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국립현대무용단 <닥쳐 자궁>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됐던 국립현대무용단의 <닥쳐 자궁>. 공연 전부터 입소문이 자자했던 공연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21년에 초연한 적이 있는 작품이었고, 무용 공연 치고는 다소 거칠어 보이는 제목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한 몫했다.
거기다 나는 이번년도 초에 <닥쳐 자궁> 퍼포머 오디션을 본 이력이 있었다. 살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 해봤다. (물론 좋은 쪽으로) 1시간 넘게 체력장에 가까운 다양한 운동을 이어가고 마지막에는 허리춤에 방울을 달고 흔드는 '불알댄스'까지 했다. 연령도 직업도 다양한 일반인 퍼포머들과 서로 힘을 불어 넣어주며 긴 오디션 시간을 버틴 것이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사실 이것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지만, 이건 다음 게시물에서 풀어보도록 하겠다.)
어쨌든 그래서 11월이 기다려졌다. <닥쳐 자궁>, 도대체 어떤 공연이란 말인가. 남들도 나랑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표가 솔드아웃이었다. 그간 오디션도 열고 안무 워크숍도 열었던 지라 그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듯하다. 주변 사람들은 한 발 늦어서 예매도 못했다.
다행히 나는 잘 보고왔다. 예상대로 엄청난 공연이었다. 그래.... 이래서 공연을 보는거지. 끝나고 나서도 좋아서 웃음이 실실 나왔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모든 장면이 머리 속에 강렬하다. 안무, 스토리, 연출, 음악, 퍼포먼스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그 정도로 정말 대단했음) 그럼 지금부터 공연에 대한 감상을 풀어본다.
자궁은 우주다. 한 사람의 우주가 될 수도, 전 인류의 우주가 될 수도 있다. 그곳의 입을 막는다. 아니 소리친다. 그 널따란 미지의 세계에 대고 소리를 친다. 그만하자고, 여기서 멈추자고.
검은 색 무대 뒤편은 마치 동굴처럼 커다랗게 뚫려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공연이 참 우주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첫 시작, 세 명의 무용수가 입은 은색의 반짝이는 의상은 우주복처럼 생겼다. 어찌 보면 기저귀 같기도 하고, 로봇 같기도 한 특이한 모양새의 크롭 기장 투피스. 난 이들이 저 멀리 떨어진 별에서 온 사이보그처럼 느껴졌다.
수상한 모습의 세 사람은 갑자기 황당한 놀이를 시작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거시기 꽃이 피었습니다’로 개사해 부르기 시작한거다. 남자 무용수는 객석을 향해 눈을 가리며 큰 소리로 ‘거시기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친다. 두 명의 여자 무용수는 남자 무용수의 눈을 피해 서슴없이 걸어나가다 멈추고, 걸어가다 멈춤을 반복한다. 놀이는 어느 새 사라지고, 이들의 몸이 마네킹으로 변하여 쓰러져 버린다. 밧데리가 다 된 로봇처럼.
방전된 로봇은 초점이 사라지고 눈을 가운데로 동그랗게 몰더니 넘어졌다. 마치 남자를 놀리듯이. 그녀들이 쓰러지려고 하면 남자가 뛰어가 그들을 붙잡아 세웠다. 무엇이 그들을 얼게 만들었을까? 재밌게 놀던 여자들은 메두사의 머리를 본 것처럼 쓰러지고, 남자는 오딧세이의 한 전사처럼 다가가 석고상이 된 몸을 세우길 반복한다.
