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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주호 Jooho Yum Feb 16. 2023

어머니의 산, 설악의 품에서

Prologue


환경운동이란 건,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하루는 24시간, 일주일은 168시간이다. 그 중 직장인들이 일주일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아마 금요일 저녁이 아닐까 싶다. 주중의 회사 업무를 마무리하고, 주말을 앞둔 그 시간 말이다. 한 주 동안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친구,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휴식을 취하는 금요일, 몇 명의 트레일러너들은 설악산으로 향했다. 설악산 오색 구간에 케이블카 설치 이슈가 또다시 대두되었고, 설악산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미약하지만, 무언가 해보기 위해 떠났다. 그들은 사랑하는 설악산을 지키기 위해 24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산을 달리는 운동을 트레일러닝(Trail running)이라고 하며, 산, 들, 강과 오솔길 등을 달린다. 트레일러닝을 하는 사람을 트레일러너 라고 부른다.

 


산은 대자연의 어머니다. 

작은 생명의 씨앗 하나로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루며, 대자연의 산을 이룬다. 

만물의 자연을 한없이 포용하고 감사 안으며, 대자연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2023년 1월 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다시 시작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설악산은 항상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고, 그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는 치유 받을 수 있었다. 피곤한 일상에 지칠 때 면, 언제나 산으로 향했고, 산은 항상 어머니같이 느껴졌다. 땀 흘리며, 온몸으로 대자연을 느낌으로서 회복할 수 있었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번엔 우리가 어머니를 지켜내야 할 순간이 온 것 같았다. 총 8명의 트레일러너(고경덕, 김규영, 김동현, 손준호, 이창해, 정철순, 최홍주 그리고 염주호)가 이번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위해 모였다.


*설악산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인 동시에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백두대간 보호지역, 산림 유전자원보호구역이다. 그뿐만 아니라,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의 주요 서식지이며, 반달 가슴 곰, 사향노루, 수달, 하늘 다람쥐가 살고 있으며, 1292종의 다양한 식물과 1936종의 동물이 분포하고 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설악산 오색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사업으로 1982년 시작해 환경훼손문제로 수차례 사업 추진과 중단이 반복되어, 지금까지 보류되고 있는 사업이다


 이번 프로젝트 목표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기 위해, 설악산을 달리면서 오색케이블카 이슈를 알리고,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공유함으로써, 설악산이 갖는 자연 그대로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2월 11일 00시 속초 바다를 출발하여, 설악산 소공원, 비선대, 천불동 계곡을 지나 소청봉, 중청봉, 끝청, 대청봉을 달려 오색으로 내려오는 Sea to Summit을 진행하기로 했다. 거리는 약 35km, 누적 상승고도는 2,800m였다. 거기에다 지난주에 내린 많은 눈으로 쉽지 않은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았다.


*Sea to Summit은 바다에서부터 정상까지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고도가 0m인 위치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달리는 방법이다. 이렇게 달리면, 그 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끝청은 오색케이블카가 설치되는 정류장이다.


 사실 나는 2년 전부터 매년 1회 이상 설악산 Sea to Summit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속초 바다에서 시작해 설악산을 달리면서 본 풍경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동, 식물들은 경이로웠다. 보통은 날씨가 따듯한 6월이나 9월에 진행했는데, 올해는 오색케이블카 이슈로 인해 추운 겨울 설악산을 찾게 되었다. 속초의 바닷바람의 꽤 추웠지만,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그래도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 든든했다.


동서울 버스 터미널에서 출발 전


 2월 10일 오후 7시 30분, 회사 업무를 마치고, 동서울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다들 업무로 인해 피곤한 몸이었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동서울 터미널에선 우선 6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총 8명이 함께 하기로 했는데, 그 중 2명은 이미 속초로 가고 있었다) 이미 알고 지내던 친구도 있었고, 처음 보는 친구도 있었다. 직업도, 나이도 다 달랐지만 설악산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만은 모두 같았다. 우리는 짧게 서로 통성명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속초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는데, 프로젝트가 00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노력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설악산에 대한 설렘과 케이블카 이슈에 대한 복잡한 마음으로 쉽게 잠들지 못했다. 속초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2명의 친구도 합류하였다. 잠깐의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갖고, 프로젝트 출발을 위해 속초 바다로 향했다.


