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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Mar 11. 2024

240311_무기력을 이겨내는 엄마의 방법

엄마가 생활로 보여준 지혜인 것 같아 이 방법이 소중해졌다

유난히도 무기력했던 토요일을 보냈다. 


하염없이 잠을 잤는데도 늦잠을 자버린 일요일 아침, 아홉 시 예배를 드리기엔 늦은 시각이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겨우 일어나 겨우 겨우 씻었다. 온몸이 퉁퉁 부은 같고 안은 까끌하고 힘이 없지만, 오늘도 이렇게 보내면 영영 이렇게 같아 애써 정신을 차렸다. 어지러운 안을 정돈했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열한 예배도 다녀왔다. 돌아와 드라이브 가자는 남편의 말에 나갔다. 식사를 하고, 아버님 화실에 들렀다 집에 다시 왔다. 그동안 밀린 일기를 쓰고, 오랜만에 피아노 건반도 두들겼다. 밤에는 올해 처음으로 세차도 하고, 분식으로 야식을 사들고 시댁에 가서 나누어 먹었다. 돌아와 씻고 누웠다. 그제야 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주말을 돌아보니 엄마가 생각났다. 무기력을 대하는 내 모습이 엄마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엄마는 얼마간 잠을 잤다. 대낮에 커튼을 치고 어둑해진 안방에서. 잠을 청해서라도 힘든 일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던 걸까. 그러고는 엄마는 목욕탕에 다녀왔다. 때를 벗기며 무기력을 벗어나려 했던 엄마의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안의 가구 배치를 바꾸며 힘을 내기도 했다. 보통 가족들이 집을 비운 대낮에 혼자서 가구 배치를 바꾸곤 했다. 화장대를 옮기는 기본, 장롱이나 피아노도 혼자서 옮겼다. 학교를 다녀오면 달라진 모습에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게 여자 혼자서 가능한 일인가,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엄마에게는 어쩌면 가구를 옮기는 훨씬 쉬웠을지도. 본인 몸으로 낳은 나조차도 엄마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그에 비하면 가구는 쉬웠겠지. 


엄마가 무기력을 이겨낼 가장 많이 방법은 일기쓰기이다. 어릴 적부터 엄마의 일기를 종종 훔쳐봤다. 일기장에 나는 가늠할 없는 엄마의 고민과 걱정, 슬픔과 불안, 공허함이 가득이었다. 엄마는 이것들을 일기장에 토해내며 마음을 추스렸던 같다.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 건 아니었는데, 엄마처럼 잠을 자고, 씻고, 집 안을 정돈하고, 일기를 썼다. 나도 모르게 배웠나보다. 엄마가 무기력을 이겨낸 방법을. 엄마가 생활로 보여준 지혜인 같아 방법이 소중해졌다. 앞으로 다시 무기력해져도 엄마에게 배운 방법으로 금세 털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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