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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명 May 06. 2017

최초의 티베트 왕 '고향'에서 결례를 범하다

고향, 루랑진 - 최종명의 중국 대장정(11)

며칠 내내 화창하더니 보미(波密)의 아침은 운무를 몰고 온다. 구름과 안개가 경쟁하며 땅으로 내려앉는다. 백조처럼 팔룽짱보(帕隆藏布) 강변으로 내려온 하얀 색감은 우아한 비상과 착지로 은근하게 날아다닌다. 도술을 부리듯 설산을 휘감고 돌기도 한다. 땅과 산을 직선으로 가르며 계속 따라오고 있다. 번뇌조차 조용히 침잠하는 아침, 새조차 소리를 잊은 듯 고요하다. 온통 새하얀 세상이 된 덕분에 마음은 더없이 상쾌하다. 


1시간 채 지나지 않아 고향(古乡) 마을에 도착한다. 보미 현의 직할 향이다. 우체국과 위생병원이 있는 건물 앞에 ‘古乡’을새긴 바위 하나가 눈길을 끈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 있는 대도(中国最美景观大道)’는 국도 318번 도로다. 며칠 동안 지난 온 길이라 익숙하다. 보미를 티베트 말로는 ‘보워(博窝)’라고 읽으라고 친절하게 적었다. 아름다운 길 위의 ‘고향’의 별명도 두루 적혀 있다. ‘빙하의 마을, 티베트 왕의 고향, 티베트의 스위스, 설원의 강남’. 

운무 낀 보미의 아침
운무와 설산

수많은 빙하가 설산마다 머리를 내밀고 있는 곳이다. 스위스처럼 아름다운 빙하 마을이며 티베트 젖줄 얄룽짱보(雅鲁藏布)의 남쪽이기도 하다. ‘고향’의 강렬한 인상은 최초의 티베트 왕 ‘네치찬보(聂赤赞普)의 출생지’가 풍기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천신(天神)의 아들로 하늘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온 네치찬보를 12명의 무사(巫師)는 수령으로 영접했다. 기원전 360년 전후에 발생한 역사는 곧 건국신화다. 씨족 중심의 부락을 연맹체를 발전시킨 고대국가 토번(吐蕃) 왕의 출현이다. 


‘찬보’는 용감무쌍한 사내라는 말로 정교합일의 법왕(法王)을 뜻한다. 원나라 말기에 편찬된 <왕통세계명감(王统世系明鉴)>에 따르면 토번 왕조는 ‘네치찬보 이후 26대를 이어’ 왔다. 왕은 언제나 ‘본교(本教)를 통해 국정을 유지했다’고도 전한다. 티베트의 ‘원시불교’인 본교는 하늘과 땅, 지하 세계로 나누고 해와 달, 별이나 호수, 바람, 설산 등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법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의 우두머리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신화다.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천장(天葬) 의식이야말로 지극히 티베트다운 일이 아닐는지.

최초의 티베트 왕 네치찬보의 고향

티베트 역사에서 토번은 흔히 서기 618년부터 약 220여 년을 통치한 왕국으로 알려졌다. 당나라 시대 티베트를 통일한 강력한 통치자 송첸캄보(松赞干布)는 토번의 33대 왕이다. 당나라와 인도의 공주와의 결혼 후 선진 문물과 문화를 받아들여 정교 합일의 토번을 제국으로 발전시켰다. 티베트 불교는 혼돈의 시대를 겪지만 종교개혁가 쭝카파(宗喀巴)가 등장해 겔룩파(格鲁派)를 창립하면서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달라이라마(达赖喇嘛)는 겔룩파의 최고지도자로 16세기에 이르러 더욱 세련된 종교 체계를 세우고 통치 기반을 수립하게 된다. 티베트 역사를 생각할 때 ‘고향’이 배출한 법왕의 근원을 따져 보는 것도 재미있다. 여기는 네치찬보의 고향이다. 이제 곧 수도 라싸에 들어가 달라이라마를 만나게 된다.

비포장도로 공사 중
차마고도를 운전 중인 티베트 운전사

‘고향’ 표지판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다가 주민에게 혼났다. 신성한 법왕을 멸시한 것은 아니었는데 결례는 맞다. 서둘러 운무 가득한 길을 떠난다. 질퍽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굴착기 공사로 외길에서 잠시 멈춘다. 대형 트럭이 좁은 길을 비집고 지나가려니 한참 걸린다. 도로가 반듯해지면 덜컹거릴 일이 없겠지만, 오지로의 여행이 주는 질펀한 체험은 사라지지 않을까?


통맥대교(通麦大桥) 앞에 잠시 멈춘다. 며칠을 달려온 운전사도, 흙탕물을 지나온 4륜 구동 지프도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찌푸린 날씨 때문인가? 운무에 휩싸인 여행자에게는 신선하고 우아해 보이는 뿌연 하늘이 운전대를 잡은 그에게는 유쾌할 리가 없을 터. 여전히 비포장과 공사 중 도로를 어렵사리 질주한다. 2시간을 달려 루랑(鲁朗)에 접어들어서야 순조롭게 쌩쌩 달린다. 

두 강이 만나는 통맥대교
석과계 요리의 고향 루랑

루랑은 ‘용왕이 사는 골짜기(龙王谷)’라는데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도 있다. 3km 거리에 있다는 화해목장(花海牧场)에서말을 타고 놀아도 좋을 듯하다. 강을 끼고 있는 촌락, 계곡이 흐르는 목장이자 바다와도 같이 수많은 꽃이 만발한 스위스 같은 풍광이다. 덥수룩한 마부 사이에 소박하면서도 예쁘장한 아가씨 마부의 미소를 따라 준마에 올라타고 싶다. 예정에는 없지만 마방이 수없이 지나던 길을 따라 달리고 싶었다. 순간 허기를 느낀다. 

루랑 목장의 마부 아가씨
루랑 목장의 말
티베트 최초의 왕의 고향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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