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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Jul 25. 2023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_황선우, 김혼비

안부와 안녕을 묻는 일이야말로 편지의 처음이자 끝이고 전부라는 것을.

- 제가 ‘얄밉다’는 표현을 쓰는 많은 경우, 사실은 그 대상이 미웠던 것인데 미움이라는 감정을 받아들이기가 두려워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밉다’ 앞에 ‘얄’자를 붙인다는 것을요. 미워하는 게 정당한 순간에도 ‘얄’자를 붙여 상황을 귀엽고 사쇼한 것으로 만들어 대충 넘어갔고, ‘밉다’보다 한 단계 낮은 ‘얄밉다’로 감정의 수위를 낮춰 또 대충 넘어갔다는 것을요.


- 그러니까 미워할 용기는 미워하지 않을 용기, 나아가 사랑할 용기의 시발점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물론 미움을 꼭 버려야 할 나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갖고 있으면 있는 만큼 저의 에너지와 감정을 소진시키는 건 분명하니까요. 꼭 품어야 할 미움만을 정확하게 골라내고 나머지는 계속 버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요.


- 수영이 좋고, 성실하게 수영을 다니면서 발전하는 내가 마음에 들었어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접영까지 할 수 있게 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습니다. 형광색 오리발을 끼고 느긋하게 몇 번이고 레인을 왕복하는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죠. 나도 저렇게 오래 수영하고 싶다고.


- 같은 조건에서 내 체력이 바닥날 때 그렇듯이 나를 둘러싼 인구밀도가 높아질 때도 타인에게 친절하기 어려워지더군요.


- 잠시 멈춘 것도 결국은 수영을 완전히 그만두지 않기 위해서라고요. 좀 이상한 말이지만 오래 지속하기 위해선 언제든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 이보다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때로는 이보다는 더 고통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말에는 슬픔에 휘둘려 아무것도 못하는 제가 나약하게 느껴졌다가 어떤 날에는 변함없이 일상을 꾸려나가는 제가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온전히 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슬픔이고, 그래야 한다고 학습된 슬픈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 다정함이란 어쩌면 사람에게 필요 이상의 마음을 쓰는 일이겠지요.


- 역시 계절이란 제가 그 시공간으로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인가 봅니다.


- 제가 평소 선우씨에게 본받고 싶었던 점 중 하나가 굉장히 바쁜 일정 속에서도 수영을 배우고 꽃꽂이를 하고 리코더를 연습하고 좋은 전시나 공연을 꼭 챙겨보는 바지런하고 흔들림 없는 여유였거든요.


- 한 시절 저의 든든한 절기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편지를 쓰는 사람은,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을 떠올리면 더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다만 이 사람의 안부와 안녕을 묻는 일이야말로 편지의 처음이자 끝이고 전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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