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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돌이 Dec 14. 2018

[2편] 창문이 사라지는 시대

추억, 웃음, 그리고 사람 - '골목 크리에이티브' 연재시리즈




사진 : 김기찬 (좌 : 서울 중림동, 1973 / 우 : 서울 중림동, 1978)





[2편] 창문이 사라지는 시대



골목과 그곳의 집들이 점점 사라지고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아쉬운 점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창문’에 관한 것이다.


아파트 창문이 햇볕과 바람의 통로 역할을 한다면,

골목의 창문은

소통과 교제의 창구 역할까지 했기 때문이다.

쓰리베이, 포베이 등 화려함을 자랑하는

아파트 창문들은 그 기능적인 면에서는

임무를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을지 몰라도

소통과 교제의 측면에서

 골목의 창문과는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photo by 카피돌이




중학교 시절, 절친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의 집은 우리 집 대문을 열면

골목을 사이에 두고

겨우 두 세 걸음 바로 앞에 있었다.

두 집은 서로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고,

한 이불만 덮고 자지 않을 뿐 한 가족이었다.


우리 둘은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서로의 집을 뻔질나게 오다녔는데,

그 녀석이 나를 부르러 올 때는 특징이 있었다.




photo by 카피돌이




대문 앞에서 이름을 부르거나,

초인종을 누르거나,

또는 대문을 두드리거나,

나를 부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건만

그 녀석은 유독 골목의 창문 밑에서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깔고

“현아~ 기이임 혀어어언~~” 하고 불렀다.


내 방 창문을 열면 바로 골목이었고,

그 녀석의 집이 보였고,

밤톨 같은 녀석의 머리가 보였다.

우리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떠들기도 했고,

만화책이나 장기판을 빌려주기도 했고,

숙제가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photo by 카피돌이




그 이후

고등학교 동창 중에도 똑같은 부류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나를 찾을 때면 전화보다는 창문을 애용했는데,

그 동창은 내 이름을 부르는 대신

말없이 창문을 두드렸다.


‘톡, 톡, 톡~’

유리창을 가볍게 세 번 치는 소리가 들리면 영락없었다.

창문을 열면 어김없이 그 동창이었고,

커다랗고 조금은 슬퍼 보이는 눈망울에 웃음기가 번지며 내게 물었다.

“뭐하고 있었냐? 술 한 잔 할래?”




photo by 카피돌이




친구들은 왜 창문을 좋아했을까?

아마도 그건 뭔가 내밀한 느낌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들만의 소통의 공간을 향유한다는 느낌,

다시 말해 창문을 정서적 아지트로 여긴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밤이 내린 도시의 아파트 창문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모니터의 픽셀처럼 한 칸, 한 칸

불빛이 점멸하는 무수한 아파트의 창문들.

예전 골목의 창문들에 비하면 그 숫자는 훨씬 많고

모양새는 세련되며 정교하다.




photo by 카피돌이




그런데 만약 ‘과거의 내’가

아파트 15층에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녀석’과 창문을 통해 만화책을 주고받고

‘그 동창’이 술 한 잔 하자며 톡톡톡 창문을 두드리던 추억은……

절대로 생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수줍은 너의 얼굴이 창을 열고 볼 것만 같아~”

하며 처연하게 목 놓아 불렀던 김현식의 ‘골목길’……

이런 노래 또한 가슴을 두드리는

명곡으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 친구들도 아직 나처럼 기억하고 있을까?

골목으로 나 있던 내 방의 작은 창문과

마름모 모양의 녹슨 창살을.




photo by 카피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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