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 경보가 이어지는 여름입니다. 말 그대로 더워 죽겠는데, 비싼 전기료 걱정에 냉방 기기도 마음대로 못 트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눈 딱 감고 지르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습니다. 에어컨이 없던 조선 시대에는, 무더운 여름을 대체 어떻게 견뎠을까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물놀이. 시원하게 물에 발과 몸을 담그는 겁니다. 좋은데 매일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원한 돗자리를 깔거나, 모시와 삼베로 만든 옷을 입는 겁니다. 모시와 삼베로 만든 여름옷은 바람이 잘 통하면서도 움직이기 좋고, 질겨서 오래 쓸 수 있기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만지거나 입으면 시원하게 느껴지는 소재, 무더위에서 우리를 지켜 주는 기능성 소재를 냉감 소재라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죠.
냉감은 말 그대로 시원하거나 차갑게 느껴지는 감각을 말합니다. 이런 차가운 느낌을 주기 위해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보통 피부에 닿았을 때 시원하게 느껴지거나(접촉 냉감), 땀을 빨리 흡수하고 식혀서 시원하게 느껴지는 방법(흡습속건 냉감)을 이용합니다.
먼저 접촉냉감은 무언가에 피부가 닿았을 때 느껴지는 냉감입니다. 차가운 물체를 만졌을 때 느껴지는, 생각해 보면 아주 흔한 냉감이죠. 옷을 만드는 천에도 이런 냉감이 나는, 접촉냉감 소재가 있습니다. 천연 섬유로는 조상님들이 사랑했던 모시(저마)와 삼베(대마),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리넨(아마), 비단 등이 있고, 화학 섬유로는 레이온, 폴리에틸렌 등이 있습니다.
접촉냉감의 핵심은 열전달 속도입니다. 아쉽지만 우리 신체가 가지고 있는 감각 시스템은 온도 자체를 잴 수는 없는데요. 대신 무언가에 닿았을 때, 열을 방출하거나 흡수하는 속도를 민감하게 느낍니다. 열이 빠르게 방출될수록, 더 차갑게 느끼는 거죠. 빠르게 체온을 빼앗긴다? 아, 이건 차가운 물질이구나-하고요.
예를 들어 표면 온도를 측정했을 때, 비슷하게 측정되는 종이와 금속이 있다고 칩시다. 같은 온도여도 만지는 느낌이 다릅니다. 금속은 차갑고 종이는 따뜻하게 느껴지죠. 열전달 속도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즘에는 기존 냉감 소재에 열 전도성이 좋은 물질을 첨가해, 열이 전달되는 속도를 높여서 더 차갑게 느껴지는 소재를 만들기도 합니다.
입자마자 시원하게 느껴진다니, 정말 좋은 소재 같죠? 하지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시원한 느낌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열이 전달되면 결국, 접촉 부위 온도는 비슷하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소재는 수분이 흡수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사람 몸은 체온 조절을 위해 항상 땀을 흘리기 때문에, 수분이 흡수되지 않으면 몸에 땀이 차서 불쾌합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흡습속건 기능을 가진 소재입니다. 한자 풀이 그대로 습기를 흡수하고, 빨리 건조 시키는 능력을 갖춘 소재인데요. 피부에서 땀이 직접 증발하길 기다리지 않고, 모세관 현상을 이용해 땀을 섬유로 먼저 흡수한 다음, 공기와 닿는 면적을 넓혀 빠르게 기화 시킵니다. 겨울철 가습기 대신 젖은 수건을 널어 쓰는 것과 같은 원리죠.
