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모임 로칸디나 Nov 29. 2018

로디즈가 만난 영화 <국가부도의 날>

시대 속의 얼굴 들여다보기 <국가부도의 날>, 표국청

<국가부도의 날>, 2018, 최국희


   영화를 보기 전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마진 콜>과 <1987>이다. 각각 경제적인 대사건을 다룬다는 점과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크게 다루어지는 사건을 다룬다는 점이 닮아있는 두 편의 영화를 떠올리며 솔직히 걱정을 조금 했다.


   전자의 영화의 틀 안에 한국영화 특유의 신파적인 부분이 가미된 버전이면 어떻게 할까? 후자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큰 사건을 소재로 국가적 신화 요소를 부각하는 영화라면 어떻게 할까?     


   물론 <1987>이 국가적 신화를 부각하며 미화에 전념하는 것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고 <마진 콜>이 엄청난 명작이어서 그 안에 한국적 요소가 들어가면 영화가 가치를 잃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일단 영화를 보고 만 하루가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필자는 두 가지 걱정은 기우였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는 지나치게 신파에 기대지 않고 또한 역사적 사건을 지나치게 신화화시키지도 않는다. 이에 더해 그동안 단지 시대로서, 세대로서 표현되어오던 IMF라는 사건을 개인화시키는 것에 성공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화라는 것은 사건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그 사건의 시작점과 경과, 끝 지점에 어떠한 단체를 두는 것이 아닌 인물을 세운다는 의미이며 앞으로의 글의 전개에 있어서도 그렇게 사용할 생각이다.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주관적 생각을 바탕으로 한 감상임을 밝힙니다.)


시대 속의 얼굴 들여다보기, <국가부도의 날>     


   영화의 시작에서 시대를 설명하기 위한 각종 영상자료가 등장하고 보이는 것은 신호등이다. 빨간 불로 멈추어 있던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고 한국은행의 모습이 등장한다. 영화의 마지막 지점에서도 이 신호등 인서트가 사용되는 것을 보면 영화가 멈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영화는 이야기를 크게 네 갈래로 갈라놓는다. 국가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과 국가부도 사태를 미리 파악하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신분을 높이고자 하는 윤정학, 공장을 운영하며 살아가지만 경기 악화와 국가부도로 삶이 위태로워지는 갑수, 마지막으로 이 모든 상황을 이용하여 가진 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감독은 IMF를 통해 영리하게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때, 인물들이 IMF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인가 아니면 IMF가 인물들을 그려내는 데 사용되는가는 큰 차이가 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지금까지의 IMF를 다룬 영상매체는 보통 인물을 IMF의 설명을 위해 사용해왔다. 하지만 <국가부도의 날>은 IMF라는 사건과 시대상을 세 인물을 포착하기 위한 아이템으로 활용한다.     

   때문에 영화는 IMF라는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인물 하나하나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다. 물론 이 감정을 잘 그려내었는가는 또 다른 별개의 문제다.     

시대적 공간에서 인물을 분리해내는 것.     


   영화를 보는 내내 인상에 남는 샷들은 클로즈업이다. 이 영화에는 클로즈업이 많다. 물론 작금의 한국 영화계에 등장하는 영화들에서 클로즈업이 많은 것은 그렇게 새롭거나 놀랍거나 특이한 부분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클로즈업들이 인상에 남는 이유는 단지 배우의 얼굴에 기대기 위한 클로즈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클로즈업은 기본적으로 관객의 시야를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에게 단 하나의 그림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클로즈업의 목적이다. 때문에 클로즈업은 관객을 맹목적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잘생긴 배우의 얼굴, 멋지고 예쁘다고 여겨지는 몸매 등에 클로즈업을 제시하는 영화는 클로즈업을 이용해 관객을 맹목적으로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국가부도의 날>에서 등장하는 클로즈업은 사뭇 다르다. 똑같이 인물의 얼굴이고 똑같이 배우의 모습이지만, 무분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것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영화가 인물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사건의 경과에 따른 인물의 변화가 클로즈업을 통해 드러나기에 클로즈업은 전혀 무분별하다는 느낌을 풍기지 않는다. 심도를 얕게 하여 공간과 인물이 분리될 정도로 극단적인 방식의 클로즈업 및 인물을 바라보는 카메라를 활용하는 것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지는 고유한 문법이라는 뜻이다.


