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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Aug 13. 2021

누가 내 진짜 조상이냐?

#004 네 번째 이야기

이렇게 유인원의 인류 진화과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애들이 공부하는 건지 내가 공부하는 건지 헷갈리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원체 모든 걸 이탈리아어로 공부해야 하는 것도 모자라, 학교 다닐 땐 뭘 공부했었는지,,,,하나도 기억나는 게 없다! 백지장같이 깨끗한 머리에 다시 정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역시, 공부는 자진해서 해야 제맛이지! 하고 싶은 동기가 주어지자, 밤낮으로 이탈리아어와 포르투갈어로 책들을  눈을 부릅뜨고 파기 시작했고, 세상이 좋아져서 온갖 다큐들을 쉽게, 그리고 게걸스럽게 섭렵할 수 있었다. 벼락치기 시험을 준비하듯 밤낮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자료들을 준비했다.


유인원 족보


그런데, 우리 조상의 족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학교 교육상 나온 온라인 정보에서는 호모 네안델탈 Homo Neanderthal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다른 사이트에서나 다큐에서는 우리의 조상을 호모 헤이델베르겐시스 Homo Heidelgergensis라고 주장한다. 왜 이토록 호모 네안델탈 Homo Neanderthal 이야기가 많은가 보았더니, 현제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호모 네안델탄 Homo Nealnderthal 유적의 량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전 공학의 발전으로 호모 에렉투스 Homo Erectus에서 헤이델베르겐시스 Heidelgergensis로 가고 호모 사피언스 Homo Sapiens로 넘어간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기 위해서이지, 우리 조상의 족보는 이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나무의 가지치기가 수십 군데로 치고 나가니,,,,,같은 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함께 존재했었던 다른 종의 원시인들이 존재하기도 했었다. 예를 들어, 호모 네안델탈 Homo Neanderthal 나중에 호모 사피언스 Homo Sapiens와 함께 지냈었던 시기가 겹치기도 한다. 그렇기에, 유럽인들의 5%의 피가 호모 네안델탈 Homo Neanderthal 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아,,,,헷갈려,,,,머리를 쥐어짜고 이것저것 읽고, 다큐들 헤집고 다니고, Daniela와 함께 헷갈리는 부분 함께 찾아보기도하고.....학교 땐 이렇게 공부 열심히 안했었는데.... 그리하여, 우리는 고심 끝에, 같은 시기에 존재했었던 3가지 다른 종류의 원시인들을 아이들에게 소개하기로 했다. 우리 직계 조상인, 헤이델베르겐시스 Heidelgergensis,  호모 사피언스 Homo Sapiens의 사촌인 호모 네안델탈 Homo Neanderthal 그리고 플로라 섬 Flora (Hobbit) 사람들이다. 이들은 같은 시기에 존재했었지만, 자신들이 살았던 지역의 환경에 맞추어 전혀 다르게 진화해갔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진화한 세 원시인들을 비교하면서 소개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호모 헤이델베르겐시스  Homo Heidelgergensis는 호모 사피언스 Homo Sapiens에 비해 신체적으로 훨씬 더 크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 중 하나를 고고학자들은 "골리앗"이라고 이름 붙였다. 발견된 뼈의 골격과 장소, 그 당시의 기후를 모두 감안해서 만든 그의 형상은 신장 2미터의 건장한 체격에 검은 피부, 튀어나온 광대뼈와 검은 머리카락으로 현재 아프리카 사람들과 비슷했다. 아프리카의 무더운 날씨에 적응하기 위해서 땀을 많이 흘렸기에, 몸을 둘러싼 많은 털들이 빠지고, 땀을 밖으로 내놓기 위해서 몸집도 더 커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 당시에 같은 지역에 살았던 코끼리 또한 그들처럼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컸다고 한다. 아프리카 평원처럼 평평하고 무더위로 땅이 쩍쩍 갈라지는 지역을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골라 호모 헤이델베르겐시스 Homo Heidelgergensis가 살았었던 지역이라고 설정했다. 아이들과 함께 원을 둘러 눈을 감고 그들의 신체적 조건을 설명하며 가상공간에서 그들처럼 건장한 원시인으로 둔갑해본다. 그리고 손에 손을 잡고 최대한 넓게 원을 만들어 그 지역의 코끼리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호모 헤이델베르겐시스  Homo Heidelgergensis가 존재하던 당시의 아프리카의 코끼리의 크기를 가늠해보기 위해서 손을 잡은 거로 모자라 나중에는 대나무 가지를 이용해 본


두 번째로는, 플로라 Flora 섬에서 만 5살 정도의 어린아이와 같은 체격(1미터)의 어른 뼈들이 발견되었었다. 보통 귀와 이빨을 조사해보면 대략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영화 "호빗"에 나오는 호빗 Hobbite 들은 그냥 영화에서나 나오는 가상 인물들이 아니었다! 실제 호빗처럼 작은 체격의 원시인들이 존재했었던 것이다. 이들은 오스트레일리아 근처의 작디작은 섬에서 고립된 상태로 오랫동안 살아오다 보니, 후덥지근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집이 작아졌다. 그 당시에 같은 지역에 살았던 코끼리 또한 그들처럼 몸집이 작았었다고 한다.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우리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선 작은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이렇게 좁은 다리를 우리는 섬이라고 설정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눈을 다시 감고 아이들의 몸짓과 비슷한 어른인 호빗의 신체적 조건들을 묘사하며 그들과 일치되는 것을 상상해보도록 유도하였다. 그리고 손에 손을 잡고 최대한 작게 원을 만들어 그 당시에 함께 존재했었던 그 지역의 코끼리의 크기를 실제로 가늠해 보았다.


