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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Aug 20. 2021

호모 사피언스, 고로 나는 존재한다.

#005 다섯 번째 이야기

유인원 이야기의 마지막 주에는 호모 사피언스 Homo sapiens를 다룰 차례였다. 근 한 달 동안 아이들은 이미 실생활 속에서나 친구들과의 놀이 속에서 유인원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호모 사피언스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오두막 capana, 자연에서 찾은 재료를 이용해서 만드는 여러 종류의 무기들, 테이블 메너를 언제나 상실하고 손으로 짚어 먹으시는 내 아이들, 잠잘 때 빼면 여기저기 노마딕처럼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며 열매를 따먹고, 탐험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호모 사피언스로 넘어가면서 우리의 조상 유인원은 할 줄 아는 재주가 무수히 늘어났다. 그리하여, 그들의 대표적인 몇 가지 기술들을 꼽아서 직접 체험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어른들이 각자 맡은 섹션에 워크숍처럼 모든 재료들을 준비해놓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험해 보는 형태를 구상했다. Daniela가 준비한 섹션은 천연물감을 이용해 동굴 벽화를 그리듯 커다란 종이에 그림을 그리거나 손바닥 스텐실, 얼굴이나 몸에 인디언처럼 페이스 페인팅을 하는 것이었다. Daniela는 아이들과 천연물감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며 아이들에게 왜 호모 사피언스 Homo Sapiens들이 돌굴에 이런 벽화들을 그렸었는지 설명해 주었고, 이에 영감을 얻은 아이들은 다시금 무기 제작에 열을 내기 시작했다. ^^ (그들의 무기 제작의 열정은 끝이 없다.)


천연물감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스텐실, 도장을 찍어본다.


Ines가 준비한 섹션은 기다란 잎들을 이용해서 베를 짜서 조그마한 카펫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풀잎 재료를 이용해서 작은 카펫을 만들 수 있다니! 올리브 얇은 나뭇가지들을 이용해서 바구니를 만드는 것을 개인적으로 실험해 보았었는데,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었다. 적절한 가지들을 구하는 것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들을 가지고 잘 짠다는 것은 웬만한 기술이 없으면 안되는 것이었으니! 호모 사피언스 Homo Sapiens 님들이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뭇잎을 이용해 작은 카펫을 만드는 섹션
나뭇잎 카페트를 제작중인 아이들과 이를 돕고있는 Ines


Anthea가 준비한 섹션은, 여러가지 재료들을 이용해서 다양한 소리가 나는 악기들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그녀가 구상한 것 중, 대나무로 만드는 피리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원체, Anthea가 평소 아이리쉬 피리를 부르기를 즐겨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해서,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피리가 소리를 낼 수 있을지가 무진장 궁금했었던 것 같다.


악기 만드는 섹션
대나무 피리를 만들고 있는 아이들과 이를 돕고 있는 Anthea
Anthea와 함께 만든 대나무 피리


내가 준비하게 된 섹션은, 동물 가죽이나 깃털, 조개나 돌들을 이용해서 여러가지 장신구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장식물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남들이 보는 시선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미의 존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록 그 당시의 미의 기준이란 지금과는 현저하게 달리, 다산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장신구를 만드는 섹션
팔목에 할 장신구 제작중인 Federico와 동물 깃털을 이용해 장신구를 만든 가이아.


이렇게 모든 섹션을 자유롭게 돌고 난 아이들은 어느새 호모 사피언스 Homo sapiens 가 되어있을 것만 같았고, 이를 계기로 그들의 샤먼 의식을 재현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단 생각이 들었었다. 의상과 분장, 무기들과 장신구들을 걸치고 자신이 직접 만든 악기들을 들고 연주하며 모닷불 주위를 돌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상상했었었다.


기대했었던 것보다도 시간이 많이 걸린지라, 아이들은 고픈 배를 부여잡고 절실히 불이 켜지기를 바랬었다. 부싯돌(현대식)을 이용도 해보았으나,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에 완전히 말리지 않은 나뭇가지에 불을 지핀다는 게 그닥 쉽지 않았고, 결국 Antheas는 "반칙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며 라이터를 들이 올렸다! (잠시 라이터가 정말 위대해 보였다!) 결국 우린 문명의 혜택을 받아 모닷불을 켜고 여러 야채들을 꼬치에 꽂아 굽고, 감자들을 썰어 은박지에 넣어 숯불에 익혔다. 그리고 불판을 올려 고기를 구워 다 같이 먹으며 마지막 프로젝트를 마무리하였다.  


불 피우기를 시도 중인 Mailo와 율, 그리고 이를 돕고 있는 Anthea
드디어 붙은 불을 키우는 중인 아이들
불판에 고기를 굽는 중인 아이들과 이를 돕고 있는 Ines


이렇게 유인원 프로젝트가 끝난다는 게 어른인 나도 아쉬운데, 아이들은 어떨까?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해서 그냥 끝난 게 아니었다. 한 달의 프로젝트가 끝나고서도 아이들은 유인원 시대 놀이에 한참을 빠져서 놀았다. 비가 유난히도 많이 내렸던 겨울인지라, 비가 내리고 나서 생겨난 진흙탕에서 고운 흙들은 골라 그릇들을 만들어서 쨍 볕에 말려놓았다. 그렇게 말리면서 이 그릇들을 구울 수 있는 불가마가 있으면 좋겠다더니, 여기저기 나무판들과 돌들을 이용해서 불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더니 각자가 달리 생각하는 불판 두 개를 만들어 그릇들을 굽기도 하고, 빵들을 가져와서 구워 먹기도 했다. 아침부터 시작한 불가마 프로젝트는 오후가 되고 그 다음 날이 되어도 멈추지 않는다. 다만, 진짜 불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믿지만, 워낙 화재가 많은 포르투갈이기에, 어른 한 명이 동행한다는 전제하에서 진행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유인원들처럼 토기를 만들고 있는 Federico와 Nina
불가마를 만들다가 불판으로 변신해서 빵을 굽고 있는 아이들
불가마를 만들어 그 위에 그릇들을 올려 굽기를 시도중
불가마 앞에 놓인 토기들


몇 달이 지나서도 유인원 놀이는 아이들 사이에 어김없이 고개를 내민다. 아이들은 여러 새로운 지식에 눈을 반짝이고 스폰지마냥 깊이 있게 흡수해 나간다. 그리고 유인원 프로젝트를 통해 습득한 그들의 삶의 방식들을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어른인 우리들도  배워나간다. 삶의 간결함과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삶, 포기하지 않고 불을 이어가던 그 마음. 그리고 자연과 함께 공존해 나갔던 그 시대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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