남겨진 두 사람은 남자가 떠나간 뒤 배꼽이 빠지라 웃는다. 마치 이들의 장난이 그에게 완전히 먹힌 것처럼. 통쾌하고도 기쁜 폭소를 오랫동안 짓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사람의 듀엣 안무. 이들은 마주본 대칭으로 서서 기가막힌 동작들을 이어나갔다. 딱딱 떨어지는 동작과 직선적인 구도, 부드럽기보다는 강하고 단호해보이는 동작들이 안무가 시모지마 레이사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들은 절제된 움직임을 이어나가다도 예상치 못한 순간, 통제되지 않은 움직임으로 극적인 긴장을 풀어준다. 정확히 그 지점이 놀라워서 기가 막혔다. 보는 내내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올라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 무용수가 자신의 바지를 들추고, 무언가를 꺼낸다. 마치 자신의 음부 깊숙이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무엇을 낳았는가? 혹은 무언가를 발견했는가? 낳은 것인지 발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아주 작은 콩알 만한 무언가다. 그러더니 입에 쏙하고 넣는다. 엥?
그건 껌이었다.
와하하. 시모지마 레이사의 지난 작품 <기저귀를 찬 원숭이 Monkey in a diaper>가 연상되기도 했다. (그녀는 그 작품에서도 기저귀를 들추고 주전자에 담긴 물을 부은 이력이 있다.) 대체 거기에 뭐가 있는 것인지? 두 여자 무용수는 자신의 기저귀에서 뽑아낸 껌을 씹으며 객석을 노려(?)본다. 노려본다는 게 정확한 의미일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그러니까 우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무용수들의 기세에 눌려 눈을 피했다.
이 듀오는 춤을 이어가다가 또다른 돌발 행동을 하는데…. (닥쳐자궁에는 이런 스타일의 장면이 아주 많다.) 서로 입에 있는 껌을 바꾸는 것이다. ‘어우! 저 사람들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동시에 ‘도대체 왜 저러는거지?’하는 생각도 함께 올라왔다.
여전히 왜 저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이들이 왜 게임을 했다가 껌을 뱉었다가 씹었다가 하는 것인지를. 다양한 듀엣안무 뒤 일상적인 움직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무용수가 앳된 얼굴의 다른 무용수의 얼굴을 쓰다듬는데, 그 순간 ‘아!’하고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건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것 같은 손짓이였다. 쓰다듬는 여성은 엄마였고, 조금 더 앳된 얼굴을 한 여성은 딸인 것 같았다. 아, 그래서…. 모든 것이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이보그 가족인가보다!
쫙쫙 씹히던 껌은 딸처럼 보이는 무용수에 의해 거세게 뱉어지며 땅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하늘에서 커다란 흰 천 뭉치가 퍽. 하고 떨어진다. 껌이 하나의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자궁이라는 공간이다.
#껌의 의미
공연 직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안무가가 '껌의 의미'를 묻는 한 관객의 질문에 직접 밝히기를, 껌은 사실 엄마와 아기가 함께 공유하던 세계, 그러니까 자궁에서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왜 어릴 때 엄마들은 자신의 아기가 먹다가 뱉은 것도 직접 먹지 않나. 레이사는 자궁의 형성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엄마의 엄마가 있고 아기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에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세계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작업 중 직접 어머니께 여쭈어보았더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고. 엄마들은 아기의 똥을 직접 손으로 빼내주기도 하고, 음식을 직접 씹어서 먹여주기도 한다고. 언뜻 들으면 더러워보이는 것 같은 부분도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서는 이상하게 성립되지 않는다. 그들은 같은 몸에 섞여 같은 걸 공유한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 감상에는 정답이 없으니 참고만 하시길)
흰 천이 검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 사이보그 가족은 어디론가 가고 없고 새로운 집단이 등장한다. 커다란 북을 배에 붙이고 전통의상 같은 것을 입은 여자들이다. 이들은 과하게 해피한(?) 얼굴로 등장한다. 부른 배를 매만지면서, 마냥 해맑게 웃으면서. 아직도 떠오르는 건 가운데 있던 그 여성분이다. 진짜 너무 잘 웃으셔서 나까지 실소가 터져나왔던.. 나중에는 흰 천의 동그란 구멍으로 얼굴만 빼꼼해서 웃는다. 아 진짜... 엄청난 씬스틸러였다. 관객석의 웃음의 8할은 그분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이들은 한참동안 웃으며 배를 매만지며 돌아다닌다. 그 와중에 나이가 꽤 있어보이는 무용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의 북만 작은 크기였다. 나머지는 정말 컸는데 말이다. 흰 천은 무대의 상하를 반으로 가르고, 또다른 공간을 창조했다. 난 그곳이 질 속 같다고 느껴졌다. (동그란 구멍도 뚫려 있기에) 그리고 어느 순간, 흰 천은 무대 위의 모든 사람을 감싸버린다. 역동성이 넘치던 생명의 공간은 순식간에 진공의 상태처럼 고요해진다. (흰 천이 탄력있게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눈이 튀어나올 것 같던 엄청난 전환이다.) 그 위에 등장한 한 명의 여성. 제일 나이가 많았던 퍼포머다. 그 표정은 나에게 무어라 무어라 말을 했다.
