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르트벨로] 여덟 번째 이야기, 트빌리시 Tbilisi
여행은 모름지기 올드시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미 현대화, 도시화가 진행되어 각 나라의 특색이 희미해져 가는 요즈음, 그 나라만의 고유한 이미지를 얻기에는 올드시티만 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올드 트빌리시, 조지아어로 '즈벨리 트빌리시'는 그 범위가 꽤나 넓다. 자유광장을 중심으로 남쪽에 위치한 나리칼라 요새와 카르틀리스 데다(조지아 어머니상), 서쪽의 므타 츠민다(츠민다 산)와 푸니쿨라, 북쪽의 루스타벨리역, 므크트바리 강을 건너 마르자니시빌리역, 동쪽의 성 삼위일체 성당과 아블라바리역까지 포함한다.
자유광장 부근에는 다양한 가격대의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를 비롯하여 식당가와 여행사가 밀집되어 있고, 버스나 지하철 등 교통편도 좋아서 올드 트빌리시와 트빌리시 근교를 여행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이틀간 마르자니시빌리역 근처에 묵다가 자유광장으로 옮겨와 보니 역시나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광장 부근은 이미 관광지화 되어 일반 서민들의 삶의 결을 느끼기에는 힘들지만, 즈벨리 트빌리시를 즐기기에는 완벽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K호스텔 부근의 식당가 (Erekle II St.)에서는 정오쯤부터 재즈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다. 해가 지고 밤이 깊어 갈 때까지도, 식당가의 라이브 공연은 계속되어 트빌리시의 밤 분위기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식당가를 가로지르며 걷기만 해도 여행지에 온 것처럼 설레는 기분이 들고는 했다.
식당가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조금 걸어 내려오면 예루살렘의 시온산에서 이름을 따온 시오니 성당을 만날 수 있고, 시오니 성당을 지나 메테히 다리Metekhi Bridge가 나오기까지 다시 야외 식당가들이 늘어서 있다.
'Jazz cafe singer'라는 식당을 처음 발견했을 때, 재즈 음악을 좋아하는 S와 함께 꼭 같이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이곳에서 식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매일 밤 Jazz cafe singer를 지날 때면 자연스레 걸음이 느려지고 짧게라도 근처에서 머물며 음악을 듣다가 발걸음을 옮기고는 했다. 음악과 정취가 너무 좋았던 Jazz cafe singer... 트빌리시에 또 가게 된다면 이곳에 가는 걸 미루지 말아야지.
나리칼라 요새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케이블카를 타거나, 걷거나.
트빌리시에 머문 기간이 제법 길다 보니 심심할 때면 나리칼라 요새에 걸어 올라가고는 했다. 머묾에 가까운 장기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냐면서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정작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인 케이블카는 뒷전이었다.
걸어가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한 코스를 적어본다. 대중목욕탕을 지나 Leghvtakhevi 폭포를 본 후에 요새 방향으로 나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성 니콜라스 교회가 나온다. 교회를 지나 요새의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면서 천천히 트빌리시를 관망하다 케이블카를 타도 되고, 계단으로 걸어내려 갈 수도 있다.
자유광장에서 메테히 교회 쪽으로 강을 건너오면 그 옆으로 케이블카를 타는 곳이 보인다. 나는 트빌리시를 떠나기 전날에 가까스로 케이블카에 올랐다. 미루고 미루다 흐린 날에 케이블카를 타는 바람에 알록달록한 트빌리시 시내가 조금 뿌옇게 보였는데, 흐린 트빌리시의 느낌마저도 운치가 있어 나쁘지 않았다.
요새에 오르면 왼손에는 와인을, 오른손에는 검을 들고 사람들을 맞이하는 조지아 어머니상Kartlis Deda이 기다리고 있다. 자유광장에서 나리칼라 요새를 올려다보면 조지아 어머니상이 한눈에 보일만큼 그 크기는 거대했다. 가까이에 가서 머리를 치켜들고 어머니상의 얼굴을 보려 해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키가 컸다.
조지아 사람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건 아마도 포도주일 것이다. 나리칼라 요새에서 조지아 와인이나 조지아 전통 술인 '차차'를 마시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일 것만 같았다. 내게는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어 꿈만 꿔보고 직접 마셔보지는 못해 적잖이 아쉬웠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트빌리시의 야경을 보면서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 와인을 병째 들고 마시던 여자 두 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면으로 보이는 츠민다 사메바 성당과 시내에서 비추는 노란 불빛들이 포근한 봄밤을 만들었다. 마침 조지아의 밤공기는 하루가 다르게 뜨듯해져 갔다.
