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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덕 Jul 10. 2020

24살, 귀국 (2)

분노

어느새 봄 학기가 시작한 지 시간이 한 달 정도 지나 나는 그래도 봄 학기에 스케줄에 어느 정도 맞춰 

조금은 적응이 되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매일 하루를 바쁘게 보내다 보니 밤에 일찍 잘 수 있어서

크게 힘들진 않았다. 여전히 버스 기다리는 것은 고역이었지만.


내 일상은 항상 똑같았다. 

학교 가는 날은 아침부터 학교에 가서 초저녁이 돼야 돌아와 저녁을 먹고 좀 쉬다가 과제를 하고,

안 가는 날은 아침에 헬스장을 갔다가 점심을 먹고 잘 때까지 휴식과 과제, 공부를 번갈아가며 했다.

그래도 나름 미친 과제의 양에도 적응이 되었는지, 빠짐없이 잘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2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일요일에 외할아버지의 생신을 기념해 외식을 한다고 했다.

학교 때문에 떠나 있던 사촌동생을 제외한 나, 사촌 형, 외숙모, 외삼촌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식당에서 만나 식사를 하기로 했다.


먼저 두 분의 댁에 들러 두 분을 데리고 식당에 가기로 했다.

사촌 형은 외할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고,

나머지는 외삼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 외할머니는 나만 보면 항상 정치를 얘기를 많이 하신다. 

한국이 이렇네.. 저렇네..

가끔 할머니의 너무 편향된 정치관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늙은이의 푸념이라고 생각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듣고 흘리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할머니는 한국의 코로나 사태와 비롯하여 나에게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소리를 하셨다.

뭐.. 다른 사람들도 이게 흔할 일이니 항상 그냥 그러려니 하고 들은 체 만 체 하는 게 늘 있는 일이지만,

그 날은 좀 달랐다.


갑자기 외삼촌이 운전하다 할머니에게 화를 냈다.

그러더니 할머니와 정치에 관해 논쟁을 시작했다.

흔한 좌파와 우파의 정치 논쟁이었지만 외삼촌은 그 논쟁에 감정을 좀 많이 실어 

할머니에게 언성을 많이 높였다.


외숙모와 나는 그런 외삼촌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결국 두 사람의 정치 논쟁으로 인해 차 안의 분위기는 한 껏 싸해졌다.

그 상태에서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 미리 도착해있던 사촌 형과 할아버지와 만나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시키고 또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거셨다.


"유덕아, 이번 여름에는 한국 가지마래이. 코로나 때문에 위험해서 안돼. 그냥 미국에 있어."

"네. 어차피 7월까지는 계절 학기 들을 거라서 남아있을 예정이었어요."

"그래 잘 생각했다이. 그 기관에서 인턴 일 열심히 하면 좋은 일 있을지 또 우예 아노."

"네. 제가 상황 보고 잘 결정할게요."

"그래."


할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외삼촌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 맨날 방에서 쳐 놀지만 말고, 너도 일 좀 해."

"예?"

"여름에 여기서 알바 같은 것 좀 해."


속으론 '또 시작됐구나'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평소에도 외삼촌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나는 미국에 유학을 오기 전까지 외삼촌이라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냥 주변 사람들에 의해 외삼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만 들어 보았다.


엄마의 외삼촌에 대한 평가와 이야기, 하와이 사는 식구들의 평가와 이야기를 통해 전해 들을 뿐이었다.

대부분 좋지 못한 말들이라서, 외삼촌이 그냥 그런 사람이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미국 유학을 결정하고 어디서 지낼지를 막 찾아보고, 어디로 갈지 결정을 했을 때,

타지에 홀로 갈 나를 너무 걱정하신 할머니와 엄마의 만류와 부탁으로 나는 이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사실 이 집에 들어올 때도,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워낙 이 식구들에 대해 내가 들은 게 많아서.


