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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루Lee Feb 07. 2024

도착이다! 스키장!!

스키장에 서서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해 보다

두 딸과 어린 조카의 끝없는 수다의 소란스러움과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의 혼돈 속에서 무사히 스키장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하니 설레긴 한다. 아이들 장비 대여부터 서둘렀다.

딱딱하고 불편한 스키부츠를 신는 것도 쉽지 않다. 양쪽에서 도와달라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힘들게 신고 힘들게 움직여 스키하우스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탄성이 절로 나온다. 슬로프 그물망 밖에서 특훈이 시작됐다. 뭐니 뭐니 해도 스키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잘 넘어지고 빠르게 일어서기! 넘어지지 않고 스키를 탈 수는 없다. 다른 사람과 2차 충돌을 피하기 위해 빠르게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경사를 찾아 스키가 아래에 오도록 자리를 잡게 하고 스키를 잘 포개 모아서… 거참 말로만 설명하려니 쉽지 않다. 사실 시범 보이기도 쉽진 않다. 몸이 무거워서 어릴 때도 잘 일어나지 못했던 자 되겠다.



리얼하게 넘어졌다 일어서기 맹연습 중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일어서기를 마스터하자, 스키장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두움을 밝히는 조명이 켜지고 스키장 특유의 운치를 뽐낸다.  저녁이 되자 어린이 스키강습학교를 위한 전용장소가 개방이 되어있었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좋다. 아이들에게 스키를 신고 옆으로 언덕을 올라가는 방법을 알려줬다. 스키를 멈추고 싶을 땐 A자를 생각하고 스키 뒷부분을 확 열어주라고 이야기해 줬다. 내리막길을 그냥 내려오면 위험함으로 구불구불 S자를 그리며 내려오라고 일러줬다. 작은아이가 자세도 안정적이고 터득도 빠르다. 언니를 놀리는 듯하더니 서로 격려하며 스키 타기에 슬슬 재미를 붙여 나간다. 






아이들의 연습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스키장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나시는 듯했다.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때 기억나나… 너그 데리고 무주에 처음 스키장 갔을 때…”

“기억나죠. 제가 중2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였는지, 중3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였는지… 막내가 5-6살쯤이었던 거 같은데, 엄마는 막내랑 눈썰매 타러 갔던… “

“그래 그때… 강습비가 왜 그리 비싸드노! 강습을 붙이려는 데 아빠까지 같이 하려니까 너무 비싸가 너희 둘만 강습시켜 놓고 안전한지 지켜보는 척하면서 강사가 하는 말 몇 마디 주워듣고, 또 아부지가 스키 대여해서 리프트 타고 안 올라갔나. 뭣도 모르고 용감하게 내려오는데 넘어지고 또 금방 넘어지고, 스피드 조절을 할 줄 모르니까 와당탕 넘어져가 스키가 저기 위로 날아가고 정신 못 차리고 있는데, 웬 중학생쯤 된 남자애 하나가 와서 ‘아저씨 처음 타세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하며 브레이크 잡는 법, S자 그리며 내리가는 법을 알려준 거라. 그래서 내가 그 길로 터득해서 신나게 타고 왔지.”

무모하리만큼 용감한 아버지의 도전정신에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아이고 아버지, 우리 아버지. 그러고 보니 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스키를 배웠는지 관심이 없었다. 자식은 안전하게 강습받게하고 당신은 무모하리만큼 위험하게 직접 부딪히는 아버지의 그 마음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당신은 안 다칠 거라 생각한 것일까, 당신은 그냥 해도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일까.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않기 위해 노력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그렇게 주어진 기회를 잡으며 끊임없이 노력하며 우리들을 키운 것이다. 


기억난다. 동생과 둘이서 강습을 받았다. 나는 영 소질이 없어서 초급코스 타는 걸로 마무리했고, 동생은 그날로 중급자 코스까지 다녀왔었다. 리프트에서 내릴 때부터 균형을 못 잡아 매번 넘어지니, 사실 나는 스키 타기가 즐겁지 않았다. 리프트에서 내기기가 너무나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가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데 이 고생을 시킨다며 그렇게 불평을 했었는데, 죄송한 마음이 생겼다. 차라리 아버지가 동생이랑 강습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나는 엄마랑 막내동생이랑 눈썰매 타도 괜찮았는데...... 

아니다. 그날 아버지 덕에 스키 배우게 되어서 즐기진 않지만 탈 줄은 안다는 소리를 할 수 있으니 (마지막으로 스키 타본 게 10년도 더 지났는데 탈 줄 아는 거 맞을 라나?) 감사할 일이다. 경험해 본 것과 하지 못한 것에는 차이가 있을 테니 말이다. 


아버지 덕이 내 아이들도 스키 탈 줄 안다는 소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당시 우리 형편으론 부담되었던 강습을 시키며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던 나의 아버지는 오늘 거금을 들여 리조트를 예약하고 아이들 장비대여에도 당신의 카드를 건네셨다. 장비대여는 내가 겠니 “씁~! 그냥 줄 때 해라!” 쿨하게 말씀하신다. 못 이기는 척 카드를 받아 들고 민망함도 잠시다. 아버지는 나의 기억 속에 스키=아버지로 각인시키기로 작심하셨나 보다.




 스키를 신고 언덕을 올라가는 게 힘들다는 아이들이 스키를 벗어서 들고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손녀들이 스키를 들고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안쓰러우셨던지 아버지는 아이들 대신 스키를 들어 나르기 시작하셨다. 내가 하겠다고 나서도 당신이 하시겠다 하신다.  아직도 딸 앞에선 강한 아버지이고 싶으신 듯해 못 이기는 척, 하시고 싶은 대로 두었다. 한두 번 하고 마실 줄 알았는데 끝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하신다. 겨우 말려 한 세트씩 나눠 들고 가자고 설득해서 그나마 작은 아이의 스키를 받아들었다. 거참, 자식 사랑이란 게 뭔지… 자식이 힘든거 보다 자신이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시는 부모의 그 마음이 무엇인지… 추위에 연신 콧물을 훔치며 생각이 많아지는 스키장에서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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