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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호 Jan 03. 2024

[수필] 복지할 수 없는 복지 현장의 초상

20240103

        

  흔히들 사회복지·간호·시민단체 등 사회봉사의 사명감을 요구받는 직업의 경우, ‘필드에 가면 변할 수밖에 없다’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필드에서는 그 높았던 이상이 무너지고, 현실적이며 효율적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나는 최근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본 드라마의 주인공인 ‘정다은(배역: 박보영)’은 정신과 간호사다. 그는 다른 간호사와 의사들이 보지 못한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서 환자의 병명을 유추하기도 하고, 다른 간호사들이 챙기지 못한 환자의 불편감에 공감하고 문제 해결법을 찾아내는 등 환자의 안위를 최선의 가치로 삼는다. 또한, 상황 맥락 상관없이 희생과 봉사 정신 및 책임감을 가지며, 회식 자리를 박차 나설 정도로 자신이 어질러놓은 일들을 다 해나가려고 한다. 이 때문에 다른 간호사의 협업과 관계에도 차질이 생기고, 환자의 우울증이 자신에게 투사되어 자기 역시 정신 질환을 겪기도 한다.     


블라인드 커뮤니티 현직 간호사의 글


  블라인드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현업에 종사하는 간호사들은 이를 좋지 않게 말한다. 더욱이 ‘정다은’처럼 일하던 간호사는 후회하며 말하기도 한다.

  “선생님, 우린 상담하는 간호사가 필요한 게 아니야. 일하는 간호사가 필요한 거지.”

  환자를 위해 성심성의를 다하여 일한 것이, 필드에 민폐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이팅게일 선서’에서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기만의 이상을 위한 것도 아니며, 간호사의 기본적인 네 줄짜리 선언조차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모순이다.


  사회복지계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언제나 소외되고 고통받은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저들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고,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면서, 개인 이익보다 공공이익을 앞세운다.

  사회복지사 선언문의 내용이다. 

  그런데도 쌓인 일과에 바쁘게 일하고, 클라이언트와의 다툼을 겪으며 신체적으로 지치고 정신적으로 무너질 거 같은 필드 속에서 ‘클라이언트에게 무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매우 현실적이며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심한 사회복지사와 다정하지 않은 간호사에게 안 좋은 생각을 가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한다.          




  사람은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나는 시민단체의 첫인상 덕분인지, 아직 짬이 덜 차서인지 위의 현직 종사자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일한 곳은 지방의 작은 인권단체다. 해당 단체는 약 30년가량 운영된 역사 깊은 단체이며, 지역의 영향력 또한 매우 크다. 그곳에서 일하기에 부하 직원으로서는 영 힘이 들었지만, ‘사명감이 있는 활동가’로서의 대표님은 존경하고 따를만한 사람이었다.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했음에도 단연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오히려 대표님이 참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소한 사회문제 하나하나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난데없이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고, 온갖 것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렇듯 자기 가치에 집중하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대표님은 그런 나의 가치를 버거워하면서도 이해해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단체와 기존 기성 단체를 비판할 때도 적어도 들어주며 고민해주었고, 내 생각을 설득하거나 토론할지언정 압박하지는 않았다. 내 방식과 가치를 찾는 것에 대해 응원해주기도 했다.      

본인이 일했던 단체가 참여해 이뤄낸 캠프롱 찾기 시민운동


  석 달 전에는, 나는 특정 사례에 궁금증을 가지고 다른 지역 작은 센터의 센터장님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 역시 위에 대표님처럼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개척하고 인생에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그는 아무 직위가 없었을 때부터 가치에 무심하지 않았고, 상담 및 복지계의 현실에 낙담하지 않았다. 외로운 사람을 발 벗고 찾아다니며 방안을 연구하였다. 그래서 그는 작은 지방 정부에서부터 ‘은둔형 외톨이 지원조례’의 물꼬를 텄고, 이후에는 전국적인 조례 움직임과 국회 법안 발의를 촉진하기도 하였다.      

상담사이자 센터장님이 추진했던 은둔형 외톨이 지원조례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들과 일해보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서 그런지, ‘일을 잘하는’ 간호사와 복지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간 사람도 있지 않아?’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현 직종의 전문가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힘든 일과 속의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못된 짓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만만하게 말하는 복지계라고 할지라도, 복지계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의 노고를 무시할 수는 없다. 무시하기는커녕, 각자의 땀과 노력에 존경을 표해야 한다고 말한다.      


  병원이든 사회복지시설이든 시민단체든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로서 효율성을 추구하게 되고, 일이 돌아가게 될 최소한의 TO만을 뽑는다. 그래서 대학병원의 간호사들은 삼교대를 뛰며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고,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와의 다툼으로 멘탈이 무너져 쉬어야 할 때도, 시설은 “우리 때도 다 했어.”라는 말로 부하 직원을 더 채찍질한다.      


  나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회는 적어도 무너진 사람을 도와야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우리 사회의 책임을 말하게 된다. 적어도 사람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환경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현재도 많은 사회복지 시설에 신입들이 들어가게 된다. 그들 중 대다수는 적어도 ‘사람을 도와야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사회가 적어도 그들의 가치를 좌절시키지 않길 바란다. 그들의 꿈과... 나의 꿈을 평생 지지하고 싶다.




해당 블라인드 출처: https://www.teamblind.com/kr/post/%EC%A0%95%EB%8B%A4%EC%9D%80%EB%B0%95%EB%B3%B4%EC%98%81%EA%B0%99%EC%9D%80-%EA%B0%84%ED%98%B8%EC%82%AC-%EC%96%B4%EB%96%B0-fGHK0H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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