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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이작가 Feb 01. 2023

모르는 번호로 뜨는 전화, 받아야 할까?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하는 세입자의 서글픔

전세난이 심각하다. 주변에는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갭투자로 집을 산 지인도 있었다. 요즘은 깡통집의 전세보증금을 내어줄 고민에 잠을 못 이룬다고 했다. 당시에는 버겁게 대출을 받았고 그보다 배로 뛴 집값을 보며 신기루 같은 그 집을 담보로 외제차를 뽑고 무리해서 생활한 집이었다.


2년 전 그들이 그런 삶을 살 때쯤 나는 전셋집을 구했다. 전세보증금을 위한 은행 대출 이자가 다달이 나가는 월세보다 싸다는 계산이었다. 다행히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나에게 흡족한 집을 구했고, 이자를 내 가며 살뜰히 살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난 후, 나는 이사를 결정했다. 미쳐버린 이자 때문이었다.


아니, 이자가 거의 2배는 뛸 거라고요??

은행 상담원에게 전화를 걸었던 건 사실 대출 연장을 상담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자가 몇십만 원 오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때부터 고민을 했고, 다행히 그 시기쯤 넣어두었던 행복주택이 당첨되어 몇 년은 그곳에서 마음고생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지금의 집.


집주인은 세입자를 구해놓고 나가라는 식이었다. 당장은 내어줄 돈이 없다는 적반하장. 요즘 대부분의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이는 태도라고 했다. 살면서 뉴스나 법정에는 갈 일이 없게 하자는 신조였는데  뉴스에서는 이런 사례를 심심찮게 보도했고, 다음 세입자가 오지 않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 코앞까지 닥쳤다.


그때부터 피 말리는 세입자 구하기가 시작됐다. 집 사진을 최대한 깔끔하고 감성적으로 찍어 부동산앱에 세입자이름으로 올렸다. 집주인이 내어놓은 부동산에는 당연히 내 집 비밀번호도 오픈했다. "언제든지.. 집을 보러 오셔도 됩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다.


아무리 부동산이라지만 모르는 사람이 내 집 출입번호를 안다는 것만으로 나는 내 모든 것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언제든 내 집에 누군가 올 수 있고, 내가 없는 사이 내 집을 마음대로 휘저었을 거라는 얘기였다. 물론 무례하지 않게 방문 전엔 연락을 주고, 방문하는 동안에도 마음대로 물건을 만지거나 하진 않겠지만.. 창문크기 확인을 위해 나와 내 아이만 만졌던 창가의 블라인드를 올려보고, 옵션으로 들어있는 내 집의 붙박이 장을 획 열어 내장처럼 채워둔 옷가지들을 확인했을 수 있다.


어제도 낯선 이가 집을 보러 왔다. 집주인이 나에게 말도 없이 내놓은 또 다른 부동산의 방문이었다. 며칠 전 주말,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요즘 낯선 번호여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다행히 이번 부동산 중개인은 친절했다. 주말에 연락해서 미안하다며, 그날 집을 보러 오겠다던 사람이 어제 시간이 된다며 방문을 요청했다.


그래 협조해야지.


퇴근 후 부랴부랴 집을 정리했다. "사모님~저희 1층에 대기하고 있어요~ 1, 2분 정도 후에 올라갈까요?? 호호호" 배려 아닌 배려를 받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후다닥 집을 정리했다. 그런 나와 달리 갑자기 아들은 대뜸 옷장에 숨어있겠다고 했다. 가끔 나를 놀라게 할 목적으로 옷장에 숨어있던 아들이었다.

 

"문 열렸습니다. 들어오세요~~"


사실 그동안은 직접 집을 보여주지 못했다. 낮시간에 방문하는 사람들과 시간 조율을 일일이 하지 못하니 비밀번호를 알려줄 수밖에.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내 집을, 내가 모르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친구를 초대해서 하는 집정리와는 마음가짐부터가 달랐다. 내 친구와 똑같이 내 집을 서성이지만, 그들도 역시 내 친구와는 시선이 달랐다.


"붙박이장은 옵션이에요"라고 얘기하면서 혹여나 아들이 옷장에서 불쑥 튀어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다. 현관부터 집을 보여주며 안방으로 갈수록 미처 막지 못한 아들이 생각났다. 퇴근 후 10여 분동 안 집을 정리하며 옷장으로 가겠다던 아들까지 방어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안녕하세요"


다행히 아들은 인사하며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는 짧은 홈투어를 마치고 그들은 내 집에서 흔적을 거두었다. 나는 얼른 옷부터 갈아입고 손님방문 이후로 미루어둔 고등어를 구웠다. 마음껏 냄새를 풍기며 고등어를 구울 권리.  아들이 옷장에 숨어도 즐거울 수 있는 유쾌함. 돌아보면 그것들을 침해당한 최근의 몇 달이었다.


"아직 끝이 아니야"


맛있게 저녁을 먹으려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 시간에 걸려온 전화라면 업무 관련 전화는 아닐 테니, 고민의 여지없이 전화를 받아야 했다. 상대는 집주인의 아들이라며 본인을 소개했다. "다름이 아니라 집을 먼저 빼주실 수 있나 해서요. 저도 다녀보니 집이 비어있어야 물건들도 없어서 깔끔해 보이고 집도 더 잘 나가고... 어쩌고저쩌고.."

 

와... 정말 삶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남의 집에서는 끝까지 안도할 수 없구나. 이런 게 내 집 없는 설움이구나를 또 한 번 느끼는 순간. (사실 그동안에도 크고 작은 설움들이 있었다.)


집주인의 아들은 3월경 돈이 마련된다며 돈의 일부를 줄 테니 집을 먼저 비우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목적을 숨기지 않는 무례한 전화였다. "노인네, 걱정거리라도 하나 덜어드리려고요."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우월한 이기심. 나는 냉정함으로 맞받아쳤다. 길어지려는 말을 자르고 그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저는 돈을 받아야 나갈 수 있고요, 아이 학교 문제로 전입신고를 해야 하므로 주소이전 없는 이사는 어렵습니다."


"아, 그러면 나가실 순 없겠네요"


당연한 거 아닌가???? 돈을 돌려줘야 하는 제 날짜에 돌려주지 않아서, 세입자인 나에게 대출 문제, 이사 일정, 아이전학, 지출계획 등등에 타격을 끼치고는 어쩌면 이렇게 뻔뻔할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요즘 대부분의 집주인이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집주인도 있겠지만, 돈을 쌓아두고 살지는 않는다는 말. 그래, 이해한다.


결론적으로 집주인이 내게 준 설움은 아주 뜨거운 불쏘시개 가 됐다. 내 집마련의 열망을 활활 태워주었고, 더 열심히 청약 공고를 뒤졌다.


주인집 아들의 걱정거리가 되어버린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걱정거리가 된 나의 거취. 그래도 돈이 준비될 것 같다는 주인집의 사정으로 상상했던 최악의 상태는 면했지만, 불투명한 이사를 앞둔 지금으로서는 마음이 산뜻하지 못하다. 구운 뒤 풍기는 고등어의 비린내처럼 내 삶에 잔뜩 안 좋은 냄새가 밴 느낌.


이제 다시는 낯선 번호가 뜨면 받지 않을 선택권과 내 집 비밀번호를 지키는 안위, 언제든 고등어를 구워 먹을 저녁시간을 침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사를 앞둔 지금, 그토록 안락했던 나의 집은 손바닥 뒤집듯 빨리 벗어나고 싶은 '남의 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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