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당연해서 식상한 이야기지만...
최근 마음에 드는 스마트 워치를 하나 찾았습니다. 화면이 항상 켜져 있고, 배터리가 2주 정도 갑니다. 무엇보다 시계만 차고 있으면 24시간 심박 수를 측정해, 하루 동안 얼마나 운동했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알려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 전 이렇게, 매일매일 많은 것을 확인하고 기록합니다.
수면 상태는 슬립 사이클이란 앱을 이용해서 교차 체크 합니다. 코 고는 소리를(...) 녹음해 주기 때문입니다. 몸무게는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스마트 체중계로 관리합니다. 지난 몇 년간 체중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Noom 코치 앱으로 식단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자기 상태를 숫자로 기록하는 일을 ‘자기 측정(Quantified Self)’ 또는 ‘라이프 트래킹(Life-Tracking)’이라 부릅니다. 빅데이터를 이용해 세상을 분석하는 일처럼, 신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해 내 몸 상태가 어떤가 점검하는 거죠.
최근 생긴 트렌드는 아닙니다. 인간은 옛날부터 자기 상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점검했습니다. 1930년대에 베니바르 부시가 제안한, 개인의 모든 기록을 자동 저장하는 ‘메멕스(Memex)’라는 상상 속 컴퓨터도 있습니다.
그 개념을 이어받아 2001년부터 시작된 고든 벨의 라이프 로깅 프로젝트 ‘마이라이프비츠(MyLifeBits)’와 1965년 만들어진 만보계는 자기 측정 시대의 시조새입니다.
왜 자기 측정을 하는 걸까요?
사실 웨어러블 기기나 여러 IOT 기기를 이용한 자기 관리 방법은 느슨한 믿음에 근거해 있습니다. 기록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고칠 수 있다는 믿음, 스스로 데이터를 보고 분석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입니다. 마치 병원에서 검사 후 치료를 받는 것처럼 말이죠.
근거 없는 믿음은 아닙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실시한 당뇨병 예방 프로그램(DPP)이나 핀란드 당뇨병 예방 연구(DPS)는 생활습관을 교정하면 질병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측정된 데이터를 분석해 행동을 교정한다면 삶은 분명히 나아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술을 많이 먹고 자면 자는 내내 스트레스 상태가 된다는 것, 밤늦게 하는 운동이 숙면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 등은 스마트 워치가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겁니다.
문제는 사람입니다. IOT 기술은 사용자 행동과 연관된 정보를 수집, 처리, 피드백을 제공하는 일에는 능숙하지만, 행동 변화를 설득하지는 못합니다. 몸무게를 확인하는 일과 다이어트 식단을 실행하는 일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 합니다.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드러나면 수치스럽게 여깁니다. 많이 먹은 다음 날은 체중계에 올라가기 싫어지는 것처럼요.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측정 데이터는 결괏값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스마트 체중계가 지난 몇 년간 내 몸무게 변화를 보여줄 수는 있어도, 왜 그렇게 됐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개인은 기껏 ‘요즘 어떤 일을 해서’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데이터 분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웨어러블 기기는 생활습관을 바꿀 필요가 있는 사람보다, 이미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더 잘하고 싶어서’ 사용합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골프 라운딩 정보를 보여주는 시계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사이클링 컴퓨터를, 마라톤이나 철인 3종 경기를 준비하는 사람은 제대로 작동하는 GPS와 심박 센서가 달긴 기기를 씁니다.
건강관리를 위해선 저가형 밴드와 체중계가 많이 팔리고, 애플 워치는 명품 시계와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시장조사기관 카날리스에선 2023년 웨어러블 기기는 1억 8천6백만 대가 팔렸으며, 2024년에도 10% 증가할 거라 말합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고령화 사회 진입과 더불어 대사 증후군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건강을 지킨다는 관점에서도 웨어러블 기기는 더 많이 보급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은 기존 헬스케어 및 운동 지원 기능을 강화하면서 심전도나 혈당, 혈압, 산소포화도, 체온 측정 기능 등을 추가해 의료 분야로 사용 폭을 넓히는 추세입니다.
부착/측정이 전부인 단순한 사용 구조를 이용해 수면 케어, 시니어 케어, 펫 케어 영역도 포함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수면 무호흡증이나 당뇨 같은 질환을 예측하거나, 보다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는 피드백을 주려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로 수집된 여러 정보는 다른 판단을 내리는 근거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보험회사 디스커버리는 건강관리 앱으로 수집된 운동 기록을 이용해 다양한 성과급을 사용자에게 제공합니다.
애플은 2018년 임직원을 위한 의료 서비스 센터를 오픈했습니다. 겉으로는 사내 보건소와 같은 곳이지만, 실제로는 헬스 앱과 애플 워치를 이용한 예방 진료 방법을 찾아보는 곳이란 이야기가 많습니다.
꾸준한 유산소 운동만으로도 삶의 질이 나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축적된 만큼, 앞으로 자기 측정 문화나 자기 측정을 위한 기기들은 라이프 스타일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될 겁니다. 그렇게 모인 데이터에 기반을 둔 서비스도 많이 출시되겠지요.
다만 여러 기기를 사용해 본 입장에선, 더욱 열린 플랫폼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체 데이터가 하루 이틀 쌓이는 정보도 아닌데, 웨어러블 기기를 바꿀 때나 스마트폰을 바꿀 때마다 그동안 기록해 놨던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고는 합니다.
쌓인 데이터를 전문가가 분석해 적절한 처방을 해주거나, 코치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연결해 주는 플랫폼도 없습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보여줬는데도 그냥 쓱 훑어보고 말더군요.
다른 기기, 다른 OS, 기기와 사람, 사람과 사람을 다양하게 연결해 줄 수 있다면, 그래서 이용자가 정말 ‘케어’ 받는다고 느낀다면, 다들 한 번쯤 써보고 싶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