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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Jun 10. 2024

말하는 발레공연 <더 발레리나>

무용공연|제 14회 대한민국발레축제 초청작 <더 발레리나> 리뷰

아름다운 선율의 클래식 음악, 고고한 자태와 우아한 몸짓. 공연장은 단정한 행색의 관객들이 앉아 숨을 죽이며 작품을 만나길 고대한다. 이는 발레 공연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다. 그런데 이런 발레 공연에 대사가 들린다면 어떨까? 무용계 중에서도 전통성을 고수하기로 유명한 발레 분야에서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대한민국 발레 축제의 공식 초청작 <더 발레리나 The ballerina>다. 


대한민국발레축제는 대한민국발레축제추진단이 주관·주최하며 이번 해 14회를 맞았다. 축제는 5월, 서울을 시작으로 화성, 부산, 춘천, 제주 등의 지역으로 옮겨가며 7월 말까지 이어진다. 이번 해는 ‘발레, 경계를 넘어 미래를 열다’라는 슬로건으로 기존의 발레에 새로운 시각을 더하고 관객에게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는 작품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지난 6월 1일, 창단 40주년을 맞은 유니버셜 발레단의 <더 발레리나>를 만났다. 


<더 발레리나>는 극의 형식을 빌려온 발레 공연으로 1장부터 4장까지 이어지는 서사가 강한 작품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발레 무용수들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그 속에서 무용수들이 겪을 수 있는 고난의 시간과 예기치 못한 부상, 기회의 순간을 다루며 압축적으로 무용수의 삶을 보여준다. 그렇다 보니 작품은 발레단의 일상을 무대 위로 옮겨놓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더불어 친절함도 <더 발레리나>의 특징 중 하나다. 다양한 형식의 대사를 사용하여 정보와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전달한다. 대화와 독백, 내레이션, 발표 등 다양한 발화가 등장한다. 그중에서 1장은 무용 선생님의 대사를 통해 지루할 수 있는 기본기 동작을 유쾌하게 살려냈다. 발레를 잘 모르는 관객에게도, 애호가에게도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게끔 하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최근 몇 개월간 발레 기본기를 배우고 있던지라 특히 공감이 되었다. 발레 공연에서 발레바를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뛰어난 무용수들이 하는 기본기를 보고 있으니 감탄이 나왔다. 기본기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The Ballerina(하남)-ⓒ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Kim


2장부터는 본격적으로 공연 연습이 시작된다. 합을 맞추고, 동작을 수정하고, 느낌을 만들어 간다. 공연 연습 파트에서는 무용수들의 기량이 펼쳐지는 스킬이나 동작을 보여주는데 일종의 팬서비스처럼 관객들이 즐길 요소가 많이 있었다. 이런 부분이 발레 애호가를 위한 특별 콘서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무대 위 무용수를 잘 알고 있는 팬들은 이런 대사나 장면들이 무척 재밌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위기는 다른 이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3장에서는 부상을 당한 발레리나를 대신하여 주연을 꿈꾸는 발레리나가 기회를 얻게 된다. 아쉬운 점은 극적 요소가 3장부터 힘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대사나 스토리가 있어도 감정적인 부분이나 위기 파트에 대한 개연성은 떨어진다. 앞서 끌어올린 집중력이나 재미가 감소하는 느낌이어서 개인적으로는 3-4장의 공연 파트만큼은 연극적 요소를 덜어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대망의 공연 날, 4장 전에는 공연 시작 후 처음으로 막이 내려가면서 무대 바깥의 상황이 나온다. 공연을 보러온 관객과 공연의 해설자가 등장한다. 발레 공연을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그의 남자친구, 딸의 공연을 보러가는 부부, 엄마와 아이는 대사를 통해 발레 공연에 대한 기대감, 발레에 대한 정보를 전한다. 여기서 아주 전형적이고 교과서적인 대사의 퍼레이드가 이어지는데 이게 의외로 웃음 포인트가 된다. 연극이 아닌 무용 공연이기에 어색한 대사도 신선한 시도로 보였다. 유니버셜 발레단이 발레의 대중화나 전달에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이후에는 문훈숙 단장이 시범을 보여가며 직접 고전 발레와 네오클래식 발레를 설명하기도 했는데, 확실히 발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The Ballerina(하남)-ⓒ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Kim


마지막 장은 액자식 구성을 이어 백스테이지와 함께 하는 공연 장면을 구성하고, 이후에는 백스테이지를 없애고 일반 발레 공연처럼 연출했다. 발레 퍼포먼스는 ‘파가니니 랩소디’와 ‘Macdowell Piano Concerto 2인무’, 미리내길’, ‘비연’ 작품이 연달아 공연됐다.


연극적 요소의 대입은 확실히 장단이 있었다. 현실감 넘치는 대사는 대중의 집중도를 올리고, 발레에 대한 이미지를 친근하게 바꿔 놓았다. 한편 액자식 구성은 작품의 신비감을 저해하기도 했다. 발레작품에서만 나올 수 있는 분위기와 신비로움, 존재감이 좀 사라진듯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백스테이지 구성은 오히려 작품을 작품으로서 볼 수 있게 하기보다는 극중의 한 장면으로 느껴지게 했다. 그럼에도 다양한 장르와 음악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는 건 이런 구성이기에 가능했다. 각기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연달아 볼 수 있었다.


<더 발레리나>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막을 내렸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친근한 공연으로 발레에 대한 고정관념을 쉽게 풀어냈다. 대중이 발레에 입문할 수 있는 좋은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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