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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희 Jan 17. 2022

제2의 고향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MZ세대 30대 신혼부부 시골 정착기

'House'는 있어도 'Home'은 없다


귀촌을 진실로 결심한 우리 모습을 인정하고 나니 다시 보이던 문장 하나. 짧은 저 한 줄이 어쩐지 굉장히 공허하게 느껴졌다. 아.. 세상천지 호화로운 집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편하게 마음 둘 고향은 없는 기분이랄까. '집'과 '고향'이라는 두 단어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벌어져 버린 느낌이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고 결혼 전까지 줄곧 양산에서 살아왔다. 고로 태어난 곳만 부산이지, 내가 숨 쉬며 자라온 곳은 양산. 그렇다면 나의 고향은 부산인가, 아님 양산인가. 아니 그나저나 고향이란 게 도대체 뭘까. 문득 의문이 들어 국어사전을 뒤적였다.


고향 [故鄕]


1.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2.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3.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4.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된 곳.


그렇다. 이토록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나는 고향이란 단어를 어떤 의미로 해석하고 싶은 걸까. 선택지가 하나라면 3번을 고르고 싶다. 어쩐 지 A or B가 아닌 WHATEVER와 같이 주관적 해석이 다분할 수 있는 단어였으면 하는 마음. 그렇다면 나의 고향은? 누군가 묻는다면 비자발적으로 태어난 장소인 부산보다는 나의 추억이 오롯이 깃들어 있는 양산이라 응답하고 싶다.




내가 추억하는 나의 고향 양산에 대하여


드넓고 푸르른 자연 그 자체였다. 비 오는 날 등굣길에 황소개구리를 보고서 화들짝, 하굣길엔 논두렁에 날아간 우산을 줍느라 낑낑낑. 집 올라가는 길 자리 잡은 살구나무 한 그루에서 바람길 따라 은은하게 흩어지던 달콤한 향기.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들은 이런 순간들이다. 어쩌다 보니 자연을 곁에 두고 살았고, 자연이 주는 편안한 온기 아래 무럭무럭 자라왔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나는 자연과 함께 할 때 시너지 효과가 큰 사람임을. 그래서 이제는 자발적으로 자연을 곁에 두려 하는 것. 귀촌에 대한 나의 꿈은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을 닮은 풍경에 이끌려 사랑에 빠지고, 그곳에 오래도록 머무르기를 원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내가 지금 딱 그런가 보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나의 고향은 세월만큼이나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이 변했고, 이제는 이곳에서 나의 고향을 추억하는 게 아주 많이 힘들어졌다. 현재 양산은 테트리스 마냥 아파트들로 빼곡하니 말이다. 이제는 굳이 아파트들 틈에 서서 억지로 고향을 추억하려 하지 않는다. 기억 속에 새겨져 있는 순간들만으로도 충분해졌다. 대신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보자 라는 결심이 섰다.


"고향은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 수 있어."


우리가 증명해 보이고 싶은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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