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마주 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클릭 한 번으로 우리는 전 세계 어느 곳이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여행을 가고, 그곳을 방문한다.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시대에, 이렇게 비효율 적인 일을 하는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지구온난화 문제로 탄소 흡수량에 대한 이슈가 대두되는 지금, 블루카본(Blue Carbon)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블루카본은 어패류, 잘피, 염생식물등 바닷가에서 서식하는 생물뿐만 아니라 갯벌등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의미한다. 그중, 이번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갯벌에 대해 활동해보고 싶었다.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해 보면, 사실 갯벌에서 뛰어놀아본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동해나 남해안과 같이 넓은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은 자주 갔지, 갯벌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막연하게 갯벌은 왠지 심심하고 불편한 장소로만 상상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심심하고 불편한 곳을 가보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여행을 가기 전, 여행지의 맛집을 찾고, 관광지를 검색해 보고, 쇼핑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처럼, 나 역시 갯벌을 방문하기 전, 갯벌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기로 했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갯벌을 가기로 결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영화 '수라' 시사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황윤 감독님의 영화 '수라'는 새만금 간척사업과 갯벌의 생물들, 지역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영화를 통해 마주한 새만금 간척사업은 충격적이었다. 지역 주민들, 환경운동 단체들의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바다가 막히는 순간, 많은 사람이 울부짖었으며, 그렇게 막힌 바다는 갯벌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물들이 파도를 기다리다 말라죽어가는 장면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난 줄만 알았단 수라 갯벌, 그곳에는 아직 많은 생명들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있었고, 또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영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올해에는 꼭 수라를 방문해야겠다. 그곳에서 수많은 생명들과 꼭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파타고니아에서 The Voice of Activists라는 행사를 하게 되었는데, 영화 수라 제작에 참여하고, 지금도 수라 갯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오동필, 김형균 새만금 시민 행태 조사단 공동 단장님의 '새만금 수라 갯벌 보전'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현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직접 활동을 하면서, 수라 갯벌이 변화되어 온 모습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강의를 위해 먼 길을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 전혀 없이 반가운 미소와 함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길 해주셨다.
그렇게 두 번의 사전 공부를 하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하루빨리 갯벌을 마주하고 싶어졌다.
트레일러닝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산과 들, 강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렇게 자연에서 쌓은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에 관심이 생기게 되는데, 이번에도 쌓은 시간만큼 벌써 갯벌이 친숙해진 것 같다.
갯벌은 바다이기도 하고, 땅이기도 하다.
밀물과 썰물로 인해, 어떤 때는 땅이었다가, 어떤 때는 바다로 바뀌는 곳이다.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갖고 있다는 건, 그곳에 사는 생물의 다양성과 특이성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염생식물은 그 대표적인 예다.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식물은 염분이 높은 곳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삼투압 현장으로 식물이 갖고 있는 수분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염생식물은 세포 속에 염분이 많이 들어 있으며, 물을 잘 흡수하여, 염분이 많은 갯벌과 바닷가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탄소의 저장을 물론이고, 갯벌 내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의 식량원과 보금자리가 되어 준다.
요즘은 식물의 성장 촉진을 위해 화학 비료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화학비료는 주로 인(P), 질소(N), 칼륨(K)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대부분 농업현장에서 이 화학비료를 과다 사용하고 있다. 과다 사용으로 인해 남은 인(P), 질소(N), 칼륨(K)들은 강을 걸쳐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바닷속 유기양분이 많아지게 되고, 조류가 엄청나게 번성하게 되는데, 그 결과 적조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적조 현상으로 인해 용존 산소량이 급격하게 저하되고, 수많은 수중 생물들이 질식해서 죽게 된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발생되는 환경문제를 어쩌면 갯벌은 묵묵히 바닷속 생명들을 살려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무의도에서 하루, 그리고 영종도에서 하루 이렇게 이틀에 걸쳐 진행하기로 했다.