그래도 나는 이 집에서 잘 지냈다. 외숙모도 나한테 너무 잘해주셨고, 사촌동생인 제이슨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친구처럼 지냈다. 나도 이 두 사람에게 너무 감사해 집안일이라던가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항상 

앞장서서 돕곤 했다.


이 집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외숙모와 사촌 동생과 가깝게 지내면 지낼수록,

나의 외삼촌에 대한 인식은 더욱 나빠졌다.


내가 바라본 외삼촌은 꼰대, 한량이었다.

엉망인 자신의 인생과 책임들은 뒤로 하고 남들에 관해서만 말하고 험담하기 좋아하는

집안에 흔히 한 명씩들 있는 문제 있는 인간이라고 할까.


인식이 나쁘긴 했지만, 나는 그가 그렇게 살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일은 없었고, 

그가 그렇게 게으르고 자기 합리화하며 한심하게 산다 해도 

그건 그렇게 살기로 선택한 그의 인생이지 나는 내 인생 챙기기도 바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그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많이 본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그런 그에게조차 내가 나만의 알량한 정의감으로 무언가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선을 넘는 행동이었기에 나는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먼저 나에게 선을 넘었다. 그는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몇 번이고 

나와 우리 가족,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모함하는 행동으로 그의 치부를 먼저 드러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다 묵인하고 참고 있었다.

그런 그가 또 선을 넘은 것이다. 

기분은 또 매우 나빴지만 나는 이성적으로 대응했다.


"제가 돈이나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고, 부모님이랑 약속한 게 있어서 안 하는 거예요."


내가 이 말을 하자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제외한 세 사람이 '에이 그건 아니지'라며 반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참 웃겼다. 이런 일이 있는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애초에 유학생이 미국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불법인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도 웃긴 모양새였고,

다들 몰래 한다고 해도, 내가 우리 부모님과 하지 않기로 약속까지 했는데,

자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친척인 나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지속적으로 권유하는 지도 참으로 의문이었다.


"너도 일해서 사회생활 같은 것 좀 해봐야 될 거 아냐. 언제까지 부모한테 용돈 받고 살래?"


그리고 그는 기어코 또 선을 넘었다. 오늘은 안 되겠다 싶었다.


"저도 한국에 있을 때 알바 같은 것 많이 해봤는데요 뭐."

"네가 뭔 알바를 해봐?"

"뭐, 많이 해봤죠."

"치... 지가 무슨.."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좀 그렇네요."


그렇게 대화는 종료되었다.

나는 무척이나 화가 많이 났다. 하지만 최대한 자중하려 노력했다.

외숙모와 할머니는 내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바꿔보려 노력하셨고, 

나는 그럼에도 식사하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다시 아까와 같이 차에 올라 타 할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나는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외숙모와 할머니, 외삼촌은 계속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자 갑자기 외숙모가 창 밖을 보시다 말을 하셨다.


"참으로 거지 같다 이 동네.. 다 낡았고.. 나도 그냥 저기 남부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


그러자 외삼촌이 동조했다.


"나도 남부 내려가서 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면서!"

"그럼 당신이 먼저 가서 집도 지어놓고 좀 가꿔놔. 나도 나중에 내려가서 살게."

"아니! 나 혼자 갈 거야. 아무도 오지 마!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거니까."

"당신, 지금 그 정도 하고 살면 80%는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거야."


외숙모가 농담 던지듯이 외삼촌을 디스 했다. 나는 속으로 웃어 보였다.

외숙모의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외삼촌이 화를 냈다.


"아주 그냥 다 꼴 뵈기 싫어 죽겠어! 당신 내 집에서 나가!! 진형이(사촌 형)도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하고, 유덕이 너도 나가 이 새끼야!"

"어머,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래??"

"야야, 자가 미쳤나 와 아한테 지랄이고??"


나는 말없이 창문 밖을 바라보다 앞 쪽을 바라보았다.

외삼촌이 백미러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내가 장난하는 것 같지? 너 내 집에서 나가 이 새끼야."