그리고 흰 색 천만 공간에 둥둥 떠있다. 천 아래에 심장이 있었다. 커다란 심장은 소리에 맞추어 쿵쿵거렸다. 심장이라는 섬. 이후에는 종 모양의 불알을 단 여전사들의 강렬한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퍼포먼스 전에는 시모지마 레이사와 종을 던졌다가 갖고 노는 행동으로 빌드업을 했다. 한 무용수가 종을 가지고 돌리면 레이사의 허리도 돌아가는 식이다. 그렇게 그것이 불알임을 인식하게 하는 과정이 유쾌하고, 똑똑했다. 그러고나니 모두 그것이 불알임을 알게 되었다.
여성 퍼포머들의 불알 댄스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노래도 기가막혔다. 아니 닥쳐 자궁은 노래를 정말 잘썼다. 전환이 엄청 극적인데 짜치지 않고, 조명이나 타이밍 같은 게 완벽한 하나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연출을 하느냐고요? (이런 무용공연은 정말 많이 없다. 음악 짜치는 공연, 정말 많다 ^^ 그렇기에 대단한 것이다.) 하여간, 닥쳐 자궁의 연출과 조명, 음향, 소품 이용 그 모든 것이 ..... 창의적이고 훌륭해서 대단한 스태프 연출진들과 함께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퍼포머들은 누가 일반인이래? 싶을 정도로 춤을 너무 잘춰서 아마 말 안했으면 몰랐지 싶다. 프로그램 북을 보면 이 분들도 참 예사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음. 재미난 스토리를 많이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다. 말을 안하는 데 표정으로 많은 것이 읽힌다. 알고 보니 이 또한 레이사가 많이 공들인 부분이라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퍼포머 현림이 밝히기를 안무가가 출연진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세심한 디렉션을 주었다고 한다.
또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는 흰 색 천을 두고 이루어지는 한 가정의 모습이었는데, 너무 현실적이라서 소름이 돋았다. 예를 들면 여자 무용수가 왼편에, 남자 무용수가 오른편의 기둥 같은 것에 올라간다. 높은 곳에 다다른 두 사람은 가운데 서 있는 아이를 향해 막 소리를 친다. 이리로 오라고. 마치 부부싸움에 아이 등이 터지는 상황이 연출된다. 부모들은 왜 그렇게 아이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할까. 아이는 가운데서 난처한 표정으로 갈팡 질팡하고, 엄마와 아빠는 더욱 공격적이고 거센 목소리로 아이에게 소리를 친다. 무서워서 어디에도 갈 수가 없다.