출발은 언제나 그렇듯 설렘과 긴장이 공존한다. (왼쪽부터 정철순, 김동현, 이창해, 손준호, 고경덕, 염주호, 감규영, 최홍주)


 2월 11일 00시, 속초 바다의 파도 소리만 잔잔히 들린다. 파도가 우리에게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 주는 소리였다. 파도의 응원을 들으면서, 우리는 그렇게 설악으로 향했다. 3시간 정도를 달리니, 드디어 설악산의 모습이 보였다. 케이블카 이슈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겁고 숙연해졌다. ‘너무 걱정마, 설악산아, 우리가 꼭 지켜줄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계기간에는 입산이 오전 4시부터여서,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날씨가 영하인데다, 바람이 꽤 매서웠다. 주변에 문을 연 편의점도 없어 추위에 마냥 떨다, 눈에 화장실이 들어왔다. 우리는 화장실에 옹기종기 모여, 입산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냄새 나는 화장실이었지만, 우리는 마냥 좋았다. 


산을 즐긴다는 건, 정상석과 함께 사진을 찍거나, 

정상에서 멋진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다. 

산을 올라가는 모든 순간, 순간이 다 산을 즐기는 것이다. 

어쩌면 정상에서 느끼는 풍경과 감정은 산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아주 일부분이다.


 이윽고, 입산통제가 풀렸고, 설악산 매표소를 지나 비선대로 향했다. 사실 설악산에는 이미 케이블카가 하나 있다. 1971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권금성 케이블카는 설악산 소공원에서 해발 800m 설악산 자락까지 단숨에 오르게 해준다. 등산을 한다면 약 1시간 정도가 걸리는 코스인데, 케이블카를 타면 5분 정도면 도착한다. 이렇게 편리한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올라간 권금성 탑승장 주변은 더 이상 나무와 꽃은 볼 수 없고, 외롭게 바위만 남아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면서, 정상 부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된 것이다. 


 우리가 산을 올라가는 것, 자연을 즐긴다는 것은 정상에 올라 멋진 풍경을 감상한다는 것 만을 의미할까? 산을 올라가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은 없는 걸까? 올라가는 과정은 그저 정상에서의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한 불필요한 부분인 걸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 나는 비선대로 향했다.


눈 덮인 계곡 위, 은은한 달빛이 만들어 낸 순백의 은하수

새까만 밤하늘에 박힌 수 많은 별들

청아하게 들리는 계곡의 물소리, 사박사박 들리는 발걸음 소리와 거친 호흡소리 


달 빛과 설악이 만들어준 은하수 옆을 달리며 온 몸으로 설악을 경험했다.


 비선대로 가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금방 비선대에 도착해 천불동 계곡으로 들어섰다. 땀이 조금 나고, 호흡이 가빠졌다. 잠시 쉬어 가려고 고개를 돌려 계곡을 바라 보았다. 계곡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하얀 눈들은 반짝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은 보니 달빛은 은은하게 빛났다. 달빛이 만들어 준 은하수 계곡이었다. 우리는 은하수 계곡 위, 다리를 지나고 또 지나며, 달빛이 만들어준 은하수 계곡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오련 폭포를 지나, 무너미 고개로 올라가는 길, 한 줄기 바람이 뺨을 스쳤다. 차디찬 겨울의 바람이었지만, 그 속에서는 수많은 생명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설악이 숨쉬며, 내뱉는 생명의 날 숨이었다.    


눈을 감고 숲을 떠올리면, 초록의 나무들과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은 이미지로 떠오르지만, 

숲속에 사는 동물들의 이미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부자연스럽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인지하지 못한다. 

숲속에서 동물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생명의 발자국(왼쪽)과 누군가 쉬어갔을 작지만 따듯한 공간(오른쪽)


 오늘의 설악은 흰색이었다. 며칠 전에 내린 많은 양의 눈으로, 하얗게 변해버린 설악산이었다. 거기다 추운 날씨도 인해 생명의 온기는 쉽사리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순간 이름 모를 발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이 늦은 시간, 추위 속에서 설악산을 즐기고 있는 건 비단 우리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생명들이 바삐 이곳을 누비고 있었다.


 그리고 바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위 밑에는 눈이 없었고, 왠지 모를 따듯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곳에선 노루, 산양을 비롯해 수많은 생명들이 잠시 쉬어 갔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상을 하며, 주변을 돌아보니 평소에 보지 못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연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은 우리가 모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의미 없는 바위 하나일지라도, 그곳 동물들에게는 쉬어갈 수 있는 쉼터이자, 생명의 보금자리인 것이다. 


 문득, 몇 시간 전 설악산 입구에서 입산 시간을 기다리며 추위를 피해 모였던 화장실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소청봉에 오르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산길은 눈으로 너무 미끄러웠다. 더욱이 밤 동안 우리는 쉼 없이 달렸고, 매서운 겨울바람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몸은 점점 추워졌고, 지쳐가고 있었다. 정상으로 가는걸,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었다.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에 더 이상 무리하지 않고 돌아가도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오늘은 왠지 끝청에 서서 설악산을 보고 싶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가 떠오른다. 추운 날씨였지만 햇살만큼은 더없이 포근하고 따듯했다.


