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나는 근시에 난시까지 있었다. 요새는 원근 조절까지 힘들었는데 어제부터는 한계에 다다랐는지 눈에 통증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찌릿하게 느껴졌다. 때마침 유튜브 알고리즘은 '어느 날 갑자기 실명...'이라 적혀있는 썸네일의 영상을 눈치 빠르게 추천해주었고, 해당 썸네일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시각장애 유튜버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냥 갑자기 시각장애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덤덤했지만 나는 그 '갑자기'라는 단어에 꽤 겁을 먹었다.
나는 '아플 때 가장 하지 말라는 짓'을 시작했다. 구글링을 통해 조금이라도 눈의 통증을 덜어보자는 것이다. 검색 결과의 상단 링크부터 쭈욱 내려가 하나하나 클릭하여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상하좌우 동공을 돌려보고, 먼 곳과 가까운 곳을 봤다 또 보고, 손을 비벼 닭똥 내 나는 온기를 눈에 가져다 대는 등 별짓을 다 했다. 네이버에도 쳐봤다. 지식인의 ‘태양신 안경사'는 가끔 안경을 벗고 걸어보라는 답변을 주었다. 평소 같으면 '돌팔이 아니냐'하며 무시한 정보들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민간신앙에 환장하는 이들의 심리를 뼈저리게 공감하며 신음 섞인 한숨 내쉬며 바로 안경을 벗었다.
그 바보 같은 행동으로 2시 어스름한 새벽길을 걸었다. 태양신은 태양신이었다. 안경을 벗어서인지, 시간이 지나서인지, 어찌 됐든 고통이 덜해진 것에 성은이 망극했다. 그러자 슬슬 주변이 보였다. 가로등이 이리 밝은지 몰랐다. 눈이 부셔 끔뻑 뜨니 익숙해졌다. 그 가로등이 마치 별 같이 느껴졌다. 그러자 6차선 도로에 별이 수놓아졌다. 그러고는 빛이 지나간다, 차의 전조등이 별똥별이 되어 지나간다. 벚꽃은 깃털처럼 피고, 바위 그림자는 패딩 입은 아이가 되어 쪼그린 채로 꽃샘추위를 녹인다.
"내가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있었나?"
고양된 나는 경건한 감상의 자세를 갖추기 위하여 귀에 꽂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빼고 오른쪽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러자 난생처음 느끼는 또렷하고 웅장한 공간감이 귓속을 울렸다. 이 공간감에 대한 의문을 품자마자 세 걸음 앞 불쑥 사람이 튀어나와 흠칫 놀랐다. 그때 깨달았다.
"시각장애인은 의지할 게 귀밖에 없으니 귀가 밝은 거겠구나."
나 역시 안경을 벗으니 몇 걸음 앞도 흐릿하여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색은 구분되어 신호등의 푸른빛에 걷고 붉은빛에 멈추어 설 줄은 안다. 그러나 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불빛은 여기저기 색색이 겹치며 찌그러졌다. 찡그리니 눈썹이 그 빛을 가로막아 사이사이 시야가 문틈처럼 좁았다. 습관처럼 검지로 콧잔등을 만지다 피식하고 손을 내린다.
다시 안경을 썼다. 빙빙 돌아다닌 끝에 집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이상하게 매일 쓰던 안경인데도 어지러이 느껴졌다. 그동안 안경을 쓰지 않았던 적이 없구나 싶었다. 풍경을 지나 집에 도착하여 눈을 감으니, 아니나 다를까 그날도 바늘로 콕콕 찌르듯 눈이 아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2시간 넘게 뒹군 거 같다.
다음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전날 본 영상의 유튜버는 머릿속에서 으르렁거리며 겁을 줬다. 걱정 가득 한 체로 병원에 도착해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은 커다란 기계로 이리저리 내 눈을 관찰했다.
“안쪽 눈꺼풀에 다래끼가 생겼네요.” “아? 아... 아~”
나도 모르게 바보 같은 소리를 내었다.
"약 먹고 연고 바르시면 됩니다. 이상 있으시면 다시 오세요."
"아... 넵!"
다행히 며칠 약을 먹고 안약을 넣고 연고를 바르니 금방 나았다. 정말 괜한 걱정이었다. 벌벌 떨던 겁쟁이 짓은 부끄러워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다. 그러나 그때의 특별한 경험은 마음 한편에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날카로이 곧게 뻗친 세상과 달리 흐릿하게 아름다운 빛 무더기, 안경 밖 세상이었다. 내가 끼고 있는 안경은 말 그대로 색안경이었다. 시야가 넓어지고 시점이 달라졌을 때 새롭고 경이로운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