나의 유넌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공감이 많이 되는 장면이었다. 더불어 두 사람은 가운데 흰 천을 두고 아이에게 욕설을 전하기도 한다. 실제로 공연 중 두 무용수는 각종 형언할 수 없는 쌍욕을 거침없이 질렀다. (이 분들 왜이리 연기를 잘하시는 건지!) 그러면 아이가 쪼로록 가서 엄마한테 전하고, 쪼로록 가서 아빠한테 전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또 멀쩡해져서 하하호호 웃고, 아이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한다. 당최..... 그러나 너무 현실적이라 반박할 수가 없다. 이러한 장면은 사실 레이사의 진짜 가정사와 무용수들의 경험이 녹아들어간 연출이었다고. 레이사는 어린 시절 아버지랑 5살 때부터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그 이후로는 볼 수 없었지만, 아버지의 욕설과 말투는 기억이 난다고 한다. (이게 진짜 소름이다. 아이들은 어려도 정말 다 기억한다!) 그 당시에 아버지는 폭군처럼 폭력적인 말을 일삼았고, 그것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닿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부모님이 화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가정은 화목하지 않은데, 겉으로는 화목하게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태아의 시점에서 본 가족
여기서 안무가의 이야기를 좀 더 덧붙여 보겠다. 그래서 레이사는 자신의 어린시절의 상처로 '가족'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모양이다. 가족관계가 늘상 행복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갈등이나 어려움을 많이 불러일으키지 않나. 다른 분들은 몰라도 난 정말 공감된다. 가족이라고 다 가까운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멀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021년, 레이사는 한국나이에 대해서 알게된다. 뱃속에 있던 태아시절도 삶으로 치는 계산법에 감명해 깨달음을 얻은거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자궁이 없이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여자인데도 불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은 이력이 있다. 그것이 충격인 동시에 긍정적인 경험이었다고도 말하는데, 21년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재정의한다.
'나는 자궁이 없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의로 자궁을 어머니 뱃속에 두고온 것이다.'라고. 그녀는 가족이 만드는 힘겨운 갈등, 고통스러운 삶의 형태를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머니가 임신한 시절에도 태교를 한답시고 좋은 이야기, 노래를 듣지 않나. 그것처럼 아버지가 하는 말이나 언행, 부정적인 순간들을 느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고자 자궁을 두고 왔다는 철학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공연의 하이라이트에서 진짜 놀랄 만한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깃발이다. 갑자기 어디서 그런게 나타난건지 모르겠는데, 흰색 천의 작은 구멍 사이로 장대높이 뛰기에나 등장할 것 같은 거대한 높이의 깃발이 등장한다. 허공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빨간 천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심지어 깃발은 관객석의 머리 위에서 춤추었다.
난 무용수가 깃발을 흔드는 내내,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건 마치 다른 세상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 같았다. 극장의 높이만큼 길죽한 장대에 걸쳐진 빨간 천과 천장 아래의 그 텅빈 공간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붉은 빛을 바라보며, 아 저기도 공간이 있었지. 아 저기는 자유의 공간이었지. 하고 깨닫게 되었다. 에너지가 너무나 커서 공연장이 작게 느껴졌다.
정체성의 발견이란 그런 것일까? 정체성의 긍정이란 저런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난 이런 사람이야. 라고 외치며 땀을 뻘뻘 흘리며 새로운 공간에 나의 깃발을 가득 들어보이는 것, 가득 채워보이는 것. 그건 정말 짜릿한 일이다. 젖 먹던 힘으로 깃발을 흔들어 대다가 손을 놓고 난 뒤 마침내 터지던 폭죽 같은 신호. 그건 스스로가 내리는 축복 같은 거였다.
그 순간 레이사의 축복을, 나도 받았다. 참, 강인한 여성이다. 아니 강인한 사람이다. 이들이 보여주었던 혼란하고도 대담했던 움직임이 눈 앞을 스쳐지나갔다. 그것을 보는 내 얼굴에는 계속 웃음이 어려 있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사는 걸까. 그런 생각에 다다르자 조금 슬프기도 했다.
그녀는 말했다. 누구나 이런 자신만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지 않냐고. 그렇기에 마이너리티라는 말로 누군가를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이야기가 무슨 이야긴지는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아들었을 것이다.
빨간 색의 깃발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나 또한 그녀와 같은 축복의 순간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닥쳐 자궁> 또 열리면 안되나요? 진짜 급합니다 .... 친구들한테 다 보여주고 싶어요. 좀 더 넓은 극장에서 하는 닥쳐 자궁을 고대하며, 리뷰를 마무리 한다. 보신 분들 있으면 댓글 좀 달아주세요. 함께 이 흥분을 나눕시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