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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과 쌓여가는 것들

by 지예


보이지 않는 수고, 반복되는 하루


시대가 아무리 발전해도, 집 안에서의 엄마 역할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수고와 반복의 연속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노동은 당연한 일로 여겨지며,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잠든 시간이 기다려질 때도 있지만, 또 다른 하루가 반복될 걸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섭니다. 복사된 듯한 하루가 반복됩니다. 어제 읽은 책을 또 읽고, 똑같은 놀이를 반복합니다. 그 익숙한 흐름 속에서 때때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단조로운 하루가 이어질수록, 가슴 안쪽이 서서히 눌리는 듯하고, 한숨이 잦아집니다. 뭘 느끼는지도 모를 정도로 마음이 둔해지는 기분입니다.


두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의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어 달라 하고,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역할놀이에 끊임없이 저를 초대합니다. 청소를 끝내고 돌아서면 금세 어질러지고, 설거지와 빨래는 쌓여만 갑니다. 그럴 때면 괜히 자책하게 됩니다. 제가 더 잘했어야 했나 싶다가도, 남편이 무심코 "청소 좀 해야겠다"고 말하는 순간, 마음속에서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입니다. 그 말은 마치 제 수고가 보이지 않는다는 선언처럼 들려왔고, 단지 역할에 묻혀 살아가는 제 존재가 작아지는 듯한 무력감이 밀려옵니다. 짜증이 치밀면서도, 그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속으로만 삼킵니다.


어느 날은 아이가 저보다 먼저 눈을 뜹니다. 10분, 20분만 더 이불 속에 숨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지만, 아이는 "엄마, 배고파"라는 말 한마디로 저를 현실로 불러냅니다. 그 말이 하루의 문을 천천히 열어젖힙니다. 청소를 하며 저는 아이에게 "집이 너무 지저분하네. 잠깐만 기다려 줄래?"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기다려주지 않던 꼬꼬마 시절에는 업어서라도 청소를 마쳤습니다. 몸은 고단하지만, 산산이 흩어진 마음이 다시 한데 모이는 듯한 기분에 숨이 천천히 들어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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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성적보다 정서 함량에 초점을 맞추는 육아인. 성향 다른 남매 사이에서 적절함을 찾는 양육인. 적당함과 게으름의 균형을 즐기는 지구인. 마음을 텍스트로 옮기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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