   영화가 공간을 배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는 유효하다. 영화 속에서 실제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곳들을 제외한 공간들은 모두 임의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사무실과 집, 공장 등은 그 시대의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이는 IMF라는 강력한 시대적 배경을 지워내는 작업처럼 느껴진다. 자칫 영화를 따라간 끝에 IMF라는 사건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그 속에 있는 인물을 들여다보는 것이 이 영화의 목표라는 것을 주장하듯이 말이다.     


   길거리를 걷는 갑수와 윤정학의 장면에서 시대 배경을 나타내는 것은 거리에 걸린 현수막 하나뿐이다. 그 뒤로 보이는 공간들은 사실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것을 억지로 90년대 말로 가져가고자 하지 않는다. 단지 가릴 뿐이다. 이것이 제작 여건상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필자에게는 공간을 지워내는 영화의 문법과 맞아떨어지는 선택이라고 여겨졌다.     

   

   핵심은 결국 시대와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닌 인물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에 따른 또 다른 결과들이 있다는 것이다.     

IMF를 신화로 소모하지 않는다는 것.     


   IMF를 신화로 소모하지 않는 것 또한 영화가 가지는 매력 중 하나이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IMF사건 이후 경제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들의 노력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신화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IMF와의 협상 이후 보였던 사회 각층의 노력에 대해서 다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한국 영화계 특히나 상업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점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전에도 특정 사건이나 기득권층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이는 영화들은 있었으나 그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영화들 속에서도 국민들의 행위는 하나의 신화가 되어 아름답게 여겨지곤 했었다.     


   하지만 <국가부도의 날>은 그런 행위를 미화하지 않는다. 또한 이미지로서 소비하는 것에 있어서도 최대한의 절제를 보여준다. 특히나 누구나 들어왔던 금 모으기 운동에 대해서 영화는 날카로운 지적을 보여주는데 결과적으로 그 금 모으기 운동은 기업을 살리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 나아가 그 기업들이 살아난 것은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낸 시발점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인지시킨다.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행위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단지 그 행위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을 보이지 않는 영리한 선택을 영화는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재의 이야기를 하는 것.


   영화를 보며 아쉬웠던 것은 영화의 끝에서 등장하는 20년 후의 이야기들이다. IMF를 막는 것에 실패한 이후 영화는 마치 공익광고처럼 변화한다. 인물들의 내레이션이 등장하고 또다시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고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한다. 이 부분이 꼭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인물들에 대한 이후의 이야기들이 궁금한 관객들을 위한 선택이었다면 단순히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는 또 다른 위기는 계속해서 찾아오고 우리는 그것을 대비하여야 하며 앞선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직접’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렇게 보여주었으면서 또다시 한번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자칫 영화를 보는 관객의 생각을 차단할 수 있어서 위험해 보인다. 오히려 이후의 이야기 속에서 갑수의 변화한 태도만을 보여주는 장면이, 20년 후 장면들에서 유일하게 유의미한 장면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보다 영화를 쉽게 만들겠다는 의지 내지는 작가가 가진 생각을 강하게 주입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의 이유가 20년 후가 등장해야 하는 이유라면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오히려 깎아내리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쉬운 선택이자 유치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두 가지 경우가 아니라면 영화의 상업적 성공을 위하여 삽입했다고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데 이는 이해할 수는 있으나 대단히 불쾌하다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자신의 판단을 내려 영화의 메시지를 찾아내고 그 메시지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하고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일련의 소통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라면 말 그대로 불쾌하다.     


   어찌 되었든 앞서 이야기했던 요소들을 떠나서 영화가 보여주는 IMF시대 속 사람들의 모습만으로도 영화를 만난 것에 대해 소득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디즈가 만난 영화 <우리의 투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