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는 이 분야만 전문적으로 하는 변호사들을 손에 꼽을 수 있는데,
1-2개의 법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환자를 대리해서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하기도 하고
병원을 대리해서 환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병원을 방어하기도 한다.
나는 고용변호사 시절에는 대표변호사님들이 고정 자문계약을 한 병원들을 대리해서
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의 피고 사건들을 많이 진행했고,
개업을 한 현재는 환자 사건들을 더 많이 진행하고 있다.
가끔 법원에서 병원을 대리해서 사건을 진행하다가 보면
환자들이 의사나 병원이 아닌 대리인인 나를 향해서 날을 세우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조정기일에서 한 환자의 보호자는 "당신도 사람이면서 왜 저런 사람같지도 않은 사람을 변호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어서 말문이 막히기도 했고
산후조리원에서 제공한 탕약을 먹고 몸상태가 악화되었다는 산모는 법정 밖에서 사건을 대기하고 있는 병원측 대리인인 나에게 "당신도 아이를 낳을 때 나처럼 똑같이 몸이 망가지길 바란다"라고 여러 차례 소리쳐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두려워서 회사 직원에게 법원에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을 한 적도 있었다.
가끔 뉴스나 언론기사를 통해서 다양한 변호사들의 모습을 본다.
누군가는 살인자를 변호한다는 이유로 법률대리인인 변호사에게 날선 저주를 퍼부어
어떤 변호사는 언론의 관심과 압박에 못이겨 수임했던 사건에서 사임하기도 하고
아니면 한술 더 떠 본인이 언론 인터뷰를 자처해서 의뢰인의 입장을 대변하고 변호사인 자신을 함께 방어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물론 변호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건을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의뢰인에 대한 본인의 개인적 감정이 투영된 채로 사건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일을 하는 내내 "내가 이 사건을 맡는 것이 맞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사임해 버릴까"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왔다갔다 한다.
도덕적 비난이나 언론의 가십은 오롯이 그 의뢰인 당사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법적인 책임은 그와 다르다.
본인이 한 행위에 대해서 항변하고 설명할 기회, 본인이 한 행위에 합당하는 크기의 법적 책임을 부담받을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변호사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