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용숙 Jan 17. 2023

슬픔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며칠 전 <‘유키즈>’라는 프로를 봤다. 마침 배우 김혜자가 초대 손님이다. 김혜자는 국민 엄마로 통하여 무슨 말을 해도 진정성 있게 들린다. 그녀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배우 한지민의 연기를 보고 ‘젊음이 빛나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MC 유재석이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 나이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라며 자신도 어느 덧 나이 듦의 연령대임을 표한다. 그 말에 이어 김혜자는 평소 말투로 툭 내 뱉는다.


“조금 더 있어봐, 뭔가...뭔가 슬퍼요.”

“아주 구체적인 슬픔이 아니예요.”

“어떤 때 너무 새벽에 눈떠서 저쪽 뿌연 창문을 보고 있으면 내가 언제 이런 거를 못보고 떠나겠지. 그리고 뭔가 슬프고....”



나도 그런 때가 가끔 있다. 막연히 어떤 한 장면을 보고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지난 주 어느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가다가 검은 구름사이 하늘의 붉은 빛 노을을 보았을 때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왜 눈물이 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체가 모호하다. 어쩌면 새해에 맞닥뜨린 은사님의 부고소식 때문이 아닐까?


  지난 가을에 단풍구경 한 번 모시겠다고 전화 통화한 후 뵙지를 못해 죄송스런 마음으로 연말에 전화를 드렸다. 목소리가 평소와 너무 달라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서울 호스피스 병동에 와 있다고 하신다. 은사님은 암 선고를 받고 일 년 반 정도 생존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병원에 계신 건 병원 진단 후 삼개월이 경과된 시점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어, 나는 75세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지. 너무도 고맙게 제 나이에 가게 됐네. 기뻐. 너무 기뻐. 나, 사실 삶이 너무 버거웠어. 항암치료 안 받을 거야. 정신이 흐려진 채로 생을 마감하긴 싫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 몸의 고통은 견뎌야지. 이 정도는 감사히 받아야지. 천주교 죽음도 읽어봤고 불교의 죽음관도 읽어봤어. 나에게 죽음은 무로 돌아가는 길이야. 그래서 미련이 없네.”

전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로 그동안 벗이 되어줘서 고마웠다고 하신다. 나는 뭐라고 말씀 드려야할지 몰라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고 몸과 마음이 평화롭기를 기도드린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은사님은 항암치료를 받으라는 의사 아들의 간곡한 권유에도 마다하고 대구로 내려와 살림살이를 모두 정리하고 자신의 죽음 이후 들어가는 모든 절차와 경제적 비용을 만들어놓고 가셨다. 결혼 생활은 십년 하셨다.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아들 둘을 키우느라 무던히 참고 인내하는 삶을 사셨다. 이제 자식들 다 잘 되어 분가하고 외롭지만 평안한 노후가 보장돼 있는데 퇴임하고 딱 십 년 만에 가신 것이다.


 기차를 타고 대구서 서울을 가고 오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어 부고 안내문을 살펴보니 ‘고인에게 글쓰기’ 난이 있다. 벌써 제자 몇 명이 글을 올려놓았다. 수업에선 엄격하셨지만 사적인 자리에선 유머와 위트가 넘치던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만나면 친구처럼 허물없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처럼 나이든 제자들은 삶의 동지로서 더 깊은 유대감을 가졌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물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무엇이 진정 슬픈 것일까? 은사님을 다시 뵐 수 없어서? 은사님의 생이 불쌍해서? 너무 일찍 가셔서? 어쩌면 은사님의 죽음을 빙자한 나의 슬픔이 올라 온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슬픔은 무엇일까? 은사님의 나이만큼 살 수 있다면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은 십년이다. 십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야 잘 사는 것일까? 퇴직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일어난 집안의 우환은 감당하기 힘들게 긴 시간을 잡아먹었다. 따라서 은퇴 후 생의 설계는 매번 무산되고 되는대로 한해를 넘기곤 했다. 그렇다면 은사님을 떠나보낸 슬픔의 이면에 내 생의 불안이 슬픔으로 올라온 것일까?


한 때는 웅장한 자연이나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 눈물이 났다. 표현이 어려운 찰나의 순정한 느낌에도 눈물이 고였다. 새벽녘 봇도랑 맑은 물소리를 들을 때는 전율이 돋고 목이 메었다. 하루 중 시간이 여린 갈피로 느껴지는 저녁과 밤이 오는 간극의 시간대, 새벽을 여는 푸름과 주홍빛의 하늘, 겨울저녁 눈이 흩날릴 때 알맞게 들려오는 음악들...그런 시간과 마주하면 마음이 저리고 아파왔다.


 가장 애잔한 슬픔이 느껴졌던 건 막내아들이 서너 살 때 작은 포크로 돈가스 조각을 집어먹으며 “엄마 맛있다” 할 때였다. 입을 오물거리며 뒷목덜미 힘줄을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목이 메어왔다. 저 어린 것이 음식 맛을 어떻게 알지? 돈가스 한 조각에 감동어린 표정을 짓는 저 순둥이가 세상을 무슨 힘으로 부딪치며 살아가지? 그 생각에 배꼽아래서 뜨거운 울음덩이가 올라오는 듯 했다.


 그런데 지금 막무가내로 흘러내리는 눈물은 아름다워서, 애처러워서, 후회 되어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다. 나잇대에 따라 생의 무게와 빛깔이 달라지듯 감각으로 들어오는 슬픈 정조는 변하겠지만, 은사님과의 이별에서 오는 슬픔은 내 근원적인 슬픔이 얹혀진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어쩌면 나이가 어려서 미처 애도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엄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이제 터져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슬픔은 나이를 먹지 않는가보다.

작가의 이전글 칠월이 지나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