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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모임 로칸디나 Oct 14. 2018

로디즈가 만난 영화 <우리의 투쟁>

우리의 소리 없는 투쟁을 위하여 <우리의 투쟁>, 나선혜

<우리의 투쟁>, 2018, 기욤 세네즈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주관적 생각을 바탕으로 한 감상임을 밝힙니다.)


우리의 소리 없는 투쟁을 위하여 <우리의 투쟁> 


우리 안에서 매일 소리 없는 전투가 벌어진다


<우리의 투쟁>의 원제는 ‘Nos batailles’로, 직역한다면 ‘우리의 전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투라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쟁취하는 것이며, 때문에 전장에는 혼란스러운 총성과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전투’라는 단어를 내건 이 영화에서는 그 어떤 날카로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극적인 이야기 구조를 취할 수 있는 소재가 도처에 산재해 있지만, 영화는 이 소재를 극적으로 소비하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그 대신, 숨죽인 채 인물들의 전투를, 그들만의 투쟁을 응시한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의 삶 자체가 소리 없는 전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자리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자. 우리의 하루는 크고 작은 문제와 고민들로 가득 차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와 고민들은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저 조용하게 우리의 머리와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을 뿐이다. 우리네 삶의 전투라는 것은 본디 이런 것이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안으로는 치열함을 안고 사는 우리. 각자의 짐을 지고 각자의 소리 없는 전투에 임하는 우리. 그리고 이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카메라가 있다. 카메라를 따라가면, ‘올리비에’라는 한 인물이 처해있는 전투를 만나게 된다. 그 전투의 모습은 어떠할까. 전투의 끝은 승리일까, 패배일까.


전투는 안팎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올리비에는 물류공장으로 보이는 직장에서 팀장으로 근무한다. 팀원들의 업무환경이나 컨디션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그는 팀원들의 지지와 신뢰를 받는 사람이다. 반면, 효율성 판단에 따라 인원을 감축하는 인사팀과는 지속적인 마찰을 빚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올리비에가 맡은 팀의 한 팀원이 해고를 통보받고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것이 영화가 그린 올리비에의 첫 번째 전투이다.


그 이후로도 직장 내에서의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상부와의 끊임없는 마찰, 노동조합을 외면하는 직원들, 고용 불안정 등의 문제는 계속해서 그를 압박한다. 하나가 정리된 듯하다가도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 인생이라는 전투. 그중에서도 ‘직장’이라는 바깥세상에서 우리가 겪어야 할 전투는 동시다발적이다.


바깥세상에서 시달린다고 해서, 가정이 마냥 온전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올리비에의 아내인 로라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불안해 보이는 사람이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않지만,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피로감을 느꼈을 로라는 어느 날 훌쩍 집을 떠나버린다. 사랑해 마지않는 두 아이들을 집에 남겨둔 채. 


그 이후로 올리비에는 ‘가정’이라는 안쪽 세상에서도 쉴 새 없이 전투를 치른다. 아이들에게 아침을 먹이고 등교시키는 일부터 아이들이 받은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일까지, 모든 것이 투쟁 그 자체이다. 어쩌면 로라는 매일같이 벌어지는 이 전투에 지쳐버려 집을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 올리비에는 로라가 떠난 이유를 연신 ‘모르겠다’라고 하지만, 이미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쪽 역시 하나의 전쟁터임을. 


이렇듯 인생의 전투는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고, 시기를 가리지 않고 우리들을 찾아오기 마련이다. 여기서 하나 다행인 것이 있다면, 전투가 거듭될수록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깨닫거나 변화시켜 나간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의 투쟁>이 결국 희망적인 메시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승리와 패배를 겪으며 삶은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전투를 함부로 끝맺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전장 한복판에 둔 채로 잠자코 지켜볼 뿐이다. 회사는 여전히 효율로 사람을 판단한다. 사람들을 해고하던 인사팀 직원이 해고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곳이 직장이다. 가정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로라는 아직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여전히 로라를 그리워한다. 아이들이 로라를 만나겠다며 무작정 집을 떠나버린 사건마저 있었다. 아버지로서 일과 아이들을 동시에 챙기는 일은 결코 쉬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끝없어 보이는 전투들은 하나하나 모여 결국 작은 변화로 이어진다. 직원들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올리비에는 인사팀의 자리를 제안받는다. 더 높은 연봉과 권한을 얻을 수 있는 자리이지만,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자리이기도 하다.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그는 또 다른 전투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한편 올리비에는 두 아이들과 함께 가족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로라의 부재를 인정하고, 자기 자신과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에 대해 더 이상 쉬쉬하지 않으려 한다. 심적인 문제로 말을 잃었던 딸 로즈도 서서히 입을 열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다음에 다가올 투쟁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간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올리비에와 두 아이들이 담벼락에 그려놓은 글귀이다. 언젠가 돌아올 로라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전투와 투쟁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생의 전투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승패 자체가 아닌, 승패를 겪으며 결국 삶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 글귀는 일종의 희망적인 선언과도 같다.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인생이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기다리겠다는 선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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