무의도에서는 무의도 갯벌을 통해 갯벌을 경험하는데 집중하기로 했고, 영종도에서는 인천녹색연합 팀장님을 통해 인천의 갯벌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과 영종도 갯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해 활동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무의도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리니, 소금기가 바람을 타고 피부에 와닿았다. 도로를 건너 몇 분 채 걷지 않아 넓은 갯벌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에선 잔잔한 파도가 치고 있었고, 드넓게 펼쳐진 검은 갯벌에 매료된 우리,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천천히 다가갔다. 발가락 사이로 갯벌의 부드러움 느껴졌다. 갯벌 사이사이 흐르는 갯골에는 맑은 물이 흘렀다. 우리는 그 사이를 조용히 걸으며 갯벌을 가만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니, 간간히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밤게였다. 밤게는 밤모양의 등껍질을 갖고 있는 게인데, 옆이 아닌 앞으로 걷고 있었다. 그리고 잡으면 죽은 척하기 일쑤였다. 신기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게와는 다른 모습과 다른 특성이 있다는 것이. 직접 와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 멀리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저어새가 보였다.
저어새는 세계적인 멸종위기 종으로 주걱같이 생긴 긴 부리를 좌, 우로 저어서 먹이 활동을 한다. 이렇게 먹이 활동을 하기 위해 젓는 행동으로 인해, 물속에는 산소가 유입되고 순환이 이루어진다. 단순해 보이는 새의 먹이 활동은 그저 먹이 활동으로만 귀결되지 않는 것이다. 저어새는 천천히 머리를 흔들었다. 좌, 우로 고갤 흔들었지만, 주변에 물이 튀지 않을 만큼, 느긋하고 우아한 움직이었다. 살아오면서 몇 분 동안 가만히 한 생물의 움직임을 관찰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건 처음이었다. 순간적으로 저어새의 몸짓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어새의 큰 주걱과 같은 부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새의 부리와는 다르다. 사람의 입술처럼 부드럽기 때문에 그렇게 저으면서 부리에 닿는 느낌으로 먹이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갯벌에는 수많은 새들이 살고 있다. 수많은 새들은 저마다 다른 부리와 다리와, 움직임을 갖고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부리와 움직임은 갯벌에 저마다 다른 영향을 주고,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결국, 모든 종이 다른 영향을 주고 있기에, 어떤 종도 없어져서는 건강한 갯벌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달리며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 호룡곡산으로 향했다. 무의도에는 2개의 산이 있는데, 남쪽에 있는 작은 산이 호룡곡산, 북쪽에 있는 산이 국사봉이다. 무의도에는 주로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즐기러 오기 때문에, 산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풀, 나무들은 좀 더 자연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간간히 보이는 바다의 모습이 산과 어울려, 호룡곡산의 매력을 더했다. 중간 중간 보이는 계곡은 깊진 않았으나, 트레일을 달리면서 생긴 열기를 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정신없이 다운힐을 하던 순간 눈에 붉은색 무언가가 들어왔다. 탐스럽게 빛나는 붉은 색상은 그동안 트레일을 달리며 마주쳤던 것들과는 달랐기에, 우릴 멈추게 만들었다. 가만히 보니, 붉은 게였다. 산에서 마주친 게라니. 이게 무슨 일일까 싶었다. 더 신기한 건 그 게가 도망을 가면서 나무를 타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능숙하고 빠르게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도둑게였다. 도둑게는 바닷가에 가까운 육상 습지, 냇가, 논과 밭에 산다고 한다. 도둑게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게는 바다에만 사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실 바다와 산 사이에는 갯벌이나 습지, 그리고 들판이나, 언덕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습지와 들판, 언덕을 개발하여, 생태계가 단절되었고, 더 이상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순환은 어려워졌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자연은 이미 자연스럽지 못한 상태라는 걸 도둑게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의 개발로 발생한 생태계의 단절은 가끔, 이렇게 회복되기도 한다. 영화 수라를 통해 바닷물이 막힌 수라 갯벌에는 염생식물과 갈대가 많이 자라서 습지화가 많이 이루어졌는데, 이렇게 변화된 습지 생태계에서 수달과 삵, 고라니, 멧돼지가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생물들은 산에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이런 생물 들은 바다와 강과 가까운 습지에서 생활하는 동물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터전을 개발을 통해 없애버렸고, 그들은 계속 살아가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한결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짙은 어둠이 깔렸다. 어디까지가 갯벌이고, 어디까지가 밤하늘 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다만, 저 멀리 공황의 불빛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바람은 선선했고, 발가락에 닿은 갯벌은 차가웠다. 해드랜턴의 불빛에 의존해 우리는 한 걸음씩 나아갔다. 얼마쯤 걸었을까, 발이 점 점 깊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뭔가 날카로운 것이 발바닥에 닿았고, 결국 상처를 입었다. 나와서 보니 발바닥이 꽤 심하게 다쳐 피가 흘렀다. 생각해 보니, 갯벌 속에 있는 굴과 조개껍데기가 아니었나 싶다.