S와 함께 츠민다 사메바 성당에서 노을을 본 날이었다. 해가 지며 성당을 물들이는 붉은빛이 S와 내 뺨을 물들였다. 한쪽 구석에 앉아 아빠 다리를 하고 말없이 노을을 바라보는 S를 두고, 성당 뒤편을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았다. 순례객과 여행객들이 바쁘게 오가는 사이, 성당을 둘러 더디게 기어가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 사람에게 어떤 간절한 소원이 있는 걸까 궁금해하다가 좀 더 걸으니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석상이 보였다. 사람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과 손길이 그 사람의 일상에 가득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떤 날에는 치우와 함께 하루 종일 걸었다. 치우도 나도 걷는 걸 좋아한다. 여행지에서는 늘 등산화를 신고 다니는 치우. 그는 첫인상처럼 씩씩하고 꾸준한 사람이었다.
둘 다 별다른 계획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걷기로 하고 호스텔을 나섰는데 걷다 보니 푸니쿨라 승강장이 보였다. 푸니쿨라를 타는 것 또한 여행의 필수 코스라고 알려져 있는데 치우와 나는 별다른 의견 교환 없이도 푸니쿨라를 그냥 지나치고 싶었던가 보다.
승강장을 지나 므타츠민다 공원으로 가는 오르막 길을 계속 걷다가 므타츠민다 판테온이라는 곳이 보여 들어가 보았다. 또 하나의 성당인가 싶어 올라가니, 성당 옆에 독특한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슬쩍 보아도 무덤 위에 새겨진 글과 커다란 조각상들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예술가, 작가, 학자, 국가적 영웅이 묻혀있는 공동묘지였다. 오래전에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의 무덤 위에도 여전히 싱싱한 꽃다발들이 놓여 있었고, 한편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선생님과 함께 견학을 와있었다.
치우와 나는 골목골목에서 마주하는 일반 가정집과 고양이들을 좋아했다. 다소 허름하지만 사람 냄새나는 가정집과 빨랫줄에 널려 있는 옷가지들,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을 꿋꿋이 해내고 있는 호호백발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늘 배가 고픈 고양이들이 숨어있는 그런 풍경들을.
자유광장 근처에 있다 보면 조지아의 가난을 너무도 쉽게 잊는다. 가난해도 풍요롭다 느껴지는 건 아마도 거리마다 꽉 찬 그림과 조각상, 발레나 오페라 공연의 포스터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술을 사랑하고, 곳곳에 과거의 예술가들을 기리는 표지판이 가득한 것도 모자라 지하철 역의 이름마저 시인과 극작가, 성악가의 이름을 따서 지어 놓은 도시. 루스타벨리, 마르자니쉬빌리, 구라미쉬빌리, 사라지쉬빌리의 이름들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길거리의 헌책방과 벼룩시장은 트빌리시를 더욱더 알록달록하게 만들었다.
트빌리시의 핫플이라 불리는 파브리카. 구소련 시절 봉제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곳으로,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허브이자 호스텔로도 운영되고 있다. 감각적인 편집샵과 입주 예술가들의 프로필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이들의 작업을 응원했다. 과거의 트빌리시와 트빌리시에서 피어난 예술이 멈추지 않고 흐르길 바라면서...
트빌리시에 머물던 중에 일 년 간 배낭여행을 떠나온 한국인 가족을 만났었다.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게 해 줄 생각으로 중학생 남매를 데리고 나온 부모님들의 뜻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트빌리시의 유서 깊은 건물들이 낡고 불편하기만 하다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이분들과의 만남을 돌아보다가 문득 잊고 있던 서울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유리 고층 건물과 아파트가 빽빽해진 도시에서 사람들의 집은 104동 1102호와 같은 숫자로만 존재하기 시작했다. 내 다음 세대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더 이상 미장원 옆 골목의 빨간 벽돌집과 구멍가게 맞은 편의 파란 대문 집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괜히 서글퍼졌다. 동호수를 알지 못하면 길을 잃고야 마는 특색 없고 획일적인 편리와 풍족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와 세월의 흔적을 몽땅 앗아간 것은 아닐까.
트빌리시의 낡고 바랜 발코니가 가난과 결핍이 가져온 뜻하지 않은 결과물일지라도, 시절의 얼룩과 사람들의 자국이 오래도록 이곳에 쌓이고 쌓여 그 자체로 예술이 되고 있음을 보았다.
그중에 제일은 슈크메룰리라.
* 내가 제일 못 찍는 사진은 다름 아닌 음식 사진인 것 같다. 배고플 때 나는 내가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