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강재훈 트리오 “Gershwin Songbook”
사계절 중 여름을 제일 좋아한다. 특히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 재끼고 녹음이 절정을 달하는 7~8월의 한여름을 사랑한다. 그런데 모순되게도 장마는 좋아하지 않았다. 한여름의 소리와 뜨거운 태양 옆 그늘, 푸릇한 여름의 냄새를 사랑하지만, 비오는 날씨는 계절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한여름의 장마까지 온전하게 좋아하게 된 건 재즈를 듣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비와 재즈, 여름을 곁들이길 좋아한다. 내가 여름의 비까지 사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재즈를 들으며 기분을 전환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왜 한여름밤의 재즈를 사랑할까.
그동안 수많은 영화에서도 비와 재즈는 실패하지 않는 성공 공식이었다. 비오는 날의 연인은 재즈와 만났을 때 아름다운 장면이 되고 ‘한여름 밤의 재즈’ 낭만은 계속해서 접해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땅 위를 적시는 빗소리와 재즈가 서로 보완하는 관계이기 때문이 아닐까. 스윙 재즈에서 들려오는 드럼소리와 빗소리는 닮은 구석이 많다.
재즈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거슈윈의 노래도 알게 된다. 그중에서 Songbook에 수록된 The Man I Love(1924)와 오페라 Porgy & Bess(1935)의 수록곡이었던 Summertime과 I Loves You, Porgy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 하나다. 특히 The Man I Love는 로맨틱함과 낭만적인 무드가 가장 짙게 묻어나는 곡으로, 버전만 해도 여러 개다. 이 곡들을 현장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니!
강재훈 트리오가 연주하는 거슈윈의 재즈는 어떨까. 강재훈 트리오는 재즈 피아니스트 강재훈을 필두로 베이시스트 박진교와 드러머 최무현으로 결성된 트리오다. 그리고 이들은 스윙 기반의 전통 재즈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다고.
그리고 지난 7월 7일,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 홀에서 강재훈 트리오가 연주하는 거슈윈 Songbook 재즈 공연이 열렸다. 위아래로 검정 정장과 검정 구두, 넥타이를 반듯이 맞추어 맨 세 사람은 언뜻 회사원과 같은 딱딱한 비주얼이었다. ‘내가 아는 재즈 뮤지션들의 모습과는 좀 다른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등장 5분 만에 내 예상과는 반대되는 흥겨운 공연을 펼쳐나갔다.
공연의 초반부는 거슈윈 Songbook 앨범의 수록곡으로 진행됐다. I Was Doing Alright (1937) 부터 뮤지컬 Strike Up The Band의 Strike Up The Band (1927), 그중에서도 Who Cares는 앞선 곡들보다 텐션이 좋았던 음악이다. 경쾌한 리듬과 감정이 섞인 강약 조절은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어 더 매력적이었다. 꽃가루가 터지는 것 같은 발랄함까지 인상 깊었다.
이어서 후반부는 Porgy & Bess : Medley (1935)로 이루어졌다. 오페라 Porgy & Bess의 수록곡으로 Summertime, l Loves You, Porgy 등 귀에 익는 유명한 곡들도 들렸다. 재즈 보컬이 만드는 풍성한 소울은 없지만, 공연장은 흥으로 가득 찼다. 위에서 내려다본 관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들썩이며 연주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공연 연주 리스트와 관련해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주던 강재훈 피아니스트의 애티튜드가 기억에 남는다. 재즈 입문자에게 필요한 설명을 간략히 곁들이고 음악의 분위기에 흠뻑 취한 채로 그 느낌을 곡에 표현하던 모습 덕에 더욱 즐거운 감상을 할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들었던 거슈윈의 Liza(1929)는 나와 지인이 동시에 손꼽았던 곡이다. 거슈윈 음악 리스트는 여유로움과 흥겨움을 오가는 곡들로 채워졌다.
공연장에서 느낀 아름다운 하모니를 집까지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역시 재즈 공연은 음원이 라이브의 감동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 드럼의 브러쉬 소리까지 들려야 온전히 그 음악을 음미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섬세하고 경쾌하게, 또 아름답게 울려 퍼지던 거슈윈의 Songbook. 충만한 음악적 만족을 느끼게 해준 강재훈 트리오에게 감사의 박수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