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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주호 Jooho Yum Feb 18. 2023

순환 : 연어와 보

트레일 러닝이라는 취미로 환경문제를 접근해 보고자 시도한 것은 벌써 3년 전 일이다.


* SAVE THE JIRI :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운동을 위해 우리는 달리고, 걷고, 주변을 청소했다.  @ 사진 제공 : 파타고니아 


 3년 전 가을 준섭, 강은, 하늘, 희종 그리고 나는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운동을 주제로 지리산에 함께 모였었다. 가을이었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꽤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달리면서 만난 동, 식물들과 작은 마을의 모습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억난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 SAVE THE는 SAVE 지키다 라는 단어와 THE & (more) 라는 뜻을 가지고 만든 환경 단체이다.

 우리는 산을 달리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즐기며, 자연의 중요성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환경 보호에는 여러 방법이 존재하지만, 자연을 직접적으로 즐기고, 느낀 관심은 보다 자연스럽고 적극적으로 환경 보호에 동참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2020년 세이브더 지리(지리산)를 시작으로, 2021년에는 세이브더 아일랜드(섬)를 걸쳐, 올 해에는 세이브더 프렌즈(친구들)를 주제로 활동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트레일 러닝을 하면서 환경적인 문제를 이슈하고 공부할 수 있다니, 나에게는 너무나 즐거운 활동이었다. 그래서 벌써 3년째 이 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다. 


눈을 감고 숲을 떠올리면, 초록의 나무들과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은 이미지로 떠오르지만, 

숲 속에 사는 동물들의 이미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부자연스럽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인지하지 못한다. 

숲 속에서 동물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트레일 러닝을 하면서 접하는 숲에 대해 어느 순간 의문이 들었다. 눈으로 보고 있지만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겉만을 보는 기분이었다. 숲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동, 식물들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올해 주제를 동, 식물로 정하게 되었다. 


 그중 나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건 연어의 회귀에 대한 부분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살면서 살아 있는 연어가 헤엄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책이나 동영상으로만 본 연어가 나에게는 전부였다. 


청아하게 빛나는 가을 하늘과 시린 계곡 사이 그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연어를 보고 싶었다.


 연어라는 생물은 바다의 영양분을 다시 숲으로 돌려주는 소중한 존재다.

 연어는 태어나면서부터 고아다. 부모 연어는 알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수명을 다한다. 그렇게 홀로 태어난 연어는 숲이 키운다. 성체가 된 연어는 바다로 향하고, 바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때가 되면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강의 상류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 과정에서 육지의 동물들에게 겨울을 보낼 수 있는 먹이가 되고, 죽은 사체는 썩어서 숲에 영양분을 제공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는 연어보다 중요한 주제가 많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연어가 그리 친숙한 동물이 아닐 수도 있고, 나처럼 헤엄치는 연어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활동의 주제를 연어로 선정한 건 단순히 연어에 대한 이야기뿐 만 아니라, 생태계 순환이라는 더 큰 이야길 담고 싶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하게 ‘연어를 보호하자거나 연어를 더 많이 우리 강에서 볼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하자’는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연어라는 한 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연어라는 특별한 종을 통해 생태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순환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연어가 태어나는 곳에서부터 바다까지의 길을 달리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남대천을 통해 가장 많은 연어가 회귀하는데, 이 남대천은 법수치 계곡에서부터 수원이 시작한다. 계곡을 따라 달리면서 자연과 연어, 순환에 대해 관찰하고 공부하기로 했다. 


*연어는 크게 대서양 연어와 태평양 연어로 나뉜다. 태평양 연어는 첨연어(Chum), 은연어(Coho), 곱사연어(Pink), 홍연어(Sockeye), 왕연어(Chinook), 시마연어(Cherry) 등 6종이고 우리나라를 찾는 연어는 첨연어와 시마연어 두 종류다.


 그래서 첫날은 법수치 계곡에서 양양 바다까지 약 35km를, 그리고 다음날에는 양양 바다에서 올라오는 연어와 함께 10km 정도를 뛰기로 했다. 예지, 산희, 희종, 규영, 진희 그리고 나는 오후의 따듯한 햇살 아래 35km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파타고니아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는데, 예산에 대한 지원뿐 만 아니라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 수지 차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중간중간 만나는 계곡에서 멈춰 우리는 연어를 찾고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힘차게 헤엄치는 연어는 볼 수 없었다.


