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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기 Apr 29. 2019

카즈베기 국립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다...

코카서스 13 - 미킨바르츠베리봉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다


닌니 게스트하우스의 내 작은 방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곱을 떼고 머리맡에 있는 자그마한 창문을 열어젖힌다. 정면으로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카즈베기의 산봉우리가 햇빛을 받아 신비로운 장면을 연출해낸다. 멀리 가지 않아도, 오래 걷지 않아도 방문 앞에서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루나 이틀 정도의 짧은 기간 지내야 하는 숙소에서의 불편함을 다 참아낼 수 있게 만든다.


속소의 작은 창에서 보이는 카즈베기 산봉우리


오늘 그벨레티 폭포를 거쳐 주타 마을로 짧은 트레킹을 가려한다. 스테판츠민다 마을에서 그벨리티 폭포까지는 6~7km 정도 되는 거리라 트레킹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주타 마을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렌트된 차량을 이용해서 움직이기로 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절벽에 묶여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벌을 받은 카즈베기산(5,063m) 주변의 가장 긴 그벨레티 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왕복 1시간 정도의 산길을 올라서야 한다.

차는 시내를 벗어나 비포장된 도로를 20여분을 달려 생소한 곳에 우리를 내려줬고 길을 따라서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 완만했던 길은 갈수로 경사졌고, 머리 위에 내리쬐는 햇빛의 강도도 강해져 머리카락이 타는 듯했다. 그럴수록 나는 숨을 헐떡이며 가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포기할까?', '올라갈까?'를 되새기며 1초에도 여러 번 마음속의 결심이 번복되었다.

가는 길에 작은 개울을 만났다. 아직 폭포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데 물을 만나니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으며 신발을 벗고 개울에 발을 담가본다. 어느새 나의 귀 옆에서 악마가 소곤대기 시작한다. 나는 그 마음에 맞춰서 '맞아... 맞아'를 외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이성이 나를 혼내고 있다.


"아~ 좋다...  그냥 이대로 있다가 갈까? 폭포 좀 안 보면 좀 어때?"


"무슨 소리!!!! 왔으면 보고 가야지~네가 또 언제 올라고???"


결국 이성이 이겼다. 아니... 다시 오기 힘들다는 현실이 이겼다. 고개를 숙이고 발끝만 보면서 힘겹게 올라가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기다랗게 떨어지는 폭포수가 보인다. '오호~ 이곳이로군'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는 것이 이상했다. 아무래도 좀 더 높은 곳에 가까이 폭포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는 것 같아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힘겹게 올라간 곳에는 60m 정도 시원하게 낙하하는 폭포수가 보이고 아래로 무지개가 피어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멋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힘들어서 그런지 사진을 찍을 여력도 없었다. 떨어지는 폭포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려가고 있는 걸 본 후에야 일어나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폭포까지 올라가는 길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고 한다. 단지, 나만 힘들었을 뿐이다.


웅장하게 떨어지는 그벨레티폭포





그레벨티폭포를 뒤로하고 시 40분을 달려 주타 마을에 도착했다. 그렇게 트레킹을 싫어하는데 이날은 어김없이 폭포에 이어 미니 트레킹까지 진행되니 할 말이 없다. 그냥 묵묵히 따라간다.

어쨌든, 주타 마을에서 카즈베기 국립공원의 미킨바르츠베리봉을 향해서 발자국을 남겨본다.

한 발짝... 두 발짝... 바닥에 코 박고 걸어가는데 길가에 싸질러놓은 말똥 때문에 미끄러질세라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하면서 걷는다. 제다캠프까지 가는 길은 말똥이 진을 치고 있다. 관광상품인듯한데 사람들이 말을 타고 제다캠프까지 가고 있었고, 약간 가파른 길을 말들은  '큐숑, 큐숑' 콧바람을 내면서 힘겹게 걸어가며 똥을 싸고 있었다. 다만 말등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연신 싱글벙글했는데, '동물을 보호해야지, 저건 머여?' 하는 생각보다는 '좋겠다', '나도 저거 타고 갈까?' 하면서 부러워하는 것을 생각하면 나도 참 걷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곳 날씨는 어째 안 좋은 날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오늘도 햇빛이 너무 좋아 직사광선이 내 머리를 내리쬐고 있어서 가져간 물은 벌써 바닥을 보고 말았다.

제대 캠프 입구에서 당나귀가 나를 반긴다.  말처럼 매끈하고 윤기 나는 털도 아니고 다리도 짧고 목도 짧고 배는 뽈록 나왔지만, 너무 귀엽기만 했다.  

 

제다캠프 가는길


제다캠프의 여러 개의 카페 중 마지막 카페 겸 산장인 '5th season' 까지는 아직도 걸어가야 하는데, 더 이상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 들판 한복판에 스카프를 깔고 잠시 앉아서 쉬었다. 쉬면서 함께 차 타고 온 사람들을 기다릴 요량이었는데 햇빛이 얼마나 강한지 몇 분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5th season 카페에서 쉬기로 하였다. 가다 보니 계속 걷길 잘한 거 같다. 정면의 깎아지른듯한 바위산을 바라보면서 걷고 있으면 길은 평지 수준이었고 펼쳐지는 초록색의 향연은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옆으로 설치된 텐트촌에서는 사람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들이었다.



제다캠프에서의 모습들



'5th season'에 도착했다. 작은 카페에서는 만년설이 아직 남아 있는 마킨바르츠베리봉을 바라볼 수 있었고 팬케익과 맥주 한잔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살랑살랑 바람이라도 불면 좋으련만... 한점 바람도 없는 것이 아쉽긴 하였지만 내 눈은 호강하였다.

함께 차량을 이용해서 같이 오신 분들은 계속 트레킹을 진행하였는데 가도 가도 정상이 보일 듯 보일 듯 보이지 않아 고도 2,300m 정도에서 설산을 감상하고 되돌아왔다고 한다. 그분들 기준으로 3시간의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주타 마을로 내려오니 마을에 흐르는 계곡물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빙하가 녹은 물일 것이다. 살짝 발을 담가보니 너무 차가워 5초를 넘기지 못하였다. 하지만, 트레킹 후에는 계곡물에 발 담그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없다.


5th seasom 카페 앞





저녁도 먹고 멋진 일몰의 풍경도 감상하기 위해  스테판츠민다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룸즈 호텔'의 레스토랑을 가보기로 했다. 룸즈 호텔의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는데 자리가 없어 안쪽으로 자리를 잡고 와인과 메뉴를 시켰다. 가격은 저렴하지 않았지만 여행 중 가끔은 이렇게 럭셔리하게도 먹어줘야지... 맨날 바자르 한구석에서 로컬 음식만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카즈베기 설산과 게르게티 수도원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때마침 구름 모양이 신기하게 교회 십자가로 빛이 내리쬤다. 해는 기울어가고 숙소를 가기 위해 테라스 쪽으로 나왔는데 테라스에 자리 하나가 비는 것을 매의 눈으로 잡아버렸다. 가던 길을 잠시 보류하고 자리 잡고 앉아 카즈베기산의 봉우리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로맨틱한 노란불빛 아래 싸늘한 저녁 기운을 모포한장으로 막고 저 멀리 게르케티 수도원에 하나둘씩 작은 불빛이 켜지는 것도, 설산의 봉우리의 색이 변하는 것도 보면서 그냥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룸즈호텔 테라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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