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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Mar 12. 2024

240312 최악의 연봉 통보

3월을 기다렸다. 3월에 연봉 협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뭐든 비밀스럽게 하는 걸 잘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원래 하기로 했던 협상 시기를 비밀스럽게 미루더니, 이번 주부터 비밀스럽게 시작했다. 팀장도 본부장도 인사팀도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인사팀에서 이번 주에 회의실을 풀로 예약해 둔 걸 보고 스스로 눈치챘지만. 바보들의 첩보 영화 같다.


연봉 협상은 이렇게 진행됐다. 인사팀에서 대상자에게 뜬금없이 메시지를 보낸다. 지금 시간 되냐고. 된다고 하면 용건도 말하지 않고, 회의실로 소환한다. 그리고 나의 성과는 짤막하게 칭찬하고, 회사의 힘든 사정은 구구절절 설명한다. 재고의 여지가 없다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협상이 아니라 통보나 받으라는 뜻이다. 그리고 금액 통보를 받고 여러 마디의 말을 주고받고 끝난다. 올해는 하나 더 추가됐다. 노트북을 지참하라고 하더니 이유가 있더라. 전자 계약서를 그 자리에서 보내고 바로 서명하기 위해서였다. 협박에 못 이겨 지장 찍는 기분이 들어 서명을 하지 않고 나왔다.


통보받은 금액은 역대급이었다. 역대급으로 별로였다는 뜻이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받아본 적 없는 금액이었다. 실수령액을 찾아보니 세금 때문에 작년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한 달 담뱃값정도 되려나. 어쩌면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이번 협상은 역대 최악일 거란 예상은 작년부터 했다. 연말에 본부장이 직원들을 굳이 다 불러서 이야기할 때부터. 회사가 어렵다(도대체 좋은 시기는 언제였는지..?), 수익률이 안 좋다(그건 C레벨 책임 아닌가), 연말 매출이 중요하다(쌀로 밥 짓는 소리만큼 당연한 소릴하고 있네) 등등.


예상보다 더 최악이라 당황스럽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 실체를 확인했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해졌으니까.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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