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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이작가 Sep 15. 2020

달의 몰락을 지켜보는 중이다

여자의 출산에 대하여

아이를 낳은 지 6년.

이제 내 아들은 거의 사람이 다 되었다.

아직도 손 갈 곳이 많긴 하지만,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스스로 잠을 자고, 밥은 가끔 떠먹여 줘야 하지만,

아침이면 출근하는 애미에게 아쉬운 감정을 꾹 눌러 삼키며

"잘 갔다 와!!! 사랑해!!!! 돈 많이 벌어와!!!!!!" 외쳐주는 애교쟁이 아들이다.


그래서 행복했다. 이제 더는 떼 부리는 아이와 씨름하며 미완성인 나를 확인하는 화끈거림도, 몇 분씩 우는 아이를 바라보며 육아서적을 뒤지는 일도 확실히 없어졌다.


6년 만에 직장에도 복귀하며, 못 입었던 옷도 꺼내 입고, 주렁주렁 장신구도 해보고... 잃었던 나를 돌보는 중에 나의 친오빠는 쌍둥이를 낳았다.


흠.. 쌍둥이라...... 그때부터 새언니와는 여자들만의 전우애가 생겨났다. 수술 후 아파하는 언니의 눈빛만 봐도 얼마나 아픈 지, 어떤 감정인지 헤아려졌고,


조리원에서 돌아온 언니의 눈에 맺힌 눈물의 의미도 십분 이해했다. '언니, 나도 그땐 그랬어요! 힘내요! 잘하고 있어요!!'


이렇게 응원해줬지만, 그래도 부족하다는 걸, 어차피 나는 제삼자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언니가 오빠와 결혼하기 전 나와 언니 사이에는 시누이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형식적인 웃음과 말투. 어쩐지 아직 진짜 가족이라 하기에 뭐한, 갑자기 내 인생에 들어온 사람.


한편으로는 나의 그 시기를 떠오르게 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나는 입지 못하는 옷, 신발, 화장을 하고는 오빠와의 연애에 푹 빠져 마냥 사랑받고 있는 여자.

 

그러나 한편으로는 ㅋㅋ모두 경험해 보았기에 '언니~ 그 행복 얼마 안 남았어요;;' 하는 생각을 속으로 하게 됐다. (이미 뱃속에 쌍둥이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는 점점 배가 불러올수록 여자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임부복을 입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몇 번 보지 못 했지만 걸음걸이도 살짝 바뀌어 보였다.


그렇게 엄마의 옷으로 갈아입는 여자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던가.


이 모습이 더 확실히 와 닿은 건 병원에서였다. 환자복을 입고 주렁주렁 주삿바늘을 꽂은 채, 잔뜩 부어있는 언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온 고단한 여인의 모습.

 

그리고 조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첫날. 집으로 돌아온 언니는 무척이나  불안해 보였다. 당장 이 두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오죽했으랴.


분유 타는 온도, 아기 눕힐 자리, 쌓여가는 젖병까지 언니의 모든 허둥댐에는 둥이들의 안전이 깔려있었다.


처음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사명감.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그만둘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영원히 사표 없이 잘 해내야 하는 직업 같은 일.




그 몰락을 겪고 둥이들의 돌을 앞둔 지금 새언니는 다시 차오르고 있다. 둥이들의 웃음에 행복을 느끼고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로서 완전히 꽉 차오르는 중이다.


몰락이라고만 느꼈던 언니의 시간에 새로운 달이 차올라서, 다시 둥그레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달의 몰락은 이제 한 여자의 삶에 다신 찾아오지 않을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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