 그때였다. 해가 뜨기 시작했다. 해의 온기가 기나긴 밤에서 설악을 깨우고 있었다. 추위에 얼었던 우리의 손과 발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뜨는 해였지만, 해가 이렇게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겼다. 가는 길에 만나는 등산객분들께서는 우리를 궁금해하기도, 응원해 주기도 하셨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색케이블카 이슈를 모르고 계셨고, 몇몇 분들은 기존에 설치된 권금성 케이블카와 혼동하고 계셨다. (어떤 등산객분은 우리가 기존에 설치된 권금성 케이블카를 제거하자는 운동으로 착각하셨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닌 다른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관심이 있는 몇몇 사람들이라도 모여 부지런히 불편한 상황을 알리고,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자연은 앞서 많은 선배들께서 싸워 지켜낸 것인지도 모른다. 


오색케이블카 설치 예정지인 끝청에서, 우리는 케이블카 반대를 외쳤다.


 케이블카가 설치될 예정지인 끝청에 도착하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추운 날씨를 견뎌낸 이름 모를 꽃과 나무들도 있었다. 추운 겨울을 그렇게 버텼는데, 향기로운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없어질까 봐 걱정되었다. 숙연해졌다. 끝청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감싸 안으며, ‘나무야, 네가 오래도록 이곳에서 살 수 있도록, 우리가 지켜줄게’라고 낮게 속삭였다. 단순한 시각적 욕구 충족을 위해,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 곳을 파괴하지 않았으면 했다.


추운 겨울에도 불구하고, 설악산에는 수많은 생명이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끝청에서의 아쉬움을 남겨두고 우리는 다시 대청봉으로 향했다. 대청봉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의 반대 운동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셨다. 좋아하는 운동을 통해 이렇게 환경운동을 할 수 있다니, 스스로가 뿌듯하고 대견스러웠다. 


 오색으로 내려오는 길은 꽤 험하고 길었다. 5km 남짓이었지만 수많은 돌이 있었고, 내려오는 길 중간중간 얼음이 있어 미끄러웠다. 이렇게 힘든 구간조차도 설악산의 매력이었다. 만약 이 구간에 케이블카가 생긴다면,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아쉬웠다. 우리는 하산하는 중간중간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며, 새들의 우아한 음악을 감상했다. 미끄러운 길을 내려오면서 꽤 긴장했었는데, 새소리를 들으니, 긴장이 풀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돌계단을 달리고, 달려 마침내 남설악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아무도 다친 사람 없이 잘 하산해서 그런지 긴장이 풀리며 졸음이 몰려왔다. 화장실에 들려 간단히 세수를 하고, 평상에 누웠다. 햇살이 따듯했다. 포근한 어머니의 품이 생각났다.  


내려오는 길, 마주치는 분들께서 우리를 응원해주셨다.


 2020년 코로나가 발병하여, 최근에 들어서야 서서히 일상이 회복되어가고 있다. 코로나가 발병하면서, 원 헬스(one health)라는 개념도 급부상하게 되었는데, 원 헬스는 사람, 동물, 생태계 사이의 연계를 통하여 모두에게 최적의 건강을 제공하기 위한 다학제적 접근을 의미한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선, 동물도, 생태계도 건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만약,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면, 어쩌면, 더 많은 관광객이 올 수도 있고, 어쩌면 움직이기 불편한 분들께서 좀 더 쉽게 정상에 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 살고 있는 수많은 동, 식물은 공사의 소음과 수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각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 설악산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자중하면 어떨까. 


Epilogue


올해는 지독하게 추웠다. 

그래서 긴 외출을 하기 전이나 잠자기 전에는 배관이 얼지 않도록 물을 한 방울씩 떨어지게 틀어놔야 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작은 물방울이지만, 그 한 방울이 물방울이 전체 배관을 얼지 않도록 만든다는 것을. 

오늘 우리의 활동이 작은 물 한 방울이 되었으면 한다.


 1년은 8,760시간이다. 그 중 우리는 이번 활동을 위해 딱 24시간을 사용했다. 또한 전문 활동가도 아닌, 일반 회사원들이 기획하고 참여했다.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했지만, 환경운동은 환경활동단체에서만 하는 건 줄 알고 있었다. 나 같은 일반인 참여하기 어렵고, 또 시간이 많이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미숙했을지도, 미약했을지도 모르지만, 사랑하는 설악산을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 설악산에 대한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환경 운동을 하면 좋겠다. 


 우리 스스로가 지키지 않으면, 지금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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