브 액츄얼리에서 한 남자는 한 장 한 장 스케치북을 넘기며 갓 결혼식을 올린 친구의 아내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고백했다. 한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한 동네의 모든 집들을 방문했다. 음원 차트 1위라는 영광을 얻은 락스타는 화려한 파티도 거부하고 그의 매니저에게 돌아와 우정을 나눴다. 해리 포터에서 위즐리 부인은 부모를 잃은 해리를 위해서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짰고, 해그리드는 해리의 부모님 사진이 든 앨범을 전했으며, 시리우스는 파이어볼트를 선물해 해리의 퀴디치 선수 인생에 날개를 달아줬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가족이나 연인 간의 사랑을 우선으로 생각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수많은 영화들이 내게 알려줬다. 그래서 한 해의 마지막을 가장 아름답게 장식하는 이 날에는, 사랑이란 이름 아래 한 데 묶이는 모든 종류의 연결과, 돌봄과, 용서와, 헤아림이 넘쳐흐른다. 그 어떤 형태의 사랑도 전할 수 있고, 허용되는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한다.


생각은 흐르고 흘러, 성탄절의 유래에 도달한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보내진 아기 예수와, 그가 누워 있던 신성한 구유의 모습. 그리고 구유 옆을 지킨 성모 마리아와 경배하러 달려온 요셉, 목동, 동방박사도 눈 앞에 그려본다. 누군가의 탄생을 지켜보고, 환대하고, 보살피는 일. 그리고 어른이 되어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주는 일. 이러한 정신이 탄생했기에, 그 밤은 가장 고요하고 거룩했다. 추운 겨울날, 전구로 장식된 푸른 상록수들이 새 생명과 빛을 희망하는 마음으로 밤을 밝혔고, 적막을 뚫고 내려온 천사들은 천상의 멜로디를 합창했다. 무수히 많은 별이 반짝였고, 그 곁에 포근한 어린 양도 함께 했다. 니콜라오 성인은 자애와 헌신으로 신자들을 보살폈고, 산타클로스의 원형이 되었다. 크리스찬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천국을 떠올리게 한다. 투명하고 깨끗한, 환상적인 순백의 눈꽃이 에덴 동산을 장식하는 곳. 그 곳은 우리의 모든 미움과 못생긴 마음을 상쇄시켜, 선악과를 발견하기 이전의 죄 없는 상태로 되돌려줄 것만 같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는 무조건적으로 타인을 사랑하고 환대할 줄 알았던 태초의 마음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자신을 돌봐 준 한 여인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 그 사소한 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그 사랑을 갚기 위해 한 남자는 크리스마스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구원한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3년의 연말에 읽은 가장 따뜻한 책이었다. 어떠한 형태의 사랑과 헌신도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걸 이 소설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이다. 청교도 정신으로 일상에서도 늘 금욕할 것을 강요했던 중세 시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지난 몇 년 간의 팬데믹 시대를 거쳐 우리들은 이제 크리스마스를 온전하게 기념하고 축하할 수 있다. 그래서 눈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집에 들였다. 어릴 적, 산타가 양말 안에 넣어놓고 간 선물이 뭘까 반짝이는 눈으로 아침을 기다렸던 아이가 이제 어른이 되었다. 그런 내게도 누군가를 돌아보고 헤아릴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온 마음을 다해 세상을 사랑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일부 표현을 인용했습니다.

*인용한 광고 : John Lewis Christmas advert 2015, Man On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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