갯벌은 지질학적으로 점토, 침전물, 생물등이 모여 만들어진 진흙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닷속은 산소가 거의 없는 환경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갯벌에서 죽은 생물은 쉽게 분해되지 않고, 갯벌 속으로 들어가 그 모습을 오래도록 유지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탄소를 저장하게 된다. 다시 말해, 갯벌은 수많은 생물과 분해되지 않은 수많은 무생물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전날 경험한 갯벌에 대한 이야길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생명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익숙하지 않았던 갯벌이, 1박 동안의 경험을 통해 친숙해지고, 소중한 존재로 더 다가오게 된 것이다. 이처럼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뭔가의 소중함을 일깨우기엔 분명 한계가 있다. 직접 와서 마주하고, 경험하게 되면, 편견은 없어지게 되고, 관계 맺기가 시작된다. 그 관계 맺기는 자연을 보존하는데 중요한 Motivation이 될 것이다. 무의도에서 활동이 끝나고 인천 녹색연합 신정은 팀장님을 만나러 영종도로 가기 전, 우리는 갯벌을 지키기 위한 피켓을 만들었다. 처음 만들어 보는 피켓이라서 그런지 작업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각자의 개성을 살려 만들었다. 언젠가 이 피켓을 들고, '수라 갯벌에 방문해야지'라는 상상을 했다.
황금 같은 일요일 오후 2시, 인천 녹색연합 신정은 팀장님께서 우리를 위해 시간을 할애해 주셨다. (다시 한번 이자릴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날이 우리 스스로가 경험하는 시간이었다면 둘째 날인 오늘은, 신정은 팀장님을 통해 갯벌에 대해 공부하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팀장님을 통해 배운 갯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장소였고,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지 않는 장소였다. 그래서 그런지, 갯벌을 개발의 관점에서만 보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하셨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은 영종도는 처음 이렇게 큰 섬이 아니라, 간척을 통해 만들어진 섬이라고 하셨다. (인터넷을 통해 직접 한번 찾아보길 권한다)
간척을 하면 생태계에는 과연 어떤 영향이 있을까? 간척이라는 단어는 중학교 시절에 지리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사실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단순하게 갯벌을 없애고, 그 위에 건물을 짓거나, 농지로 사용한다 정도였던 것 같다. 간척을 위한 많은 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선 간척을 위한 흙은 주변의 산을 없애서 만든다. 산을 없애면, 원래 거기 살고 있던 생명들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그렇게 산이 없어지면, 원래 산이 있던 자리를 개발할 수 있기에 누군가는 일석이조라고 한다. 주변에 산을 없애고도 흙이 부족하면 바다에 있는 흙을 퍼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바닷속 생물들에게도 생태적으로 엄청난 악영향을 주게 된다. 간척지를 메웠다고 해서 바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토양이 소금기를 많이 머금고 있기에 소금기가 빠져나가는데 수십 년이 걸리고, 지반이 약해 높은 건물을 짓는데도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게 된다. 또한 간척을 했다고 하더라도 가장 아래에는 갯벌을 이루고 있었던 진흙 층이 남아 있기에, 배수가 잘 되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수 시설 확충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무엇을 위해, 누굴 위해 이런 비효율적인 개발을 계속하는 것일까? 참 답답하다.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공부한 생명들 중, 나는 흰발농게와 저어새, 그리고 도요새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갯벌에 오기 전 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혼자 상상했었다. 팀장님과 이야길 나누면서 갯벌 주변을 걷기 시작했는데, 팀장님께서 바로 앞에 3마리의 흰발 농게가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렸지만, 흰발 농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확하게는 찾을 수 없었다.
