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엄청나게 소통을 잘 하고, 서로를 이해한다고 여겼는데, 아니다. 우리는 핸드폰을 들고 있는 그 순간에만 관대하고 연민하며 이해한다.
출근시간 엘리베이터에서도 그 핸드폰만 보느라 열림 버튼도 닫힘 버튼도 누르지 않는다.
누가 타든지 말든지, 나 때문에
이제 막 출발하려는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는데도 핸드폰만 본다.'나, 지금 출근해. 엘리베이터 겨우 탔잖아. 휴. 아침마다.'
출근길 지하철을 막고 시위를 하는 장애인 연대들의 뉴스가 실시간으로 보도되었다. 처음에는 이해했던 사람들도, 막상 내 일이 되니 좀.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왜 하필, 출근 시간에?이런 목소리가 거세어졌다. 그런데...그런데...내 가족이, 내 동생이멀쩡히 사지육신 멀쩡한 일반인으로 잘 지냈던 내 동생이별안간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되었다면그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다녔던 그 모든 길은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그 모든 길은 우리, 장애인이 되어보지 못한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매 순간의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그 가족들은 제일선에서 그것을 지켜보면서허공에 자신들의 한숨이 퍼져나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고 있으리.
세월호, 이태원 사고를 거론하지 않더라도나는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상상할 수 없는 인재가 벌어지는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일례로, 이번 설 연휴에 나의 동생은 생일을 맞이했다. 두 자녀를 둔 동생은 생일은 커녕, 연휴에 오히려 바빠서 일터로 나가야 했다.10살 조카 녀석이 내 동생이자 그 녀석의 엄마 생일 선물로, 생일 케익을 산단다.내 눈에는 한참 어린이인지라홈플러스에 딸린 투썸플레이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각케익 3개, 19200원.키오스크에서는 현금을 받아주지 않았다. 물론 내 카드로 할 수도 있지만,제 엄마 선물을 자식이 직접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직원에게문의했다.
"키오스크 현금은 안되는 거죠?"
"네. 키오스크는 현금 안되죠. 카드 어려우세요?
"네."
그 여직원은 현금 계산을 해주면서"여기는 현금결제불가니까 다음엔 카드 결제를 해주세요."라고 했다.
'??'
'전 점포가 다 그런건가?'속으로 의문문이 생겼지만 묻지는 않았다. 조카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2만원을건넸고800원을 거슬러 받았다. 만약 이 녀석 혼자 여길 왔으면 어떻게 됐을까?아이 혼자 생일 선물로 자기들의 점포에 케익을 사러 온 걸 대견히 여겨 쉽게 계산을 해줬을까?아니면 다음엔 카드 있는 어른이랑 와서 사라고 했을까?이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왜 현금이 있는데도 먹고 싶은 걸, 사고 싶은 걸 살 수 없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혹시나 어린 조카가 언성을 높이는 것에 대해 상처를 받을까 아무 말도 못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저런 안내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직원과 무슨 대화를 해서 얻는 소득이 있을까도 뒤에 생각해봤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카드를 사용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기업이 추구하는 그들만의 논리를 완전 무시할 수는 없다. 미성년자는 현금이 있어도, 노인들은 현금이 있어도, 여행온 외국인들은 현금이 있어도. 아니, 카드를 만들 수 없어서, 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저 투썸플레이스의 케익 앞에서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왜? 누구를 위해서지? 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는 정말 무엇인가?삶은 어떻게 돌아가야 바른가?우리가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다 들어줄 수는 없어도귀는 기울여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역지사지.다른 사람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생각한다>
나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생각해주는
당신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나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는 이 땅에 미약한 하나의 존재이지만나로 힘을 얻는 사람이 있다면결코 나의 존재는 작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