 11월 초, 이미 연어들이 많이 올라오는 시기였기에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중간중간에 멈춰 계곡을 관찰했다. 하지만, 힘차게 헤엄치는 연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정상적이라면 법수치 계곡에서 연어의 모습이 관찰되어야 했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단 한 마리도 없다니 이상했다.


 법수치 계곡에서부터 양양 바다까지 약 5시간을 달리면서 본 연어는 남대천 하류에서 고작 몇 마리뿐이었고, 그마저도 죽어 있었다. 자유롭게 헤엄치는 연어를 보고 싶어서 35km를 달려왔는데, 한 마리의 헤엄치는 연어도 보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이런 상황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곡의 확장을 위해 파헤쳐진 계곡

도로의 건설을 위해 사라진 계곡 주변의 나무들 

그리고 계곡 중간중간 설치된 보

모든 것들이 사람의 손길 때문이었다.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강 주변의 나무들은 여름에 강물의 온도를 떨어뜨려서 물고기들이 생활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또한 물에 떨어지는 나뭇잎, 가지, 껍질, 열매는 수중 플랑크톤과 곤충의 먹이가 되고, 그렇게 자란 플랑크톤과 곤충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된다. 나뭇가지는 천천히 물에 가라앉아서 작은 물고기의 안식처가 된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도로는 계곡에 붙어서 만들어졌다. 아마 경치 때문일 것이다. 차로 운전하면서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과 산을 잘 볼 수 있도록 처음부터 설계되었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도로는 자연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또 강의 흐름을 좋게 하기 위해 강을 파헤치는 행위는 강 아래 있는 모래와 자갈을 없애고, 그로 인해 작은 물고기들의 보금자리 또한 없어지게 된다. 단조롭게 흐르는 강은 공기 거품을 만들 수 없고, 그 결과 용존 산소의 농도도 떨어지게 되며, 생물이 더 이상 살기 어려운 공간이 된다.


 물에서 사는 생물들은 다양하다. 다양한 생물들은 다양한 환경이 필요하다. 어떤 생물은 빠른 물의 흐림이 필요하고 어떤 생물은 물이 고여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획일화된 흐름은 생물의 다양성을 위협하고, 결국 순환의 고리가 끊어진다. 


 뿐만 아니다. 강과 천을 가로막고 있는 보들은 물의 흐름을 막고, 이로 인해 퇴적물이 보 주변에 쌓이게 된다. 이렇게 쌓인 퇴적물은 썩게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물속의 산소를 빼앗아 생물을 더 이상 살 수 없게 만든다.


*보는 하천에서 관개용수를 수로에 끌어들이려고 수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둑으로 된 수리구조물이다. 파타고니아에서는 푸른 심장이라는 프로젝트로 국내 설치된 33,900개의 보들 중, 사용하지 않는 5,800개의 보를 철거하여 대한민국의 강, 하천이 순환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 


 또한 라는 구조물은 생태계를 이분화시킨다. 사실 보에는 물고기가 상류로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 논 어도가 있다. 어도는 보 아래에 있는 생물이 보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 논 길인데, 우리가 관찰한 결과 어떤 물고기도 그 어도를 사용할 수 없었다. 사람의 관점으로 만들어진 어도는 급급하게 보여 주기 식으로 만들어졌기에 무용지물이었다. 그 어디에도 자연을 위한 개발은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자연을 위한 개발이라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숲은 강에게 영양분과 안식처를 공급해 주고, 그 영양분은 강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과 나아가서는 바다에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순환되고 있다. 그중 하나만 없어도, 생태계 고리는 유지되기 어렵다.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그래서일까 왠지 연어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다.


 날이 밝았다. 붉은 태양의 따듯함은 간밤의 추위를 달랬고, 이내 뺨을 스치는 바람이 포근했다. 좋은 기분이었다. 왠지 힘차게 헤엄치는 연어를 관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우리는 양양 바다에서 올라오는 연어와 함께 양 10km 구간을 뛰기로 했다. 어제보다 더 많은 멤버가 함께 하기로 했다. 든든했다. 그리고 파타고니아 코리아의 김광현 환경 팀장님께서 연어와 관련된 더 깊은 이야길 해주셨다. 달리면서 중간중간 멈추어, 이야길 나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힘차게 헤엄치는 연어를 마침내 만났다. 유유히 헤엄치는 등에서는 우아함이, 거 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였다.


