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의 내일을 그려보다
성수에는 방문할 곳이 참 많지만 하나의 주제로 묶기에 적합한 공간들을 찾자면 이 두 공간은 무조건 같이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에 방문한 무신사 스탠다드 성수점과 이구성수였다.
같은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지만 서로 다른 타깃과 전략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둘의 오프라인 공간은 어떤 공통점과 차별점이 있을지 평소에 궁금했던 터라 쓸거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무신사의 온오프라인 연계가 훌륭하다는 평가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주제만 잡고 살펴봐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계산을 아주 잘못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이구성수는 애플 쇼케이스를 위해 새롭게 단장한 상태였다. (29센치만의 개성보다는 애플의 브랜딩이 더 돋보이도록 공간이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구성수 보다는 애플 스토어에 방문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문은 또 하나의 애플 스토어를 만들 것이었다면 애플이 29센치와 협력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점)
유통 관계자가 아니어서일까? 무신사 스탠다드의 특별히 대단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눈에 띄는 단점이 없고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도 있다. 특히 옷에 부착되어 있는 큐알 코드를 통해 무신사 앱에서 더 저렴하게 아이템을 살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은 너무 좋았다)
위의 이유로 이구성수와 무신사 스탠다드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두 공간은 충분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성수 중심 거리를 쭉 걸으며 성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 기회가 되었다.
성수는 원래 수제화 거리와 스타트업의 둥지를 품고 있는 조용하지만 활력있는 동네였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MZ 사이에서 힙한 브랜드들이 성수에 들어오며 동네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요즘 뜨는 브랜드 가게와 팝업 스토어가 넘쳐나는 성수는 눈 깜빡할 사이에 역동적이고 힙한 동네로 바뀌었다.
SNS에는 매일 성수 콘텐츠가 뜬다.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성수는 주기적으로 방문하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다. 두들러도 마케팅과 트렌드를 경험하기 위해 종종 방문하다 2년 정도 전부터 가고 싶은 마음이 잘 안 들었다. 기대는 컸는데 충족감은 없었고, 산만함 속에서 지치고 따분한 기분이 들어 돌아오면 찝찝함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성수를 다녀오며 그 찝찝함의 원인을 명확하게 알았다.
처음 성수를 키운 트렌디함이 이제는 많이 희석된 것처럼 느껴진다. 가장 주요하게 성수를 키운 트렌디함은 팝업에서 왔었다. 하지만 아무리 유효한 시간을 가지고 열리는 팝업이라 해도 ‘식상해’지는 길을 피하기는 어려웠나 보다. 지난 몇 년간 팝업을 활용하여 진행되었던 여러 색다른 마케팅 실험들이 줄어들고 팝업의 형태가 많이 정형화되며 팝업은 비교적 흔한 경험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팝업과 성수가 가진 트렌디함은 희석되고 트렌디한 이미지를 얻어 장사를 하고자 하는 상인들이 거리에 많아지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거리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과정이다. 하지만 진정 문제라고 생각되었던 부분은 도산의 하이엔드나 홍대의 젊고 활기참과 같은 동네 전체가 가진 통일된 컨셉이 아직 구축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거리 전체에서 느껴지는 산만한 느낌에서 컨셉의 부재를 느꼈는데, 특히 팝업이 없을 때는 황량하게 비어있는 팝업 공간들이 그런 느낌의 형성에 일조했다고 생각된다.
지금 성수의 주 고객은 흥미로운 경험을 찾고자 하는 2030이다. 이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새로움은 오래갈 수가 없기 때문에 새로움이 사라진 그다음 성수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행인 점은 이번에 성수를 방문했을 때 무신사 스탠다드에서 언뜻 그 답을 엿본 것 같다. 바로 원래 가로수길이 가지고 있었던 20대를 위한 힙한 패션 거리의 위상을 성수가 가져오는 미래이다. 도산이 가로수길의 고객을 많이 흡수했다고는 하지만 도산은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 매장이 다수 자리 잡고 있어 중저가 브랜드들의 진입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이미 힙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옷을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들을, 성수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20대의 선택을 받는 온라인 베이스 패션 브랜드들의 브랜드 스토어들이 여럿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을 필두로 합리적인 가격대의 패션을 경험하고 구매할 수 있는 매장이 많아진다면, 성수는 그런 상품군을 구매하고자 하는 수요를 가진 고객을 바탕으로 트렌디함이 빠진 후에도 안정적인 방문객 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1: 성수를 둘러보고, 그 직전에 갔던 북촌과의 대비감이 특히 더 크게 느껴졌다. 북촌은 그 명맥을 이어온 주체를 중심으로 건강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성수는 성수만의 정체성과 매력으로 나아가겠지만, 그 과정에서 북촌을 탐구해 봐도 좋을 거 같다.
결론 2: 이제 팝업을 하고 싶다면 자본을 들여 규모를 크게 열거나, 도산이나 백화점을 공략하는 게 목적 달성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