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생활로 보여준 지혜인 것 같아 이 방법이 소중해졌다
유난히도 무기력했던 토요일을 보냈다.
하염없이 잠을 잤는데도 늦잠을 자버린 일요일 아침, 아홉 시 예배를 드리기엔 늦은 시각이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겨우 일어나 겨우 겨우 씻었다. 온몸이 퉁퉁 부은 것 같고 입 안은 까끌하고 힘이 없지만, 오늘도 이렇게 보내면 영영 이렇게 살 것 같아 애써 정신을 차렸다. 어지러운 집 안을 정돈했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열한 시 예배도 다녀왔다. 돌아와 드라이브 가자는 남편의 말에 나갔다. 식사를 하고, 아버님 화실에 들렀다 집에 다시 왔다. 그동안 밀린 일기를 쓰고, 오랜만에 피아노 건반도 두들겼다. 밤에는 올해 처음으로 손 세차도 하고, 분식으로 야식을 사들고 시댁에 가서 나누어 먹었다. 돌아와 씻고 누웠다. 그제야 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주말을 돌아보니 엄마가 생각났다. 무기력을 대하는 내 모습이 엄마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엄마는 얼마간 잠을 잤다. 대낮에 커튼을 치고 어둑해진 안방에서. 잠을 청해서라도 힘든 일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던 걸까. 그러고는 엄마는 목욕탕에 다녀왔다. 때를 벗기며 무기력을 벗어나려 했던 엄마의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집 안의 가구 배치를 바꾸며 힘을 내기도 했다. 보통 가족들이 집을 비운 대낮에 혼자서 가구 배치를 바꾸곤 했다. 화장대를 옮기는 건 기본, 장롱이나 피아노도 혼자서 옮겼다. 학교를 다녀오면 달라진 집 안 모습에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게 여자 혼자서 가능한 일인가,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엄마에게는 어쩌면 가구를 옮기는 게 훨씬 쉬웠을지도. 본인 몸으로 낳은 나조차도 엄마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그에 비하면 가구는 쉬웠겠지.
엄마가 무기력을 이겨낼 때 가장 많이 쓴 방법은 일기쓰기이다. 어릴 적부터 엄마의 일기를 종종 훔쳐봤다. 그 일기장에 나는 가늠할 수 없는 엄마의 고민과 걱정, 슬픔과 불안, 공허함이 한 가득이었다. 엄마는 이것들을 일기장에 토해내며 마음을 추스렸던 것 같다.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 건 아니었는데, 엄마처럼 잠을 자고, 씻고, 집 안을 정돈하고, 일기를 썼다. 나도 모르게 배웠나보다. 엄마가 무기력을 이겨낸 방법을. 엄마가 생활로 보여준 지혜인 것 같아 이 방법이 소중해졌다. 앞으로 다시 무기력해져도 엄마에게 배운 방법으로 금세 털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