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이 키건
바람 피우는 모습을 찍은 적 있다. 예전에 파티 사진을 찍을 때였다. 파티장을 찍은 사진 한구석에, 한 커플의 여자와 다른 남자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찍혔다. 사진 편집할 때는 둘이 친한가?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그 커플이 깨진 후에야 이해가 됐다.
얼마 전 트위터(X)에서는 30여 년 전 크리스마스 거리 풍경을 캡처한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사진에 찍힌 차가 아버지 차인데, 왜 옆에 있는 사람은 엄마가 아닌 것 같지?’라고 댓글을 달았기 때문이다. 모두 사실이었다(...). 옛일이라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을 뿐.
... 이미지를 찍는 사람은, 싫든 좋든 항상 뭔가의 목격자다.
클레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도 그렇다. 작가는 1985년 아일랜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작은 도시의 풍경을 조용히 지켜본다. 거기에는 한 중년 남자와 매우 더러운 모습을 한 소녀가 서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힌트는 책 앞에 쓰인 글에 있다.
아일랜드의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받았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
막달레나 세탁소.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에서 ‘타락한 여성’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했던 시설들. 타락했다 여겨진 여성과 여자아이들이 강제로 일했던 곳. 남모르게 숨진 사람만 3만 명에 달한다는 그곳.
주인공 빌 펄롱이 사는 뉴로스에도 그런 곳이 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수녀원이. 세탁소의 세탁 솜씨는 아주 평판이 좋다. 빌의 다섯 딸 중의 하나는 그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뉴로스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에 다닌다. 뭔가 미심쩍긴 하지만, 다들 수녀원 수녀들은 참 좋은 사람이라 말한다.
수녀원만이 아니다.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지만, 뉴로스는 그래도 사람이 살만한 도시다. 이웃들은 간단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챙기고, 석탄을 파는 빌 펄롱도 수입이 나쁘지 않다. 그는 아일린이란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도 했고, 다섯 딸도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
심지어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에서, 미혼모의 자식임에도 불구하고(보통 따돌림당한다.), 운 좋게 개신교도이자(보통 종교가 다르면 말썽이 생긴다) 엄마의 고용주인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보통 일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쫓아낸다) 평온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운 나쁜 사람도 꽤 있지만, 운 좋은 펄롱은 그냥 그렇게 살면 됐다.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갔다가, 적당한 평온이 숨기고 있는 적당한 잔인함을 마주치기 전까지는.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거기 있는 애들은 세상에 돌봐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런 거야. ...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펄롱이 아일린을 쳐다보았다.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 이처럼 사소한 것들, P56~57
우린 대부분,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를 모른다. 그냥 살다가, 운 나쁜 사건을 만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아 여기까지 살아왔구나-하고. 깨달은들 달라지는 건 없다. 삶이 숨긴 잔인함을 직시하기 위해, 적당히 평온한 삶을 깰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이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고, 툭 튀어나오는 사람이. 최규석이 웹툰 ‘송곳’에서 그려낸, 그런 송곳 같은 사람이. 이해타산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려고 움직이는 사람이. 이건 아니니까, 그냥 이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빌 펄롱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라고 하면 무책임하니, 작가는 펄롱이 결단을 내리기까지 천천히 빌드업한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이가, 읽고 나니 다시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게 되더라- 말하는 이유다.
영화 Small Things Like These / Big Things Films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 이처럼 사소한 것들, P119
씁쓸한 것은, 그래야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펄롱이 한 일이 잘한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소설 속 미시즈 케호처럼 ‘철없는 어린애 보듯 하는 표정’으로 그를 볼 수도 있겠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것 알지? 라고 말하며.
자, 다시 1985년 12월 크리스마스 밤의 아일랜드 뉴로스 상점가로 돌아가 보자. 이제 곧 마흔이 되는 한 남자가 발톱 끝까지 더러운 한 아이와 거리를 걷고 있다. 방금 수녀원에서 데리고 나온 아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그들을 모른 척하거나 피하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고 갈 길을 간다.
이야기는 그렇게, 딱 아쉬운 부분에서 끝난다. 뒷이야기는 당신의 상상에 맡긴다는 듯. 당신이 만약 이 거리에 있다면, 어떤 사진을 찍을까? 누구를 모델로 삼고, 어떤 구도로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 나는 궁금하다. 그 거리에서, 당신은 어떤 목격자가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