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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팀덕 Apr 03. 2020

23살, 유학에 대해 후회하다. (최종)

이상과 현실

뉴욕에서의 생활은 매우 힘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 나는 뉴욕으로 이사 가지 않고, 뉴저지에 남아 계속 뉴욕으로 학교를 다녔다.

평균적인 통학시간은 하루에 왕복 3시간 정도.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뉴욕에 도착하면, 버스터미널로부터 지하철을 타지 않고 50분 정도 걸어서 통학했다.

왜냐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조금 더 금전적으로 지원을 요청했을 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용돈 좀 더 달라고 하는 것이 괜스레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랄까.


매일 고정적으로 나가는 버스 교통비 만 원과 식비를 생각하면,

정말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다.

비싼 뉴욕 지하철비를 아낄 수 있다면, 하루 식비 정도에는 보탤 수 있기에,

나는 항상 걸어서 학교까지 통학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통학을 좀 즐겼었다.

'내가 드디어 뉴욕으로 학교를 다니는구나'라는 기대와 함께 나 자신이 뭔가 뉴요커가 된 것 같은

일종의 허세(?)를 즐기면서 긴 통학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일 똑같은 경치를 보다 보니 그냥 사람 많은 게 짜증만 날 뿐이었다.


이상과 현실이 많이 달랐다.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면 편하고, 멋있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악취 가득하고, 더러웠고, 사람들은 차갑고 바빴다. 항상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한 것도 한 몫했다. 

뉴욕에 이전에도 여러 번 와봤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 큰 도시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육체적으로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단지 정신적으로 많이 지칠 뿐이었다.


그래도 항상 아침마다 센트럴 파크로 학교까지 통학하는 길은, 무언가 나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긴 했었다.

뉴욕에서는 느끼기 힘든 풀 내음과 아직 관광객들과 사람들이 많지 않은 아침의 센트럴 파크 통학길은 그나마

힘들었던 나의 통학길에 한 줄기 단비와도 같았달까.


학교 수업도 이 전에 있던 학교와 다르게 매일매일 과제와 쪽지시험이 쏟아졌었고, 하루라도 계획을 세우지

않고 학과 공부를 따라가지 않으면, 나는 항상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버텨냈다.

매일매일 긴 통학시간을 견디고, 값싼 점심을 먹으며 한 푼이라도 아끼고, 열심히 학과 공부를 따라간 결과,

다시 한번 3.8/4.0이라는 학점을 받아낼 수 있었다.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던 뉴욕에서의 첫 학기였다.

그래도 나 자신이 대견했다.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다 버텨내고 다시 한번 좋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나는 학기가 끝난 뒤 친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와  사촌 형과 이모부가 있는 하와이로 여행을 떠났다.

휴식기간이 필요했다.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고민과 잡념들로부터 좀 벗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마음에 평화를 줄 수 있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나는 그렇게 비행기 표를 끊고,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났다.


일단은 나의 불알친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친구와 공항에서 만나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친구와 열흘 동안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매일매일 늦게까지 같이 재밌게 게임하고, 영화나 유튜브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같이 여행을 다녔다.


아마 미국에 온 뒤로 가장 재미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었다.

장소와는 상관없이, 

5살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놀 때면 그냥 한국에서 친구들과  다 같이 노는 것처럼 느껴져서였을까.


친구와 같이 지냈던 10일이 3일 정도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 이후, 우리는 또 기약 없는 다음 만남을 약속한 뒤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하와이로 떠났다.


하와이에서는 3주 정도 있을 예정이었다.

지난번에 하와이에 왔을 때 워낙 내가 하와이를 좋아하기도 했고,

내가 생각하는 혼자서, 조용히 생각 정리하기에는 이 곳보다 좋은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온 하와이는 여전히 좋았다.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날씨가 거의 매일 비가 오는 바람에 그렇게 좋진 않았지만,

역시 해가 뜨는 쨍쨍한 날이면 나는 바로 수영복을 챙겨 바다로 수영을 하러 갔다.


하루는 바다에서 꽤나 깊은 곳까지 들어와 수영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 무언가 떠 다니는 것을 느꼈다.

물안경을 벗고 보니, 큰 바다 거북이가 바로 내 옆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우와"만 반복할 뿐이었다.

정말 거북이가 바로 옆에 있었다.

거북이를 만지면 안 되는 하와이 법을 알고 있기에 만지진 못했지만,

정말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거북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2020년은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하고 다시 바다에서 조용히 수영을 했다.


하와이에서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일단 일본음식, 한국음식이 비교적 많이 흔한 하와이이기에, 기름진 미국 음식들보다는

 매일매일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음식들로 배도 채울 수 있었다.


저녁에는 사촌 형과 이모부와 함께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구경을 다녔다.

공부, 생활에 스트레스받을 것 없이 매일매일 그냥 신선놀음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곳에 비단 놀러 와서 이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정말 뉴욕을 공부하기로 선택한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너무 달랐다.

특히 친구의 학교를 구경하고, 사촌 형이 다녔던 학교를 구경했을 때는, 정말 우리 학교에 많이 실망했다.

훨씬 나은 시설, 인프라, 시스템.

접근성은 뉴욕이 더 좋을 수 있겠지만, 환경 자체가 우리 학교와 비교 불가였다.


그냥 머릿속으로 

"거지 같은 뉴욕. 거지 같은 뉴저지. 거지 같은 학교! 거지 같은 사람들!"을 연신 되풀이했다.

정말 동부에서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요소들이 대다수였는데,

이 곳에서는 정말 환경이 달라서 내가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에휴. 뭐 어쩌겠냐."

근데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시 학교를 옮기기에는 또 시행착오가 너무 많을 것 같았다.

이 곳에 오면 뉴욕보다는 나을 것이지만, 또 이 곳만의 단점이 있겠지 하고 그냥 웃어넘겼다.


그렇게 나는 다시 2년 만에 하와이로 돌아와, 2020년의 첫 날을 하와이에서 폭죽놀이를 보며 맞이했다.

그렇게 내 23살도 정신없이 지나갔다. 벌써 24살이라는게 믿기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21살인 2017년에

멈춰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바라던 2020년의 소원은 딱 하나였다.

"올해는 무사히 제발 아무 일도 없이 평탄하게 지나가게 해 주세요. 제발요."


그래도 새해에 대한 느낌은 좋았다.

그냥 왠지 모르게 2020년은 막연하게 행복하고 좋은 일들로 가득할 거라는 느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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