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발레리나> 를 보며 떠오른 질문들
"나는 왜 이 일을 하지?
나는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가 내게 이 일을 왜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8월이 되면서, 해야 할 일들도 여름방학 숙제처럼 한가득 쌓여있는 요즘입니다. 다이어리를 열어도, 담당자로부터 전화를 받아도, 업무와 관련된 메일이 들어와도 일의 방대한 양만큼 부담감에 짓눌리는 것만 같은 한 주간이 지나갔어요. 지난 주 내내 저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야 했습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지?
나는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가 내게 이 일을 왜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여름방학의 쉼표처럼 꺼내어 본 영화, <발레리나>의 리뷰입니다. 이 영화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의 한 고아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무용수의 꿈을 갖고 있는 펠리시와 발명가의 꿈을 꾸는 빅터는 어느 날 우여곡절 끝에 고아원을 탈출하게 되지요. 파리에 있는 무용학교의 사진 한 장만을 들고, 둘은 용감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시끌벅적한 시작처럼, 이것이 지금 제가 하는 일에서도 가장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여행을 떠날 때처럼, 목적지를 알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어디론가 닿고 싶은 곳이 있다면, 나는 그 곳에 왜 가야만 할까?'
펠리시는 무사히? 파리의 무용학교에 도착하지만, 이내 관리인에게 발견되면서 쫓겨납니다. 그 곳에서 우연히 펠리시는 과거의 무용수이고, 현재는 무용학교의 청소 일을 하고 있는 오데뜨를 만납니다. 그녀와 함께 기거하면서 무용을 위한 기본기를 배우게 되는데요. 이 장면에서 제가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지금 내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는지였어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나는 그들과 함께 이 길을 같은 마음과 한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걸까?'
영화에서 펠리시가 연습실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기본기 연습입니다. 나무위에 매달린 종을 치고 바닥에 물을 튀기지 않고 착지하기, 여러 번 회전을 하고 물컵에 물을 쏟지 않고 제대로 걷기,유리거울을 발로 조심스럽게 닦아내기 등등. 하나의 일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떠한 일을 할 때 그 일에 필요한 작은 활동이라 생각되는 자료수집, 계획서 작성, 회의 준비 등의 자잘한 시간들도 모여서 단단하고 제대로 된 일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지금 제가 해야 할 일들을 큰 덩어리로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지만, 아주 작은 덩어리로 쪼개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성실하게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묘미는 파리의 멋진 배경을 구경하는 것이었어요. 영화 속에서 보이는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 센느강, 오페라하우스까지. 어디론가 여행을 가기 위해서 목적지만을 보고 달릴 때가 많지만, 여행지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 또한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만 보고 달리다가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고 말 테니까요.
영화 속에서 최고의 안무가 메란테를 통해서 학생들이 레슨을 받고, 호두까기 인형의 클라라 역할을 따내기 위해서 매일같이 연습을 거듭합니다. 지칠 법도 한데 매일 똑같은 시간, 연습량을 이겨내고 있어요. 극 중에서 펠리시와 경쟁구도를 이루는 까미유라는 친구는 기술이 매우 뛰어납니다. 엄마의 스파르타 훈련 아래에서 성장하며,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 최고가 되는 길이라는 것을 배워온 까미유에게 약점은 감정이 부족한 것이였어요.
까미유는 오디션을 통해서 펠리시를 꺾고, 당당하게 이겼음에도 뭔가 2%가 부족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게 바로 뭘까,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 걸까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니 제 눈에는 다시금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마음가짐이었습니다. 머리보다는 마음을 많이 쓰고,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마음을 나누는 일을 하다보니 저는 사실 이성적인 사고보다는, 감성적이고 상대의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기술이 더욱 발달해있어요. 그런데 요즘 일련의 일들은 머리로만, 그냥 잘 하려고만 하니 제게는 무척이나 숙제 같고 어렵게만 느껴진 것이었지요. 영화 속에서 마지막으로 메란테는 까미유와 펠리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왜 춤을 추니?"
이 질문에 "엄마가 하라고 해서요." 라고 까미유는 대답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무 생각이 없어졌으면 좋겠기보다는, 지금 '내가 하는 일들에서 힌트를 얻어야지' 라는 목적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도 했고요. 영화 속 엔딩, 펠리시의 답변과는 달리 최근의 저는 나답게 살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잘 해야 하니까, 머리로 해야 해. 사람들에게 프로로 보이려면, 이렇게 해야 하겠지.' 라는 저 스스로 만들었던 계획과 규정들은 오히려 스스로를 나답지 못하고 자신없게 만들었던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할 때 그것을 하는 이유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대체 나는 왜 이 지구에 와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 '라는 질문을 해야 할 것인지,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걸까?
내가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의 질문에 대한 답변 또한 저 스스로 선택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꿈을 찾아가는 여정, 말로는 멋지지만 하루하루 똑같은 일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면서 산다는 것은요. 작은 성취감에 기쁘고 보람찬 순간들만큼이나, 해내지 못하는 내가 못나보이고 구려지는 순간들도 꽤나 많은 것 같아요. 최근의 제가 하는 일들을 통해서 내내 겪었던 것처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영화 속의 이 장면들을 잊지 않고 싶어요. 멋진 풍경처럼, 목적지까지 열심히 달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만나는 일상의 아름다운 장면들과 순간들을 음미할 수 있는 여유와 이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토닥이고 위로하면서 걸어가는 것이요. 바로 오늘 이 길을 걸어가는 주인공인 제가 지금 여기에 서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요. 오늘을 그냥 영화 속의 펠리시처럼, 나답게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는 그냥 제가 좋아서 이 일을 해요.
누군가의 삶을 보다 행복해지는 것을 돕기 위해서 지금 저는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나와 너 우리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저는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영화를 보고 난 뒤, 저는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이렇게 답변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