예를 들어 에어로쿨(AEROCOOL)은 섬유 원사의 단면을 클로버잎 형태로 가공해서, 합성섬유인데도 천연섬유보다 강력한 흡습속건 기능을 가진 소재입니다. 쿨맥스(COOLMAX)는 보통 한 가닥으로 이뤄진 섬유 단면을 4개의 홈으로 나눈 소재로, 역시 땀이 금방 말라서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코오롱 쿨론이나 나이키 드라이핏, 아디다스 클라이마쿨 역시 비슷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소재를 그냥 쓰지도 않습니다. 모든 소재는 각각 장단점이 있기에,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부분 다른 원사와 혼합해서 천을 만들게 됩니다. 3D 메시 가공처럼 통기성을 높이기 위해 원단을 성기게 짜기도 합니다. 자외선 차단 기능을 넣거나, 아예 옷 디자인을 바꾸는 방법도 있습니다. 겨드랑이처럼 땀이 많이 나는 부위를 바람이 잘 통하게 바꾸면, 실 착용감이 훨씬 좋아집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후 위기로 인해, 전보다 훨씬 무더워진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일상이나 등산, 스포츠 같은 레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태어난 냉감 소재는, 이제 더운 날씨에 일해야 하는 사람을 지원하는 기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냉감 소재의 대표 주자가 바로 상변화물질(Phase Change Materials, PCM)입니다.
상변화는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물이 증발해 수증기가 되는 것처럼 열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하면서, 물질이 다른 형태로 변하는 걸 말합니다. 상변화물질은 이렇게 상이 변하는 과정에서, 특정 온도보다 주변 온도가 내려가면 열을 방출하고(수증기→물), 올라가면 열을 흡수하는(물→수증기) 식으로 반응하는 물질입니다.
흔히 쓰는 아이스팩과 비슷하지만, 목적 온도와 온도 유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런 특징을 이용해 온감도, 냉감도 만들어 낼 수 있는데요. 의류에 쓰이는 PCM은 보통 주변 온도 28도를 기점으로 녹으면서 열을 흡수합니다. 사람 체온을 생각하면, 입자마자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거죠.
PCM으로 쓰이는 물질은 주로 파라핀이나 지질, 당알코올, 염수화물입니다. 쓰임새도 다양합니다. 얼음 조끼처럼 만들어 입을 수도 있지만, PCM을 마이크로캡슐에 담은 다음 원단에 코팅하거나, 직접 주입해서 냉감 소재로 만드는 방법을 많이 씁니다. 사실 온도에 민감한 특성 때문에 다루기가 어려운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옷보다는 매트리스나 베개 같은 침구류에 더 많이 쓰입니다.
PCM은 원래 건물 냉난방이나 전자기기, 자동차 등에 쓰던 물질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직물 형태로 개발되면서 차량 카시트나 유모차 같은 곳에도 쓰고, 가죽에 포함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론 더우면 차가운, 추우면 따뜻하게 느껴지는 가죽 소파를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더해 새로운 냉감 소재 역시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2년 7월, 한국화학연구원과 중앙대,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UCI) 공동 연구팀이 발표한 ‘친환경 수동 복사냉각 소재’가 있습니다. 태양 빛을 95% 이상 반사하면서 물체에서 방출하는 복사 에너지는 쉽게 나갈 수 있는 소재로, 이 소재를 사용한 필름을 사용하면 주변 온도보다 9도 정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옷보다는 건물이나 자동차에 붙이라고 만들어진 소재이지만, 피복에 응용할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눈에 띄지 않게 빛을 반사해 체온을 낮추는 소재도 만들어졌습니다. 폴리 젖산과 이산화티타늄 나노 입자를 천에 입히면, 겉보기엔 평범한 옷이지만 광학적으론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피부에서 나온 체열을 흡수한 다음, 중간 적외선(MIR)으로 공중에 방출합니다. 거울 원단이라고 부르는 이 소재는, 입기만 해도 피부 온도가 5도 정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점점 견딜 수 없게 변하는 날씨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냉감소재는 더 많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옷은 그저 기능성만으로 평가받지 않죠. 입기 편하고, 튼튼하고, 외부 위험 요소에서 우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맵시는 당연히 나야 하고요. 앞으로 더 좋은 냉감소재가 개발되어, 무더위에서 우리를 지켜주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