 그리고 마침내, 연어를 볼 수 있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린 연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처음 본 아름다운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유유히 헤엄치는 등줄기에서는 우아한 기품이 느껴졌고, 거 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꼬리에선 힘이 느껴졌다. 경이로운 모습에 숨이 턱 막혔다. 자유롭게 무리 지어 헤엄치는 모습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남대천의 하류에서 약 3km 정도 올라가니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긴 울타리가 있었다. 그 울타리는 지금까지 본 그 어떤 것보다 절망적이었다


자유롭게 흘러야 할 남대천에 긴 울타리라니, 누가 봐도 이상했다. 그리고 그 광경은 참혹했다.


 그것은 남대천을 회귀하는 모든 연어가 내수면 생명 자원센터로 들어가도록 만든 울타리였다. 남대천을 회귀하는 연어의 인공 수정을 위한 연어 포획 작업을 위함이었다. 이런 울타리 때문에, 연어가 더 이상 상류로 올라가지 못하고, 사업소 안 부화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나라 연어 인공부화 방류사업은 1913년 함경남도 고원에서 연어 부화장 설립 이래 인위적인 관리가 시작되었고, 본격적인 사업은 1984년 양양내수면연구소 (현 내수면생명자원센터)가 건립되면서 연어의 자원증강과 자원관리 시작했다. 


 궁금했다. 왜 연어를 상류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지에 대해서. 


 환경이 파괴되며 귀향에 성공하는 연어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농업용수를 위해 설치해 놓은 보는 연어를 포함한 회유성 어종들에게 큰 장애물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골재 채취, 벌목 등으로 물이 오염되고 산란장소가 줄어들며 연어들은 갈수록 서식지를 잃고 있다. 어제 본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 해결책으로 시작한 것이 인공부화 사업이다. 올라오는 연어를 잡아 인공수정을 한 후, 방류해 생존율을 올리고 회귀 율을 올리려는 것이다. 


*당일 현장에서 볼 수 없었지만, 유튜브 영상을 통해 본 인공 부화장의 모습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회귀하는 연어는 긴 울타리로 인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길을 찾던 연어들은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연구소 안으로 들어온 연어는 사람의 손에 잡혀 컨베이어 벨트에 던져진다. 끌려 올라간 연어들은 각목에 뒤통수를 맞아 죽는다. 그리고 암컷의 배를 갈라 알을 꺼내고, 수컷의 배를 쥐어짜 정액을 뿌린다. 한 번에 죽지 않고 의식이 남아 버둥버둥 거리는 데도 배를 갈라 알을 꺼내는 그 장면이 잊히지가 않는다. 알과 정액을 뽑아낸 연어들은 바구니에 짐짝처럼 던져진다.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회귀율을 높이려는 것일까? 자연의 회복을 위해? 아니면 순환의 고리를 위해? 그 의문이 풀리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답은 연어축제였다.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는 그 축제가 필요했고, 그래서 더 많은 연어가 필요해 보였다. 순수한 자연의 회복을 위한 활동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많은 연어를 인공수정을 통해 방류해서, 자연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연구소로 다시 잡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운 좋게, 울타리를 연어는 그다음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관광 목적으로 만들어 논 보였다. 보는 농경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존재다. 다만 이 보를 사람들의 관광을 목적으로, 단순한 심미의 목적으로 꼭 설치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설치된 보는 많은 생명을 죽게 만들었고, 그 어디에도 아름다움은 없었다.


수많은 생명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 자연은 혼자의 힘으로 변화되어 갔다. 지진, 화산, 해일과 태풍 등 큰 에너지가 자연의 대부분의 모습을 결정했고, 비, 눈 그리고 바람이 그 모습을 좀 더 다듬었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자연에 많은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에 투영되며, 자연은 점점 변화되고 있다.


*인류세 :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이다.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의 환경체계는 급격하게 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구환경과 맞서 싸우게 된 시대를 뜻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점점 빠르게 변화되어 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자연의 모습도 그렇게 바꾸어 가고 있다. 자연도 효율화되어 가는 것이다. 이전에 볼 수 있었던 구불구불한 모습의 강이나 개울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개발 사업으로 인해 확장되고, 획일화되어 간다.


  물의 흐름은 단순화되고, 강 주변의 나무는 베어지고, 대신에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데크길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개발된 자연에서는 더 이상 생명은 살 수 없고, 우리는 그 생명을 복원하기 위해 우리의 입장에서 또다시 많은 과오를 하고 있다.


  숲, 개울, 연어, 바다가 서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생명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숲과 개울, 연어와 바다는 자연의 얼굴이고, 자연의 얼굴은 우리 사람들의 얼굴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우리는 연결되어 있고 순환되어 간다. 단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전체적인 숲을 보고, 우리가 무언가를 해서 해결하기보다는 무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이 자연다울 수 있도록 해주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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