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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a Noon 미디어 눈 Jan 28. 2021

청년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성장

코로나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 #3 #성장



나는 ‘청년’이라는 단어보다 ‘청소년’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이라는 큰 포부를 품고 ‘전국중고등학생연합 부산지역’에서 청소년 활동을 시작했고, 청소년운영위원회, 청소년참여위원회, 청소년특별회의를 거치며 청소년 사회참여활동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에서 정치학과 통일학(북한학)을 공부하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를 나의 직업으로 선택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청소년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청소년과 세상을 바꿔가는 것에 관심이 있어 결국 다시 방송통신대학교를 들어가서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2013년에는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해 청소년센터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였다. 직장을 구하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지만 100만원~130만원 받으며 살아왔던 활동가의 삶 속에서 저축이란 꿈도 꿀 수 없었고 결국 서울에서 첫 주거는 직장 상사의 부모님 집에서 방 한 칸에 얹혀살았다. 곧이어 친구와 셰어로 원룸에서 살다가 나와 집을 알아보는데 ‘희망하우징’이라는 것이 동네에 생겼다. SH서울주택공사에서 운영하는 학생공공주택으로 서울의 대학에 재학 중이면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 이라는 아주 저렴한 금액에 살 수 있는 곳이었고 희망하우징의 ‘청년관리자’를 뽑는다는 말에 지원했다. 


청년관리자로 선정이 되면 보수는 없지만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저렴한 가격에 주거를 해결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나의 주거활동은 시작되었다. ‘갈현희망하우징’은 청년관리자가 4명이었고 가구 수는 41가구였다. 4층 건물에 층마다 관리자가 한 명씩 상주하는 형태였지만 남자2, 여자2명이 함께 커뮤니티를 조성하며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입주를 하자마자 할 일이 매우 많았다. 책임의 소재로 인터넷도 안 깔려 있어서 지역 케이블방송 및 인터넷 업체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고 저렴하게 공급을 했고 자치회 구성을 위해 반상회를 조직하고 공동청소 규칙과 관리 업무 등을 시작했다. 일상적으로는 영화 상영회도 열고, 옥상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공동주방에서 때론 번개로 술도 한잔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SH(서울주택공사)와 트러블이 시작되었다. 41명이 사는 건물에 냉장고는 달랑 하나밖에 설치를 안 해주고, 정수기도 없고, 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없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라고 하면서 일체의 비용 지원이 없었다. 물론 이런 일들은 끈질기게 요구했고 관철시켜 나갔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하나 발생하는데 SH가 관할하는 공동주택 관리를 업체에 위탁을 주시 시작했는데 ‘갈현희망하우징’은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위탁을 요구했다. 문제는 위탁을 맡기는 순간 공동관리비가 2배 이상 인상되는 상황이었고 입주민들과 논의 끝에 우리는 자치적 운영을 이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SH는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갈등은 시작되었다. 


그런 갈등 속에서 외부의 힘을 빌리게 되었는데 바로 청년 주거운동을 하는 ‘민달팽이유니온’이었다. 그저 민달팽이유니온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는데 우연히 청년 관련된 토론에 갔다가 당시 대표였던 임경지 님을 만나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관련법도 알려주고, SH와 중재를 도와주면서 논의 테이블 속에서 결국 자치적 운영을 관철시켰다. 이후 자연스럽게 민달팽이유니온을 후원하면서 활동을 시작했고 그 첫 번째가 청년정책네트워크였다.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 주거 분과에 들어가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주거와 관련된 공부를 시작했고, 청년이라는 개념과 청년으로서의 정체성도 찾아갈 수 있었다. 이전에는 나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몰랐던 것들이 ‘갈현희망하우징’에 살기 시작하면서 ‘내 일’이 되기 시작하니 폭풍처럼 밀려오는 청년에 대한 고민들, 청년 주거의 불안함과 부동산을 살 자리가 아니라 투기로 보는 사람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다짐했던 것 같다. “나는 절대 부동산으로 돈을 벌지 않겠다고! 부동산에 관련된 투자도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지금까지 그 신념을 지켜오고 있다. 


주거로 시작한 관심은 영역이 확대되면서 청소년 사회참여와 같이 청년의 사회참여와 활동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또 어느 순간 일을 벌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서울 은평구에 살고 있는 동네 친구들을 모아서 ‘청년’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 “까”라는 동네모임을 만들었고 지역 복지관의 지원을 받아 제주와 몇 지역의 청년 공간 탐방도 갈 수 있었는데 전국에서 가장 청년 공간을 만들었다는 제주를 보면서 실망과 배움이 있었다. 바로 절대 공간만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결국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자가 필요하고 그것을 진정성 있게 움직여 나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까’를 중심으로 은평구에서 만들어진다는 청년 공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도 황당하게 청년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은 채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결국 구청 담당 부서에 계속 이야기를 했고 청년 공간 TF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민간협치사업을 통해 공간 구성뿐만 아니라 청년활동지원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제안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 나는 ‘청년’이라는 개념을 운동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취업과 창직, 진로에 엄청난 예산을 퍼부으면서 청년들의 활동공간, 마음의 안정 에는 전혀 관심 없는 일방적인 행정과 정책들에 답답함을 느끼고 지금도 여전히 활동의 안정, 공간의 안정을 요구하고 다닌다.  


 

2018년 부산으로 돌아와서는 지역에서 공익활동을 하는 청년활동가 네트워크 모임 ‘땀이 차오른다, 가자’(일명 땀차)를 만들고, 사단법인 부산청년들 활동을 통해 청년이 겪는 사회문제를 ‘청년의 사회참여’와 ‘제도개선’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어느 순간 청년이라는 화두는 나의 일상이 되어 있고, 청년 정책이라는 내용만 보면 눈길을 돌리게 된다. 


이렇게 활동으로, 만남으로 나는 청년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 #3 #성장

작가: 굿데이



본 매거진은 청년들의 지식커뮤니티 눈랩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함께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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