플로라 Flora 섬의 코끼리를 가늠해본다.

 

세 번째로는, 우리에게 꽤 많이 알려진 호모 네안델탈 Homo Neanderthal 로, 추운 지역에 살았었던 것만큼, 동물들을 사냥해서 배를 채우고, 가죽들을 벗겨 옷과 신발 등을 만들어 몸을 보호했었다. 추운 북쪽 숲의 환경을 유념해서 언덕 위의 오렌지 나무들이 즐비한 가운데에 모닷불을 켜고 밤에 짐승들로부터 보호하고, 몸을 따스하게 만들던 환경을 재현해 보았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한 그룹은 아이들을 돌보고, 다른 그룹은 사냥에 나섰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남은 그룹은 아이들과 함께 불을 키는 시도와 동물 가죽의 껍데기를 돌을 이용해서 벗기는 작업을 했다. 사냥을 떠난 그룹은 커다란 비손떼를 잡아서 기다란 막대기에 걸어 두 사람의 어깨에 짊어지고 자신감 넘치게 부족에 돌아왔다. 워낙 무기 만드는 걸 즐겨하는 아이들인지라, 모닷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아서 그 당시에 있었던 돌촉이 있는 창을 만들기 위해서 나뭇가지의 껍데기를 벗기고 적절한 돌을 찾아 날카롭게 만들기 위해서 돌로 날을 만들며 무기 제작에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호모 네안델탈 Homo Neanderthal이 사는 환경을 재현해 본다.
비손테를 사냥해 온 율이와 Nina
잡아온 짐승의 가죽을 벗겨 옷으로 만드는 과정을 재현해 본다.


이렇게 같은 시기이더라도,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르게 진화해나가는 유인원들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해보았다. 이로써, 인간과 자연이 결코 나눠진 존재가 아니라 서로 공존하는 존재라는 것을 함께 배워간다. 현대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우리의 근원과 본질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되었다. 유인원들의 생활상들을 공부해 나가면서 비록 기술적으로 뒤떨어져 있었을지언정, 그들의 삶의 질이 낮았다고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유인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사냥을 하는 것이었지, 사냥을 하기 위해서 살지는 않았다. 유인원들이 사냥에 들이는 시간은 하루에 몇 시간 안되었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는데에 할애하는가?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돈을 벌기 위해서? 그 돈으로 무엇을 하기 위해서? 생계를 꾸려 나가기 위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 노후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돈을 저축해 놓아야 할까? 걸리지도 않은 수백 가지의 질병들을 대비해서 일 년에 얼마나 많은 돈을 보험에 넣어야 할까? 시스템이란 살아가는데 편리하고 이치에 맞게 살기 위해서 제정해 놓은 것일진대, 지금 이 시스템에 우리를 끼워 맞추기 위해서 목이 조여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사리처럼 작은 손들로 함께 나눠먹기 위해 따온 무화과 열매들. 이렇게 삶도 함께 나누어 가는 것이란 걸 아이들은 안다.


또한 이들의 평등한 공동체로써의 커뮤니티 형태는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때 마침, 지난주 밤에 첫째 아들 율이와 세계사 책을 함께 읽으면서 평등 공동체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노마딕에서 농경사회로 바뀌면서 정착하고, 내 것과 네 것이 구분되어지면서 평등 공동체가 사라졌다고, 함께 나누는 게 아니라, 각자가 사유 재산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아들은 내가 사서 친구들하고 함께 나누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본다. 네가 사서 친구들한테 나누어주면 그것도 함께 나누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서 선물로 주는 의미랑은 조금 다르다고 이야기해본다. 하지만, 비록 내가 사더라도 내 것이라 생각지 않고 공동의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면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침, 오늘 아침 아이들과 함께 할 공간에 대한 프로젝트를 의논하기 위해서 아침에 모임을 가지게 되었는데, 모임에 가는 길에 우연히 무화과나무에 익어가기 시작하는 무화과를 모자에 조금 따서 가지고 갔었다. 이를 본 아이들은 신나서 무화과를 따러 갔고, 모자와 다른 바구니에 한가득 가지고 와서 회의하는 가운데 함께 먹을 간식이라며, 다 함께 나눠먹을 것이라고 하였었다. 이 예를 다시 상기시키며, 그렇게 함께 공동의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서 모두가 다 같이 나누어 먹는 그것이 바로 유인원들이 해오던 공동체적 삶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과연 아들이 이 미묘한 차이를 알라나 모를라나..... 그래도 따스한 마음을 가진 아들은 친구들과 언제나, 무엇이든 함께 나누는 삶이 좋다고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배움이란 것은 그냥 정보로만 끝나서는 안된다. 그 정보를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유인원 시대를 공부하면서 아이들은 나의 뿌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를 알아가며,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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