"네, 나갈게요."


나도 눈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어딜 어른이 말하는데 말대답이야 개새끼가."

"뭐, 나이 먹으면 그런 자격이라도 생기나요?"

"너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어?"

"우리 부모님은 어른들 존중, 공경하라고 해주셨지만, 적어도 나 함부로 무시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새끼가 계속 말대답이네 야, 이 씨발 놈아."


그리고서 그는 나에게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머리 끝까지 화가 났지만 이성을 유지하려 애썼다.

옆에서는 할머니와 외숙모가 싸움을 말리려 애쓰셨다.


"아!! 엄마도 그러면 안 돼! 내가 왜 이 개새끼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내가 우리 제이슨(사촌 동생) 볼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아요?" 

"우리 애 지내는 방 봤어 얼마나 작은지? 우리 애도 그런 데서 지내는데 내가 왜 이 새끼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그는 할머니에게 울분을 토해냈다.

마치 내가 사촌 동생의 방을 뺏고 이 집에 들어왔다는 듯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저 정도면 그냥 막장 소설을 쓰는 수준이었다.


"아니 그러면 지가 열심히 일해서 지 자식 호강시켜주던가. 웃기지도 않네."


할머니의 촌철살인.

나도 어이가 없어 한 마디 했다.


"제가 제이슨(사촌 동생) 방을 뺏고 들어온 게 아니잖아요."

"시끄러워 너는 이 새끼야!! 시발 진짜 너 뒤지고 싶냐?"


그리고서 다시 나에게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 쯤 할머니 댁의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그는 나에게 욕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조용히 하라는 식으로 소리쳤다.


"삼촌!!!"


그걸 듣자 그는 나를 죽여버리겠다며 차를 아파트 단지 안에 급하게 세우고는 운전석에서 내려

내 좌석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서는 내 멱살을 잡았다.


"너 진짜 미국에서 쫓겨나고 싶어 이 새끼야?"


나도 이젠 참을 만큼 참았다 싶었다.

오늘 이 사람의 팔다리를 다 부러뜨리고 나한테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모습을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냥 분노심으로 가득 차 이 사람을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나도 차에서 박차고 나가려는 찰 나에 할머니가 내 팔을 붙잡으시며 매달렸다.


"아이고.. 유덕아.. 내가 미안하다.. 네가 제발 참아라.. 제발"


할머니는 눈을 꼭 감으시고 당신이 부릴 수 있는 최대의 몸부림으로 내 팔을 잡고 버티셨다.

순간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몇 초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빠였어도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했을까?'


순간 이성을 되찾았다. 나도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그러고선 놀라신 할머니를 진정시켰다.


"유덕아.. 제발 참아라.. 이 할미 부탁이다.."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화 안 낼게요. 약속할게요."

"유덕아 이 할머니가 미안하다. 할머니 집에 가자.. 할머니 집에서 지내라.."


나는 나를 욕하는 외삼촌을 뒤로하고 조용히 차에서 내려, 아파트로 걸어갔다.


"당신 빨리 진형이 데리고 내려와! 저 새끼는 알아서 살라하고!"

"...."


나는 올라가는 와중에 연신 할머니와 외숙모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두 분이 정말 많이 놀라신 것 같았다. 


감정적으로 최대한 동요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와중에 결국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너무 서러웠다. 학교 생활 적응하는 것도,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내가 원해서 온 이 곳에서도 이런 취급을 받고 쫓겨난 것이 너무 서러웠다.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것인지. 내가 그렇게 쌍욕을 먹고 맞을 만큼 잘못을 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할머니 댁에 들어와 나는 소파에 가만히 앉아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외숙모는 나에게 좀 진정하라는 말과 함께 사촌 형을 데리고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나에게 와서 나를 안아주셨다.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너무 서러웠다. 


"유덕아.. 울지 마라.. 네가 울면 이 할미 가슴이 찢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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