계속 거기에만 머물 수 없기에 결국 흰발 농게를 찾는 것을 포기하기 하려는데, 팀장님께서 저 앞에 흰발 농게의 서식처가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도착한 서식처에서 드디어 흰발 농게를 마주했다. 마주한 흰발 농게는 영화와 책에서 본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흰발 농게가 꽤 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작았다.(너무 작은 크기로 인해, 영화나 책에선 망원 렌즈를 통해 그 모습을 담았다고 합니다) 한 발이 큰 수컷 흰발 농게는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사이즈였고, 암컷은 수컷의 반정도 크기였다.
한 마리를 보기도 어려웠는데, 한마릴 찾고 나니 주변에 움직이는 많은 수의 흰발 농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컷 흰발 농게는 자기가 만든 집 앞에서 큰 집게발을 좌, 우로 흔들며 춤을 춘다. 춤을 잘 추는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다.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춤을 추는 것이다. 암컷이 수컷의 춤에 끌려, 수컷이 만든 집으로 우선 들어가 집 구경을 한다. 화장실은 두 개인지, 옷방은 있는지, 거실은 큰지 이런 걸 보는 것일까? 여하튼 집구경이 끝나면, 선택의 순간이 온다. 그 집에서 살지 아니면 나갈지. 집이 맘에 들지 않아 암컷이 나오려고 하면, 수컷은 순순히 비켜주지 않는다. 암컷이 집에서 나오지 못하게 구멍을 막는다. 그러면, 암컷은 나가기 위해 애를 쓰는데, 그걸 지켜보던 다른 수컷이 암컷을 구하기 위해 구멍을 막아선 수컷과 큰 집게발을 가지고 싸우기 시작한다. 사랑과 전쟁이 따로 없다. 이렇게 익살스러운, 흰발 농게를 보고 나면, 이 작은 생명에 대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
흰발 농게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흰발 농게가 멸종 위기종으로 된 건 앞에서 이야기한 개발 부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흰발 농게는 갯벌에 살고 있지만, 갯벌에서도 습지와 만나는 부분에서만 주로 서식한다. 만조 때 물이 많이 들어오는 그런 곳보다는 약간 물이 빠져 있는 곳에 주로 서식한다. 사람들은 이런 곳을 주로 개발하기 때문에, 흰발 농게의 서식지가 없어진 것이다. 우리가 쓸모없다고 판단하는 자연은 사실 많은 생명들의 보금자리다.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도요새 몇 마리가 보였다. 너무 멀리 있어 망원경을 통해서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도요새였다. 가을이 오면 더 많은 도요새 무리가 온다고 한다. 다시 갯벌을 찾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짧은 1박 2일 동안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갯벌에 대해 경험하고, 갯벌에 사는 생물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다른 그 누구보다도, 갯벌이 더욱 소중한 존재임을 이번 활동을 통해 느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생활하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갯벌에서 마주한 수많은 생명들 중, 나는 흰발농게와 저어새, 그리고 도요새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영화를 통해 흰발 농게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멸종위기 야생동물이구나' 이 정도로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하지만 갯벌에 와서 그 생명들의 재치 있고, 우아한 움직임을 보는 순간 나는 그들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었고, 그 작은 생명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 알게 되었다. 직접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클릭 한 번으로 수백만 개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선, 직접 마주해 보길 권한다. 자연에서 시간을 쌓고, 관계를 맺는 일이야 말로, 자연의 소중함을,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자연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이야 말로, 자연을 지키는 첫 번째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날씨는 이상 고온인 날이 계속되었고, 거기다 국지성 호우가 내렸다. 그래서일까, 염분의 문제인지 더운 날씨 탓인지 모르겠지만, 갯벌에 살고 있는 동죽조개와 백합조개가 떼죽음을 당했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 광경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슬픈지 말이다. 기후 위기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가장 열악한 생명들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