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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루Lee Feb 14. 2024

각자 자식 챙기기

할아버지는 스키를 사랑해

한참을 달그락 대는 소리가 난다. 아버지가 내려오신 걸까, 어머니가 내려오신 걸까. 나가볼까, 말까, 나가볼까, 말까, 좀 더 뭉그적 되기로 결심하고 자는척하고 있는데 곧 현관문이 열려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나가는 소리인 듯하다. 주로 현관문 근처가 내방이었던 나의 본가에서 나는 현관문 여닫는 소리에 잠에서 깨곤 했다. 아버지의 출근하시는 소리였다.

천천히 움직이자고 이야기했건만 살아온 습관은 어쩔 수 없나보다. 다행히 체력회복을 하신 듯하다.



아침을 챙겨 먹으며 잠을 쫓고 있자니, 전화가 울린다. 아버지다.
“하하하!!! 나는 리프트권이 공짜란다. 65세 이상은 경로우대로 공짜라네!!”
아주 기분이 좋아 보이 신다. 아아들은 어제의 강행군에 일어나질 못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빨리 깨우라 잔소리하실 줄 알았는데 쿨하게 알겠다 하신다. 애들 준비될 때까지 공짜리프트 타고 신나게 즐기고 있겠다시니 다행이다.




새벽같이 출발해서 아침 일찍 도착 할처럼 이야기하던 막내는 결국 점심때가 다 되어 나타났다. 그래도 든든하다. 내 저 막내동생 덕을 언제 보나 했는데, 오늘 덕 좀 볼 듯싶다. 아버지께 생초보 두 아이를 맡기려니 불안했는데 각각 한 명씩 책임지고 내려오면 되겠다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이게 또 부모 마음은 다르다. 아버지는 자꾸 막내에게 그냥 상급 슬로프 가서 스키를 즐기라고 말씀하신다. 아들 신나게 못 놀까 봐 마음이 쓰이신 거다. 각자 자기 자식 챙기기 바쁘다.
“안돼, 너 다른 슬로프 못 가. 삼촌이 조카 좀 봐줄 수도 있지!! 두 번 정도는 같이 애들이랑 슬로프 가줘라. "
흔쾌히 누나 말을 따르는 동생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가니, 아버지도 자식 챙기기를 잠시 접어두신다.  


할아버지 따라 슬로프로 전진하라!!




다치지 않고 잘 내려오는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저기 멀리서 내 딸 같은 아이가 무사히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다행히 아이들은 무서운 구간이 조금 있었지만 재미있다고 했다. 이제 됐단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슬로프에선 자기 몸은 자기가 건사해야 한다. 자기만의 모험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몇 번이나 오르내렸을까 벌써 슬로프 재정비 시간이다. 잘 쉬어야 더 잘 놀 수 있는 법! 아버지는 쉬는 틈을 이용해 사우나에 가셨다. 이른 저녁 식사 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못했다. 어제밤 컨디션이 안 좋아지셨던 게 생각이나 아버지가 숙소에서 쉬셨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아이들을 설득시키기 시작했다.
“슬로프에 올라가면 각자도생이야. 어차피 삼촌도 할아버지도 초고수 아니고 슬로프에서 일이 생기면 어쩔 수가 없어. 각자 알아서 일어나서 가던 길 마저 가야 하는 거야. 도저히 못 일어날 정도로 부상을 당했으면 그땐 안전요원의 썰매뒤에 실려 내려오는 거지 다른 수가 없어! 이제 어느 정도 탈 줄 아니까 니들끼리 가봐. 할아버지 쉬시게 하고 얼른 나가자. 할아버지 만나면 못 쉬고 같이 나간다고 하실 테니 할아버지 오시기 전에 얼른 가자!”
그렇게 닦달을 해댔는데 뭉그적 대는 아이들 덕분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버지와 딱 마주쳤다. 제발 쉬시라고 부랴부랴 내려갔지만 결국 아버지는 스키하우스에 내려오셨다. 이렇게 손녀들을 생각하시다니... 마음이 찡했다.

할아버지와 리프트 타기



아버지가 꼭 손녀사랑으로 스키 하우스에 내려오신 게 아님을 얼마 뒤에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스키를 정말 즐기셨던 거다. 아이들과 한참을 즐겁게 타시더니
“얘들아 힘들다고 먼저 숙소 가겠다 그러면,  먼저 올라간다고 문자 하나 남겨놓고 가거라. 나는 경로우대라서 야간 리프트도 탈 수 있다. 하하하”
감동은 조금 상쇄 됐지만 아버지께서 아직도 정정하시니 이런 액티비티 스포츠도 즐기시는 게 감사하단 생각이 차올랐다. 아버지가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둠이 깊도록 했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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