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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우리 Mar 23. 2022

아이의 부탁

엄마, 많이 많이 사랑해주고 지켜주세요.

속 시끄러운 일이 많았던 작년 어느날,

몸도 버티질 못하고 입술에 커다란 포진이 올라왔다.

엄마의 몸과 마음이 어떤지 예민한 딸아이는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등원 준비를 재촉하는 나에게 딸아이는 불쑥 "난 유치원에서는 즐거운데 집에 오면 우울해."라는 말을 했다.

엄마의 마음이 지옥이면 아이는 그 지옥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일까?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분노 버튼이 눌린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엄마도 노력하고 있다고! 너는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데? 한 번에 말을 듣긴 해? 어?"

아이는 얼음처럼 굳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른 강도로 화를 내는 엄마의 모습이 두려웠을 것이다.

"엄마, 미안해."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니 어딘가로 증발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아이를 등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다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다 길가에 선 채 소리 내어 울었다.




침울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이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엄마가 몸과 마음이 요새 좀 힘드네. 그래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이안이가 좀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알겠어. 엄마, 나도 엄마한테 부탁할 것이 있어."

"뭔데?"


-많이 안아주기

-말을 끝까지 들어주기

-화내지 않기

-잘 때 집에 있어 주기

-질문에 잘 대답해주기




가만히 듣다가 식탁 한 구석에 놓여 있던 포스트잇에 아이가 한 말을 적었다.

포스트잇을 식탁 옆에 붙이자 아이는 싱긋 웃고 TV가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포스트잇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어릴 적 내가 부모님께 바라던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나는 내 마음이 필요로 하는 걸 몰랐고 표현하지 못했구나. 그래서 마음에 응어리가 많구나. 딸아이는 나와는 달리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또박또박 엄마에게 말하고 있다.

'엄마, 많이 많이 사랑해주고 지켜주세요.'라고.


엄마로서 부끄럽고 어릴 적 내가 떠올라 마음이 아리다. 

아이를 낳고 기르지 않았다면 어린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을까?

아이를 기르고 어릴 적 나를 위로하는 일.

그것이 육아라는 걸 이제는 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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