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될까?
"엄마, 엄마는 몇 살까지 살 거야?"
"엄마가 할머니 되면 하늘나라 가는 거야?"
"엄마가 하늘나라 가면 나도 따라갈 거야."
언제쯤이었을까?
아이가 다가올 이별을 미리 슬퍼하고 서러워하며 죽음에 대한 질문을 시작한 것은.
몇 년 사이 대학 동창, 친구의 남편, 작은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옆에서 들은 그 소식들로 언젠가 엄마도 세상을 떠나리라는 걸 알게 되었을까?
"엄마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우린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어. 그리고 우리에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아주 많아. 음메 음메 소의 털처럼 많아."
아이의 마음을 다독였다.
아이는 질문을 바꿔 다시 물었다.
“엄마, 엄마는 다시 태어난다면 뭘로 태어나고 싶어?”
예전에 남편에게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한 번 살았으면 됐지. 뭘 또 태어나.”
퉁명스러운 대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남편은 나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당황해했다.
"뭘 또 태어나!"라는 말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쓸쓸하게 하는지... 그걸 경험했던지라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글쎄, 모르겠네. 이안이는 뭘로 태어나고 싶은데?"
“나는 엄마한테 맞춰서 정하려고."
아이의 대답을 듣는 순간 마음에 커다란 파도가 일었다.
나는 사는 것이 형벌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생에 대한 애착도 없었다. 인연과 고통을 끊어낼 수 있는 '죽음'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주어진 삶을 끝까지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어린 딸아이를 세상에 남겨 두고 떠나는 상상을 하면 반사적으로 눈물이 솟구친다.
입학과 졸업, 초경, 결혼, 아이를 낳는다면 임신과 출산까지.
아이가 엄마 없이 그 순간들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조여오듯 아프다.
인생이 춥고 허기질 때 아이가 가장 먼저 떠올리고 찾아갈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오랫동안 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전생에 큰 빚을 진 사람이 나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빚을 갚는 일이, 자식을 키우는 일이 짐처럼 무겁고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지고 싶은 순간도 있다. 하지만 짊어지고 가는 짐이 있기에 삶에 혹독한 눈보라가 몰아쳐도 땀을 내며 끝까지 걸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나.
다음 생이 있다면 우린 또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