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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덕 Sep 16. 2020

24살, 귀국 (4)

격리 생활

북새통과도 같았던 뉴욕 공항은 마치 유령 도시라도 된 듯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 더 힘들 정도였다.

모든 곳에 사람이 없었고, 유일하게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창구에만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기 위해

서있는 사람들만 조금 있을 뿐이었다.


꽤나 낯선 광경을 보고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혼자 앉아 멍을 때렸다.


"진짜 끝이네.. 언제쯤에나 돌아올 수 있을까?"

"그래도 언젠가는 로드트립을 하기 위해서 꼭 돌아와야지."


멍을 때리다 비행기에 탑승해 한국으로 향했다.

다들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끼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끼고 14시간 동안 화장실도 가지 않고 

자리에 앉아 버텼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 나는 코로나 문진을 받은 뒤 

마중 나와서 계시던 아빠와 마주했다.


"어 잘 왔어? 일단 마스크랑 장갑 버리고 손 소독부터 하자."


아빠와 가볍게 인사를 한 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서로 말도 많이 안 하고 차로 향했다.

차에 오른 후 엄마한테 전화해서 내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말없이 서울의 화려한 불빛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꿈을 꾸는 듯했다.

내가 한국에 있다니. 그것도 학기 중에.


계속 혼돈과 혼란한 상황 속에 있다 보니 아빠와 같이 있는 것이 이리도 마음의 안정을 줄 줄이야.

공항에서 아빠 차를 타고 바로 집 근처 보건소에 들러 코로나 검사를 받은 후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바로 우리 집에서 좀 독립된 공간인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에 들어오자 모든 것에 비닐이 쳐져있었고 엄마가 준비해놓은 생필품과 소독 도구,

아빠가 내가 심심할까 옮겨 놓으신 내 게임기와 티비가 보였다.


한국에서의 코로나는 잠잠해지고 있었으나, 

지속적으로 해외에서 유입되는 유학생과 재외국민들로 인해 완전히 종식되지는 못하는 상황에

사회 전반적으로 유학생과 재외국민에 대한 혐오감이 증가하는 추세였다.


나는 자가격리 기간에 더해 한 달 동안 집 안에서 격리 생활을 즐기며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냥 나가도 딱히 할 게 없었을뿐더러 사회 분위기도 고려해봤을 때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한 달 동안은 칩거 생활을 했다.


워낙 미국에서 집에만 박혀있는 일이 많았다 보니 격리 생활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게임기와 티비까지 있으니 더욱 쉬웠다.


게다가 아직 학기 중이었기에 오히려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강제로 조성되어

대부분 하루 동안 과제하고 게임하고 티비를 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금방 지나갔다.


한 가지 조금 힘든 점은 미국 시간에 맞춰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하다 보니 

새벽에 깨있어야 해 수면 패턴이 불규칙적이게 됐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미국에 있을 때보다는 마음도 편하고 무엇보다 부모님과 같이 지낼 수 있다는 점이

적어도 마음의 부담은 많이 덜어내 주었다.

순간순간 긴장할 필요가 많이 없어졌달까.


그렇게 한 달이 금방 지나가고 5월부터는 코로나가 좀 잠잠해져 밖에 나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나니 역시 돌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도 사람들 만나는 것과 학기 마무리로 인해 바쁘게 지나갔다. 

학기를 마무리하던 와중에 여름 학기도 온라인이 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바로 여름 학기도 신청해 한국 대학 편입을 위한 학점을 모두 채웠다.


봄 학기가 끝나자마자 여름 학기를 들으며 나는 한국에서의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일상을 즐기고 있던 와중에 생일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에게 메일이 와있었다.


'서유덕 님, 입영 통지서입니다.'


"오잉? 이게 뭐람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졸린 눈을 비비며 메일을 확인해보았다.


'서유덕 님의 훈련 소집일자는 8월 13일입니다.'

갑작스러운 공익 훈련소 소집 통지서가 나와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차피 학기가 끝나고 소집을 위해 신청서를 낼 예정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갑작스러운 소집에도 별 감흥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차피 4주 뒤에 나오는 것도 있었고)

영장을 받을 때쯤 여름 학기가 종료되고 나의 미국 유학 생활 도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끝이 났다.


뭔가 마지막 수업을 듣고 나서 지난 1년 반 동안의 미국에서의 기억을 다시 복기해보았다.

최종 성적은 3.8/4.0, 영어 실력도 어느 정도 많이 늘었고, 유학 생활도 자린고비 생활을 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다녀왔다. 


조금 후회가 되는 점이라면 미국 문화에 대해 더 깊게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내가 혼자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들을 어느 정도 선을 두고 깊게 들어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미국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기에 큰 후회는 되지 않았다.


나는 훈련소 가기 전까지 한 달 여 시간을 계속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며 보냈다.

일단은 해보고 싶었던 게임들을 전부 사서 다 해보았고,

친구들과 축구도 하고, 영어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러 다니기도 했다.

다시 헬스장에 운동도 하러 다녔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더니 금방 입대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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