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이유가 너이고 싶진 않다.
나 자체로 행복할 것이다.
아이 낳은 걸 후회한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아이를 낳기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아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함께 타고 가던 차에서 사고가 난다면
기꺼이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죽음을 택할 것이다.
나를 가장 웃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바깥 날씨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 걸어도
휴대폰 너머로 아이 목소리가 들리면
두 톤, 세 톤은 목소리가 올라간다.
너무 소중하다.
기침 한 번에도 가슴이 철렁하고,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한다.
도서관에 가서도 육아코너를 떠나지 못하고,
내 삶의 최대 기쁨도 너,
최대 고민도 너다.
그렇기때문에 후회한다.
너무 큰 존재여서.
아이를 낳은 후부터 내 삶의 모든 것이 바뀌어서,
그래서 후회한다.
사라진 나.
아이 엄마로서 중심에 항상 아이를 두고 생각하는,
모성 짙은 나를,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아이를 낳고도 제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누군가에 맡긴 채 제 할 일을 하며 산다해도,
온전히 아가씨때처럼 마음이 가뿐하지 않다.
나 없이 잘 일어났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등원을 하다 넘어지지는 않았는지,
매사 전전긍긍이다.
내 삶에 절대 떼어내지 못할 걱정거리를
얹은 기분이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딩크족이거나 비혼을 택할 것이다.
이것은 아이를 낳아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큰 지를 알기 때문에,
억지로 할 것이라면,
혹은 잘 하지 못할 것이라면
나는 아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고
늘 당부한다.
아이도 결혼도, 이젠 선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