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언니의 브랜드 페르소나 ‘언니’, 일상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한 여성이 친구와 인생 네 컷 사진을 찍던 중 화면을 보며 얼굴을 찌푸린다. 아.. 내 볼 살 정말 미쳤다. 한 남성은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한숨을 내쉰다. 탈모 증세가 진행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머리카락을 심어야 하나 하고 고민한다. 다른 여성은 앱으로 셀카를 이리저리 보정해보며 딱 이 정도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핸드폰으로 성형외과를 검색한다. 윤곽주사, 필러, 각종 시술 가격 등 무수히 많은 정보들이 화면에 쏟아진다. 그 때 나레이션이 함께 등장한다.
‘우리의 고민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지 말지, 어디서 할지, 뭐가 좋은 지, 알려줄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때 언니를 만났다.’
밝은 얼굴로 여성이 앱을 켠다. 앱 안에 담겨 있는 수많은 시술자들의 평점과 후기를 샅샅이 읽어본다. 그제서야 확신에 찬 밝은 목소리로 다시 이야기한다.
‘정확히 알게 됐다. 내가 뭘 해야 할지. 뭘 챙겨야 하는지. 궁금한 건 다 물어볼 수 있고.'
여성의 곁에서 다른 여성이 웃으며 말을 건다. 언니가 같이 가줘? 자막, 나레이션과 함께 앱의 로고가 등장하며 광고가 끝난다.
‘충분히 고민해도 괜찮아. 확신이 들 때까지. 강남언니’
성형수술, 그리고 뷰티 시술은 성공의 객관적 증거가 특히 요구되는 분야이다.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데다가 잘못되면 되돌릴 수 없는 무섭고도 불안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병원과 소비자 측의 정보력 차이가 크다는 특성까지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강남언니는 수많은 사용자들이 각종 시술 정보를 샅샅이 비교해주고, 경험자 후기까지 공유해주는 앱의 특성을 ‘언니’라는 키워드로 압축시켜 전달한다. ‘언니’는 나보다 경험이 많아 깊이 있게 조언해주고, 알짜 정보까지 알려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존재의 대명사다. 강남언니의 광고에서는 그런 감성적인 든든함이 레버리지 되었다. 내 얼굴에 하는 거니까 확신이 들 때까지 충분히 고민하고 알아봐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더 나아가 후속 광고 캠페인에서는 얼굴을 보며 고민하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과 함께 ‘누구나 언니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렇게 ‘언니’라는 존재의 이미지는 의지할 수 있는, 강남언니의 브랜드 페르소나 그 자체가 된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언니’의 조건은 과연 무엇일까?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 따르고 싶고, 기대고 싶은 믿음직스러운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언니’하면 작년에 큰 유행어가 되어버린 장면 하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2>의 “잘 봐, 언니들의 싸움이다!”라는 밈을 탄생시킨 바로 그 장면. 이 말은 스우파의 리더 계급 배틀에서 허니제이가 최강자인 모니카에게 지목을 받고 무대로 나가면서 팀원들에게 한 말이다. 승패를 걱정하지 말고 즐기면서 보라고 말하는 언니들의 당당한 자신감과 리더십이 느껴졌다. 그래서 정말이지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최근 각종 K컨텐츠 속에서는 강하고 능력 있는 언니들의 이미지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이러한 흐름을 대변하듯, ‘걸크러쉬’라는 단어가 우리 삶 깊숙이 자리잡았다. 과거의 타투 사진이 공개되자, ‘그 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의연한 자존감을 보여준 배우 한소희. <슈룹>과 <소년심판>에서 사회적 약자를 돌보며, 사회적 문제를 대하는 어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수준 높은 연기로 몸소 보여준 배우 김혜수. 그리고 정상에 서겠다는 여성의 야망이나, 사랑을 주체적으로 쟁취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각종 K팝송까지.
