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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루Lee Feb 09. 2024

서두른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아버지는...

나이도 잊은 채 손녀들에게 스키 타는 법을 알려주시느라 추위에 서서 떨었기 때문일 것이다. 장거리 운전을 해 온 탓도 있겠지. 아버지는 몸살이 난 것 같다고 하셨다.


내일은 첫 리프트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고 번을 강조하셨는지 모르겠다. 일찍 리프트를 타기 위한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성화셔서 정신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피곤하다시니 염려가 된다. 아이들도 피곤할 테니 잘 쉬고 서두르지 말고 일어나 지는 대로 준비하자고 했다. 속으론 10시쯤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당치도 않겠다는 생각이 뒤따른다. 9시로 절충해서 말씀드렸다.
“ 애들이 눈이 잘 정비되어 있을 때 타야 안전할 텐데…… 남들이 이리저리 길 내놓으면 애들이 타기 힘틀 텐데……”


첫 번째 리프트를 타야 한다는 이유가 아이들 때문이었다. 유별난 아버지가 들인 돈이 있으니 이 스키장에서 뽕을 뽑으려 하시나 보다 생각했다. 시간이 곧 돈이기에 조금도 지체할 수 없기에 서두르시는 줄만 알았다. 돈 아깝지 않게 많이 많이 타야 하기에 서두르시는 줄만 알았다. 내가 오해했다. 내가 또 아버지를 그저 유별난 사람으로만 치부해 버릴 뻔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요 며칠 손웅정 님의 책을 읽었다. 손웅정 님이 중학교를 입학하고 부모를 떠나 타지에서 숙소생활을 할 때 에피소드가 이어지고 있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홀로 고생이 많았다는 이야기들이었다. 나와 연관도 없는 이 사람의 어린 시절 고생스러움에 나는 눈물이 났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나는 손웅정 님을 직접적으로 알지도 못한다. 좀 정 없게 말해서 그의 고생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그 대목에서 눈물이 난 것은 비슷한 시절을 살아낸 나의 아버지의 어린 시절 역시 그러했을리라 짐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버지는 12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오랜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었고 마침내 가장을 잃은 가정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낸 아버지는 많은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그 고생의 세월을 아버지께 자세히 들어보진 못했다. 묻지도 못했다. 그냥 전해 들은 이야기 몇 조각으로 맞춰 유추해 볼 뿐이다.

나의 아버지는 그런 분이다. 유별난 구석이 분명히 있다. 많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자수성가하는 동안 무엇이든 해내야만 했고, 지켜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남들보다 좀 더 부지런해야 했고, 남들보다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일을 진행시켜 내기 위해선 사람보다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이 굴러가던 시절이 있었다.





치열하게 살아가며 유별나 보이기만 했던 아버지는 세월이 편안해지고, 할아버지가 되시자 손주들에겐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신다. 사실은 안전운전이 걱정돼서 확인 전화하신 거고, 안전이 걱정돼서 리프트를 일찍 타기 길 성화 셨던 것이다.
나의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이다. 표현 방법이 좀 달라서 어리둥절할 때도 있지만, 조금만 떨어져 보면 아버지의 사랑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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