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좋아질 날이 속히 오길 바라며
독자들에게 예의를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이의 소중한 시간 2-3분을 헛되이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좋을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기 위해선 좋은 글쓰기가 뭔지 알아야 했다. 글쓰기 대가의 책을 보며 좋은 글을 써내리라 마음먹었다.
먼저 편 책은 [강원국의 글쓰기]였다. 글이 편안하다. 할 수 있다고 다독인다. 첫꼭지 ‘누구나 시작은 막막하다’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일단 써보라고 살살 꼬신다. 자신감 있게 쓰라 하신다. 글을 읽는 사람은 글쓴이가 얼마나 잘 쓰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며 그저 글쓴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것이 독자에게 어떤 효용이 있는지에 집중한다고 이야기하신다. 그러니 일단 쓰라며 계속 꼬신다. 자신을 위해 쓰고, 써내면 줄 보상도 만들고(보상을 막걸리 한병으로 하셨다는 말씀에 살짝 설레기도 했다), 잘 쓰는 사람을 닮고 싶다는 욕구도 가지라 하신다. 쓰지 않고는 성장확인이 불가하니 쓰라 하신다.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쓰라고 쓰라고 꼬신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나에게도 글쓰기의 버킷리스트가 있으니 첫째는 유시민 작가보다 글을 잘 쓰진 못해도, 잘 가르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라며 유시민 님을 언급하신다. 이제 막 40여 쪽을 읽었을 때였다. 마침 두 권의 책을 같이 구매했기에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먼저 읽기로 마음이 바뀐다. 이 분이 더 잘 쓰신단 말이지! 그럼 돌아갈 필요 무엇있나, 바로 직진하는 거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아... 유시민 나쁜 사람이다. 자라나는 글 쓰는 이의 기를 팍팍 죽인다.
이 책은 글을 쓰라고 쓰신 책인가, 좋은 글 쓰는 게 쉽지 않으니 때려치우라고 쓰신 책인가.
첫 단원부터 논증을 논한다. 논증의 미학이란다. 미칠 노릇이다. 미학이란 게 단순히 아름다움이라고만 정의할 수 없는 단어인 것을 안다. 논증의 아름다움이라고 쓰지 않았다. 논증의 미학이란다. 더 심오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울렁증이 올라온다.
p.35
논증의 미학이 살아 있는 글을 쓰려면 사실과 주장을 구별하고 논증 없는 주장을 배척해야 하며 논리의 오류를 명확하게 지적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미움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논증의 미학을 애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엄격한 논증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논증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인간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힘과 권력도 없는데 왜 논증이 싫은 것일까! 그렇게 하다 보면 미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니! 내게 미움받을 걸 아셨네! 가까이하기에 너무나 먼 유시민 님이다. 나도 논리력을 갖춘 멋진 글쓰는 사람이고 싶으나 솔직히 자신은 없다. 주장할 것도 없거니와 논증할 근거도 갖춘 바가 없다.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식견이 좁아서 난 그런 거 못해!'가 되겠다. (원래 생각했던 단어는 무식이지만, 너무 없어 보여 조금 바꿔봤다)
이렇게 기가 죽으면 그대로 책을 덮어 버리면 그만인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좀 더 쉬운 다른 방법을 알려주실 거란 실낱 같은 희망을 붙잡는다. 많이 읽어봐야 한다며 요목조목 설명을 하시는데 또 귀가 팔랑거린다. 결국 잘 읽으면 잘 쓸 수 있구나 생각에 이르게 만든다. 글을 잘 쓰신 건지, 내가 귀가 얇은 사람인지, 어쨌건 설득을 잘하시는 거 보니 잘 쓰시는 분은 맞나 보다. 설득당한 나는 대가의 가르침인을 수용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음먹은 지 10초도 지나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추천하는 책을 보고 질색을 하게 되니, 내가 옳지 못한가 그가 옳지 못한가. 세 권을 소개하겠다면 운을 뗀다. 그래 세 권쯤이야 생각했다. 잠시 마음이 가벼웠다. 《토지》를 읽으시란다. 잠시만요... 저기요... 토지... 제가 들어본 그 대하소설 토지 말씀인가요? 그거 무지하게 긴 시리즈 아닙니까!!!!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런 건 어디다가 항의해야 하는가 생각해 봤다. 아니꼬우면 책을 던져버릴 일이지 방법이 없다. 나 같은 반응의 독자가 있을걸 예상하셨는지 '다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1부 네 권만 읽어도 된다. 2부 다섯 권까지 읽으면 더 좋다.'라고 쓰셨다.(도서관에서 확인해보니 21권까지 있었다. 그게 마지막일까. 22권은 누가 빌려가고 그 자리에 없었을 뿐일까.)
아이고~아이고~~! 그냥 글 쓰는 게 쉽지 않단다. 이것도 못하고 그따위로 글 쓰려면 때려치워!!!!라는 말이 더 기분이 나쁠까... 나는 못 할 일을 천연덕스럽게 하라는 이 무고함이 더 기분이 나쁜 걸까. 이런 생각이 엇갈려 떠올랐지만 알 길이 없어 생각을 멈췄다. 아... 그 기나긴 토지를 과연 앞의 이야기를 기억은 해내며 읽을 수 있을까? 줄거리를 놓치지 않으려 용쓰며 그 기나긴 책에서 아름다운 묘사를 음미할 수 있을까. 그나마 한 권으로 묶인 《자유론》이나 《코스모스》를 먼저 읽는 게 낫겠단 생각도 잠시해 보지만 논픽션책이 쉬울 리 없다. 이때라도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던져버렸어야 했을까.
좋은 글이 되도록 고쳤다는 글에서도 고치기 전의 글이 더 좋다고 느껴지니. 나는 아무래도 글렀구나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서 본 위트 있고 박식한 모습에 잠시나마 저런 분이 내 삼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삼촌 옛날 이야기 해주세요.” 하고 들러붙으면 줄줄줄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실 것만 같은 분이었는데. 이제 마음에서 그를 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 글쓰기에 겁을 이리도 주고, 이렇게 기를 죽이다니... 정말 슬펐다. 그렇게 해낼 재간이 없는 나를 알기에 더욱 슬펐다.
슬픔을 안고 《강원국의 글쓰기》를 다시 살펴보고 있다. 상처 입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책이 눈높이가 낮은 것 같다. 조금 더 둥기둥기 해주는 느낌이 든달까! [유시민의 글쓰기특강]을 읽고 충격을 받은 나는 강원국의 글쓰기로 용기를 얻어 볼 참이다. 강원국 님의 '유시민님 보다 잘 쓰진 못해도, 글쓰기를 잘 가르치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는 얼추 이뤄진 것 같다. 내 생각엔 그렇다. 글쓰기 초보들에게 유시민보다 강원국이라 감히 말하겠다.
적어도 나에겐 글을 쓰게 만드시는 건 강원국 님이 신것 같습니다. 강원국 님의 말씀 따라 이리저리 쓰다가 잘 쓰게 되는 날이 오면 저도 유시민 님을 노려보겠습니다. 그럼 그날까지 [유시민의 글쓰기특강]은 책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겠습니다. 다시 꺼내 볼 날이 속히 오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