어느덧 생각이 퍼져 나가 나에게 있었던 수많은 언니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우선 가장 먼저, 4살 위의 친언니. 사실 4살의 나이 터울이면 초등학교 때 말고는 같은 학교에 함께 다닐 일이 없고, 현재 겪고 있는 삶의 진로도 다른 단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5학년이었던, 그리고 2학년 때 6학년이었던 언니가 있어 얼마나 든든했던지. 짓궂은 남자아이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어떤 존재가 바로 같은 건물에 있다고 생각하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큰 안도감이 생기곤 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남들이 놀리기 좋은 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정말 많이 당하곤 했는데, 한 번은 언니가 대신 그를 혼내 준 일이 있어 참으로 통쾌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런 언니의 든든함은 사는 동안 내내 지속되어 왔다. 가족 행사가 있을 때도, 함께 여행을 갈 때도, 고맙게도 그녀가 검색, 예약을 도맡아서 해준 덕분에 둘째는 묻어갈 수 있었다. 그런 노고 덕분에 수많은 일들이 잘 굴러 갔음을, 그리고 이는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철없던 때는 잘 몰랐었다.
그랬던 언니와 나의 길도 성인이 되어 갈라지자, 이번엔 다른 언니들의 존재를 사회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안 써지는 기획서를 붙잡고 있을 때 마치 길에서 선물을 주워 온 것처럼 아이디어를 휙휙 던져주는 회사 선배들. 궂은 일을 나 대신 가져가고, 일이 잘못 되었을 때는 책임지고 해결해주던 윗 분들. 결혼, 출산 등 인생에서 거쳐가는 수많은 라이프 스테이지 위로 먼저 걸어가며 그 삶이 어떠한 지 슬쩍 슬쩍 보여줬던 그 언니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업무량이 많기로 유명한 광고 업계에서 워크와 패밀리, 취미 활동, 이 모든 걸 포기하지 않고 헤쳐 나가고 있던 멋진 롤모델이었다. 그렇게 따라갈 수 있는 누군가가 앞서 걷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그리고 나 역시 그 걸음의 궤적을 따라 나아가리라 다짐하며 마음 속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언니들 역시 매 순간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그리고 꼿꼿하게 서있지는 못했다. 삶과 책임의 무게를 받아들이며 우수에 젖은 눈동자나 축 처진 뒷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기에. 그럴 때면 나 역시 그 어깨 너머에서 전해지는 아련한 아픔을 함께 느꼈다.
그랬던 나도 이제 나이가 꽤 들어 누군가의 언니가 되어버렸다. 회사 후배들은 일에서 의지하고 싶을 때나, 가끔 내 지갑을 털고 싶을 때마다 나를 장난스럽게 언니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가 마저 할 테니까 너는 먼저 들어가라고 멋있게 말하면, 후배는 뭉클해진 눈으로 대답한다. 언니~ 편의점에 지갑을 안 갖고 온 후배 역시 나에게 애교를 부리며 외친다. 언니~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난 나는 이런 호칭이 가끔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월이 나를 언니로 진급시켜버린 것을. 그렇게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후배들은 종종 묻는다. 선배님은 스트레스 안 받으시죠. 항상 웃고 있잖아요. 회사에서 이런 말을 하도 많이 들어봐서 한 번은 회사에서의 내 얼굴이 과연 어떤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세상에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겠냐마는. 억울하게도 원래 생긴 게 타고난 웃는 상인 걸 탓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신입사원 때부터 웬만한 산전수전은 다 겪어봐서, 회사생활에 내성이 생겨버린 것이 큰 이유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어떤 후배는 나를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포커페이스'라 지칭하며 멋지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문득 속으로 생각했다. 근데 그거 아니 너희들. 언니들도 힘들고 외로울 때가 있단다. 근데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다. 너희들도 언니가 되면 느끼게 될 수많은 감정들이 있겠지. 그걸 겪으면 위의 수많은 언니들을 아련하게 떠올리며 생각하게 될 거야. 그들의 삶을 조용히 응원하며 뒤에서 따라 걷고 싶다고.
*인용한 광고 : 강남언니, ‘충분히 고민해도 괜찮아, 확신이 들 때까지’ 편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